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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09-05 16: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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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대구대학교 교수,칼럼니스트
문경 운달산(해발 1097미터)

봉우리가 위에서 아래로 결속한다.
합종(合從)이다
산의 기세가 좌에서 우로 펼친다.
연횡(連橫)이다.
운달산의 합종은 내부의 결속이다.
운달산의 연횡은 외부로 펼침이다.
합종연횡의 산 운달산에 접어든다.

산은 유구하다.
합종연횡이 있어서이다.
서로를 헤치지 않는 품넓은 지혜인 것이다.
서로를 다투지 않는 조화이다.
인간은 무한하다.
이합집산이 있어서이다.
서로의 이속을 따지는 속좁은 셈법인 것이다.
서로를 다투는 부조화이다.
유구하려면 품이 넓어야 하는 것이다.
유구하려면 조화하여야 하는 것이다.

운달계곡이 수려하다.
속살을 내보이는 바위가 장엄하다.
하늘을 압도하는 전나무의 어둠이다.
태고로 접어드는 길이 있다면 이러할 것이다.
계곡에 도열한 거목들이 텃세하고 있다.
텃세의 결연함을 시위라도 하듯이,
거목들의 사이가 촘촘하여 만든 어둠이다.
거목들의 높이가 빽빽하여 가린 하늘이다.
호시탐탐 햇살이 그 틈새를 노리건만,
빛조차도 그 틈을 뚫지 못하니 태초의 어둠만 짙다.
텃세의 위압에 도무지 정상을 가늠할 수 없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이 기특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야를 터 준다.
그 찰나에 혜성처럼 한 줄기 빛이 내린다.
갈 길이 바쁜 하얀 구름이 고즈넉하다.
마치 전령처럼 손살같이 정상으로 흐른다.
가늠하여 그곳이 정상일 것이다.
바람은 나무들의 위용에 맞서지 않으려고 멈춘다.
화장암 구비돌아 돌길위에 다시 어둠이 내린다.
정적같은 어둠을 타고서 천지가 태동하였을 것이다.
태동은 한 줄기의 빛을 도화로 하여 출정하는 것이다.
터덕터덕 돌길의 걸음으로 깊은 태동의 잠을 깨운다.

급경사면을 따라 장군목으로 오른다.
만들 수 있는 극한의 가파름같다.
흙조차도 거추장스러운 오름길이다.
밟으면 견디다 못한 돌들이 흘러내린다.
돌들도 견디지 못하는 급경사의 길이다.
그 척박한 터전에 나무들이 고단하다.
외로움을 물리치듯 키 낮은 풀들이 무성하다.
한 뼘은 더 큰 원추리가 붉게 꽃을 피우고 있다.
원추리꽃의 그 절묘함에 마음이 숙연하다.
최적의 공기, 최고의 햇살, 최상의 물에 때를 맞춘 개화이다.
원추리꽃에는 그 절정의 함축이 있는 것이다.
장군목의 가파름이 절정인 이유가 바로 그 원추리인 것이다.
장군목에서 속까지 쏴아 하는 바람을 맨몸으로 맞는다.

장군목이 못내 아쉬운 듯,
그 가파름을 정상으로 펼친다.
능선의 매듭을 만드는 바위에 선다.
구름이 전령처럼 달려온 까닭을 유추한다.
손가락을 펼치듯 그 방향을 가르켜 주고서,
손바닥을 펴듯 능선을 다 덮어 시야를 가린다.
행여 바위가 허장성세할까 그러는가 보다.
기암괴석의 바위가 한껏 뽐 낼만도 하건만,
구름에 가려 그 우뚝함만으로 처연하다.
소나무를 밀치고 공터를 만든 평면바위에 앉는다.
덩달아 구름도 갈길 멈추고 어둠을 내린다.

고단함이 있었으니 안온함이 있는 것이다.
정상을 앞두고서 길게 오솔길이 펼쳐진다.
차마 잠들지 못하는 사연이 솔솔 피어오른다.
마치 쥐라도 수색하듯 보름달이 환히 비추는 시골이다.
그 때에는 우정만이 세상을 지탱케 하는 유일한 가치였다.
철길에 앉아 밤새 이야기 나누던 친구가 문득 떠오른다.
막차가 떠나간 철길은 새벽까지 치기어린 우리들의 것이었다.
보름달이 떠오르면 철길의 수평처럼 이 오솔길도 밝힐 것이다.
그러하니 시공은 떨어져 있어 다른 것이 아니라,
시공은 초월하는 것이기에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아랑곳 하지 않고서 오솔길에 견디는 풀이 유연하고도 곱다.
시공을 공유한 그 시절의 우정이 그저 순하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어둠처럼 구름이 에워싼 정상이다.
호위병처럼 바위를 거느린 정상이다.
젊음처럼 푸름으로 치장한 정상이다.
구름과 바위와 나무가 공존하는 정상이다.
운달산의 합종연횡을 넌지시 바라다본다.
종으로는 새목재와 금선대를 품었다.
횡으로는 대미산과 주흘산이 펼쳤다.
운달산은 품고 펼쳐서 광대한 것이다.
문득 합종연횡의 완성이 아니라 미완을 본다.
운달산은 아직도 품고 펼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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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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