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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9-27 2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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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리 산문장대(상주)
속리산 문장대(해발 1,054미터)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다.
막 노란 채색을 시작한 단풍이다.
현란한 단풍의 자기과시는 달포를 넘기지 못한다.
쇄락하여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켜 내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물욕이 가난하면 좋으련만,
사색하는 것이 가난하여 공허이다.
마음에 냉기가 인다.
공허에 비례하는 차가움이다.
늘 황망한 세상사이다.
고요는 세상사와 반비례하는 것이다.
허둥대는 바쁨들이다.
다 밀치고서 속리산으로 향하는 행장을 꾸린다.

어렵사리 찾는 등산로의 초입이다.
상주방면에서 시작하는 산행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얀 공제선을 배경으로 하여 우뚝 솟은 바위이다.
그 위용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진군나팔처럼 우렁차다.
속리산 바위들의 기품에 압도당한다.
이 순간 세상사를 다 잊어도 좋다.
바위의 감명에 온 몸이 감전된다.

산을 택하고 세속과 이별한다.
그 택함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세속과 이별한다 하여 속리산이다.
비탈을 향하는 오솔길이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나는 성불사이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성불사 깊은 밤’의 가곡의 무대라 한다.
풍광의 산에서는 그런 오인조차도 관용이 된다.
가곡의 무대 성불사는 불국사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바위의 소용됨이다.
산은 그 품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려는 듯,
접어들자 가파르지 않는 돌바닥의 길이다.
걸음이 경쾌하다.
주마간산의 여유로 땀을 훔친다.
풍경에 도취되어 마음이 절로 흥겹다.

바위가 빗장을 연다.
속리산 문장대이다.
철다리를 성큼 올라선다.
문장대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기 위함이다.
아스라이 펼쳐진 풍경의 파노라마이다.
창공의 푸름처럼 관대하여 진다.
비우기 위하여 오른 산이다.
채우려는 욕심이 더 먼저 요동한다.
문장대가 선사하고픈 것이 바로 욕심인가 보다.
절경의 풍경앞에 좌절하는 비움이다.
절경의 풍경앞에 욕망하는 욕심이다.

억겁의 세월이다.
다 담아 내고 있는 문장대이다.
평평한 바위에 털썩 앉는다.
그럴 수 있다면 해가 뉘였질 때까지 묵상해도 좋을 것이다.
일생에 문장대에 세 번만 오르면 극락에 간다는 안내판이 허허롭다.
문장대가 빗장을 열면,
하늘로 향하는 통로가 열리는 것인가 보다.

기개로 선 바위이다.
용맹을 품은 바위이다.
서로가 키재기 하듯 기품으로 형상을 만든 바위이다.
그 간결미에 말을 잃었다.
그 단순미에 혼을 놓는다.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없을 진대,
문장대의 우람한 바위들이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고 있다.
세속을 떠나 속리로 오고,
또 다시 속리를 떠나 세속으로 돌아간다.
애틋함인지 바위에 걸 터 앉은 휴식이 묘하다.

하산하여 출발점에서 도착한다.
미련이 남아 다시 올려다보는 바위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의 누림보다
하산에서 올려다보는 바위들의 위용이 더 감미롭다.
속리산이 세상을 이별한 사람들을 다시 환속하게 하는 것이다.
하산하여서도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 있어 그렇다.
속리산이 그렇게 인간을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의 단풍에 타오르는 속리산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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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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