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08-11-04 11:59:55
기사수정
안강 도덕산(해발 702미터)

창공이 하염없이 푸르다.
더 높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바람이 속절없이 시원하다.
더 빨리 소통하기 위함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창공이다.
공간적으로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람이다.
시각적으로 무색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무색하다.
나무가 운집하여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낙엽이 유색하다.
떨어져 땅위의 푸른 풀들과 색의 조화이다.
바람은 광활한 창공에 친한가 보다.
낙엽은 아늑한 지상에 친한가 보다.

창공에 맞닿은 도덕산 정상이다.
그래서 바람이 세차다.
멀리 달려가야 하기에 그렇다.
낙엽에 포근한 도덕산 산자락이다.
그래서 땅이 넉넉하다.
싹들을 잉태하여야 하기에 그렇다.

산입구의 정혜사지 13층 석탑이다.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 걸까.
돌탑이 통째로 허리를 굽히고 있다.
하늘로 곧장 선 돌탑이 내림하고 있다.
소스라쳐 퍼뜩 눈을 비빈다.
시각적 효과까지 감안하여 쌓은 탑이다.
노련한 장인의 숨결이 녹아 있다.
혼신을 다하느라 사람이 무척 그리웠나 보다.
인기척에도 탑이 사람에게 기우는 것인가 보다.
사람이 무척 그리운 탑이 된 것이다.
천년을 이어 오는 그리움인 것이다.

탑을 휘익 돌아 산에 든다.
발자국소리에 놀란 굴참나무이다.
도토리 하나가 허공을 가른다.
굴참나무가 산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발아래에 사각거리는 낙엽이다.
낙엽이 이슬을 머금었다.
낙엽이 깃털처럼 땅을 포근하게 하고 있다.

바위를 올려다본다.
길안내를 하고 있다.
가파름을 돌아가라 한다.
돌아가면서 여유자적하라 한다.
모양새로서 두서를 정하고 있는 바위이다.
그 앞면은 어김없이 직각이다.
그 뒷면은 모질게도 삼각이다.
그 윗면은 마루같은 평면이다.

부도덕산(副道德山)에 오른다.
한 치 앞에서 도덕산을 가리고 있다.
가까우니 행여 지나칠까 염려인가 보다.
두서가 정한 평바위의 부도덕산이다.
아서라 다툼을 물리친 것이다.
부도덕산 평바위에서는 저편의 계곡만 보인다.
그 올망졸망이 인정스럽다.
그 앞을 부도덕산에 내준 아량의 도덕산이다.
도덕산 삼각바위에서는 이편의 산들만 보인다.
공자산에 이어지는 수려한 능선의 펼침이다.
이 얼마나 절묘한 역할의 분담인가.
부도덕산에서는 저편만,
도덕산에서는 이편만,
두 곳에 올라야만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산의 길이 가파르다.
가파름의 펼침이 끝을 맺는다.
통바위가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맺음은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가파름 끝난 그곳에 도덕암이 넉넉하다.
통바위가 점지한 절터인 것이다.

문득 미완이 떠오른다.
완성체로 세월을 이끄는 암자이건만,
감정이입처럼 미완에 빠져본다.
미완이란 곧 온전함인 것을,
미완이란 곧 평화로움인 것을,
미완은 채워주기만 하면 온전함이 된다.
미완은 보태주기만 하면 평화가 된다.
채워주는 것,
보태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인 것이다.

미완의 것에서 빼앗으면,
온전함이 제 기능을 잃는다.
미완의 것을 업신여기면,
평화로움은 유리알처럼 파탄난다.
도덕암은 그 자체로서 완성인 것이다.
도덕암이 언뜻 미완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곳에서는 이미 온전함과 평화가 광채처럼 발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89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