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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0-04 16: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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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정극원 대구대학교 교수
재약산(해발1103미터)-천황산(해발1189미터)


잎새는 겸손하여 여름에 푸르고,
잎새는 그 겸손조차도 수줍어 가을에 붉게 물든다.
신작로의 구비 휘익 돌아서면 보이는 재약산이다.
재약산이 사무치듯 달려가 더 높이 솟은 천황산이다.


꺾어져 부셔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대나무이다.
표충사가 대나무에 포위되어 아담하다.
표충사의 뒷편의 왕대밭에 햇살이 내린다.
너무 빽빽하여 햇살조차도 위력을 발하지 못한다.
그 굵기가 안타까운 듯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사무치는 왕대이다.


부셔져 내가 되고 강이 되는 빗방울처럼,
연한 대잎은 흔들려 장엄한 바위산인 재약산을 쥐락한다.
마치 대잎의 마법에 걸린 재약산 같다.
정상의 바위만이 그 마법을 풀어 산을 펴락할 것이다.
재약산이 그렇게 쥐락펴락 펼쳐지고 있다.

대나무밭 뒷길을 지나 재약산에 접어든다.
하늘을 찌르는 대나무밭의 기세에 압도당한다.
햇살에 영롱한 풀잎이 나래를 펼치듯이,
햇살을 반사하는 뾰족한 대잎이 산길을 이정하고 있다.
귀퉁이 돌아서면 그 흔적조차도 홀연히 감추는 바람결처럼,
재약산 오르는 비탈길의 구비를 돌아선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푼수를 잃은 듯 곱다.
턱턱 발길에 채이는 비탈길의 바위소리이다.
그 소리가 너무나 정겨운 듯 가을나무들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가을나무들이 한껏 가지를 펼쳐서 사람의 호흡을 품어준다.


맞은편의 상대가 있어 이편이 존재한다.
맞은편의 산이 있어 이편의 언덕이 편안하다.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고운 연인처럼,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고운 맞은편의 산이다.
바라다보는 사람에게만 그 바위면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라다보는 사람이 감탄을 보내자 화답하는 산이다.
맞은편의 산에 내리는 햇살이 선을 긋고 있다.
마치 초상화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테두리선 같다.
그 선을 지우면 초상화가 형체를 잃어버릴 것이다.
재약산 저편의 햇살이 선 하나로 산을 완성하고 있다.


그 유의미성으로 유명세를 탄 고사리분교이다.
맞은편의 산세가 휘날려 머물려고 한 곳이었던가,
이편의 재약산의 기운이 더 달려가 머문 곳이었던가.
고사리분교의 자리엔 산세도 멎고,
고사리분교의 자리엔 기세도 멎고,
그 기운 받아 총명하던 초동들은 다 어디에 가고,
가냘픈 햇살만이 갈대에 이는 바람을 제어하고 있다.
고사리분교자리엔 햇살이 유난히 따사하다.


산의 협곡을 병목처럼 달려 나온 바람이 제법 쌀쌀맞다.
고사리분교의 평평한 바위에 앉는다.
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평면바위에도 올랐을 것이다.
좀 더 용기를 내어서 산정에도 올랐을 것이다.
교실에 다 가두기에는 넘쳐나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 세월은 가고 이제 텅하니 공터만 남은 고사리분교이다.


길이 참 편하다.
고사리분교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이 그렇다.
어제 누군가가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이 길을 걸어 오른다.
내일 누군가가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길에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있는 것이다.


대저 역사란 무엇인가.
영겁의 세월은 까마득하다.
어제에서 오늘을 찾는 것,
오늘에서 내일을 보는 것,
그것이 역사인 것이다.
그 누군가가 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선행의 동기가 더 컷을 것이다.
산의 길이니 그러할 것이다.
그러하니 길이 편안한 것이다.


길이 곧 세월의 역사가 된다.
어제 누군가가 걸어갔을 것이고,
오늘 내가 이렇게 걷고,
내일 누군가가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억새는 진화 그 자체이다.
억새는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얀 꽃을 피운다.
그 꽃잎을 빌어 자기존재를 만천하에 고지하는 것이다.
억새는 스스로를 지키고자 파란 잎을 키운다.
성난 바람에 하얀 꽃은 버리고 잎으로 버틴다.
억새가 세월보다도 더 빠르게 세월을 탄다.
험한 바위를 손으로 집고 넘는다.
몸으로 바위와 소통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 소통이 닿는 곳에 재약산정상이 있다.


내려다보기 위하여 오르는 정상이 있다.
올려다보기 위하여 오르는 정상이 있다.
어느 편으로도 기울지 않는 것이 중용이다.
지평선을 따라 표충사 방면의 능선이 단풍 들고 있다.
공제선을 따라 천황산 방면의 능선에 억새가 넘실된다.
신불산과 영축산의 연계능선이 구름의 회오리에 잠겼다.
내려다보는 것보다 올려다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터 좁은 정상에서는 중용조차도 무거운 것이 된다.
재약산에서는 그리하여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시선 닿는 그곳에 속살을 다 내보이고 있는 천황산이다.


구름이 몰아온다.
신불산에서 내달려온 것이다.
구름은 제 자신의 유유자적을 지키고 자,
길을 묻는 나그네에게 나몰라 라고 하는가 보다.
표충사로 내려가는 갈림길고개가 억새에 묻혀있다.
시간을 물으면 대답하는 억새이다.
길을 물으면 대답하지 않는 구름이다.
가늠할 수 없는 구름의 동작을 살핀다.
가늠할 수 있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절묘한 산의 대칭에서 언어를 잃고 만다.
사막의 피라미드가 바로 산을 모방한 것이리라.
산은 대칭의 기반을 딛고서 높이 솟을 수 있는 것이다.
산은 대칭의 층계를 만들어 하늘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다.
산의 정상이 하늘로 승천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산을 닮은 피라미드가 있어 고대왕국의 파라오는 하늘로 올라갔을 것이다.


피라미드의 대칭이 형체의 대칭이라면,
산의 대칭은 질량의 대칭인 것이다.
그 질량이 기막힌 죄우의 균형을 잡고 있는 재약산이다.
왼쪽은 완만하여 길지만 무게가 가볍고,
오른쪽은 가팔라서 짧지만 그 무게가 무거운 것이다.
그래서 질량으로 가늠하면 절묘하도록 같은 것이다.
산은 그 대칭으로 세찬 풍파도 영겁의 세월도 거스를 수 있는 것이다.
재약산이 영겁의 세월을 호령하고 있는 것이다.


천황산을 받치고 있는 바위이다.
누군가가 돌탑을 쌓아놓았다.
염원하는 것의 힘은 누구라도 경외하는 것이다.
염원하는 것의 힘은 천지도 개벽할 수 있는 것이다.

구름이 시커멓다.
천지를 뒤덮어야 그 직성이 다 풀리려는가 보다.
천황산이 일순 암흑에 뒤덮이고 만다.
원래의 이름인 사자봉은 숨고,
일본이 오염시킨 이름인 천황봉의 표지석이 차다.
일본은 그 야욕을 드높이기 위하여 산에 황자를 붙인 것이다.
그래서 사자봉이 천황산으로 개명된 것이다.
노한 구름이 가리고자 한 것은 바로 일본의 야욕이었던가 보다.
노한 구름이 가리고서 등단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우리의 기상이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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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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