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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2-17 09: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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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제비봉(해발 721미터)

하늘의 뜻이다.
자연에 순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뜻이다.
인간을 배려하여야 하는 것이다.
산의 뜻이다.
한없이 겸허하여야 하는 것이다.

철새를 본다.
회색빛 창공을 날고 있다.
고단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날아 온 곳이 어디인가.
날아갈 곳이 어디인가.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묵묵히 나는 철새이다.
머무는 시간보다 더 긴 떠남이다.
군무를 하듯 선을 맞추고,
보무도 당당하게 줄을 맞추고,
하염없이 날기만 하는 것이다.
도착할 그곳에는 일용할 양식이 풍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날고 또 나는 것,
그것은 생존의 징표가 된다.

겨울을 즐긴 산이다.
철새가 품은 풍성한 꿈처럼 겨울 내내 산은 풍요였다.
나무는 물을 품고 있었고,
돌들은 차가움을 품어 있었고,
흙은 생명을 품고 있었다.
이제 나무는 물을 뿜어내고,
이제 돌들은 차가움을 풀어 헤치고,
이제 흙은 융성한 새싹을 피워내고 있다.
제비봉이 그렇게 풍요를 베풀어 봄을 견인하고 있다.

얼음골에서 첫발을 내디딘다.
여름이 되어야 제 기능을 다할 얼음골이다.
산초입의 가파름이 산을 호위하고 있다.
쉽게 범접을 허락하지 않을 기세다.
바위가 외롭지 않다.
소나무가 덮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외롭지 않다.
마음 나누는 동행이 있기 때문이다.
산이 외롭지 않다.
산은 그 속내를 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산은 바위보다 사람보다 더 속이 넓은 연유이다.

교차한다.
차가움과 따사함이 그렇다.
떠나감과 돌아옴이 그렇다.
슬픔과 즐거움이 그렇다.
내리는 것과 올리는 것이 그렇다.
산의 중턱에 서서 하향과 상향을 가늠한다.
그곳에는 고요를 대체한 활발함이 있다.
그곳에는 정지를 대체한 활동이 있다.
굴참나무 사이로 정상을 올려다본다.

차가움이 엄연하다.
산의 웅대함이 있어,
인간의 세사는 묻히고 마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산 아래의 파란 충주호를 내려다본다.
호수의 고요함이 있어,
철새들은 물위로 유영할 수 있다.
몸짓 하나하나가 자유로운 것이다.

평온하다.
가을걷이가 조심스럽던 시절에는,
세차게 불던 바람이 멈추기만 하여도 평온이 되는 것이다.
설사 바람은 다시 불기 위하여 잠시 숨을 고른다 할지라도,
바람이 그렇게 유의미가 되는 것이다.
햇살을 영접하는 봄의 시간이다.
잠시 쉬어 가는 찰나의 평온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상으로 자리 잡은 평온인 것이다.
봄의 햇살에 속살을 내보이는 정상에 선다.

산의 정상이 호락할리 만무하다.
눈발이 세차다.
덩달아 부는 바람이다.
더 낮추어야 할 인간을 호통하고 있는 것이다.
산의 뜻이다.
그래서 더 겸허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산의 길이다.
매표소방향이다.
작은 능선길로 내려선다.
내려와서 다시 만나는 바위오름길이다.
내려가는 길의 비경을 예고나 하듯,
바위들이 의미모를 세월을 비축하고 있다.
멀리 보지 않아도,
멀리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
바위들이 펼치는 ‘쇼’에 차마 걸음 옮기지 못하리라.
바위능선에 털썩 주저 않는다.
보는 것의 감탄으로 숨이 턱 막힌다.

쫒아가기에 바쁜 인간이다.
돈을 쫒아가기에 분망하다.
그곳에는 속임수가 제 세상인 냥 날뛰는 것이다.
권력을 쫒아가기에 가혹하다.
그곳에는 배신이 다반사인 냥 더러운 것이다.
출세를 쫒아가기에 급급하다.
그곳에는 변절이 헌신짝인 냥 가벼운 것이다.
여기 이 절경의 바위에 앉아보라.
여기 이 절경의 바위에서 쫒아보라.
인간이 그리도 애닯아 쫒아가는 것은 허망이 된다.
인간이 그리도 집착하여 매달리는 것은 공허가 된다.

결국에 귀결되는 것은 무위인 것이다.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 가지려 욕구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소불위로 오만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 하나조차도 사로잡지 못하며,
자연의 섭리 하나조차도 거역하지 못하며,
하늘의 의미 하나조차도 해독하지 못하며,
그래도 인간은 너무나 잘난 척 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을 낮춘다.
오로지 자신을 겸손히 한다.
인간의 언어로는 차마 형언하지 못하는 바위의 형상이다.
인간의 심성으로는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장엄한 비경이다.
목 놓아 우는 통곡처럼 시간을 놓아 빠져든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망각이다.
인간이 쫒아야 할 일이 여기 또 하나가 생긴 것이다.
바위가 그렇게 인간을 어즈버 여겨 향연을 베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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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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