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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08-23 15: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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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비로봉, 해발 1.563미터)

오대산에서 가을이 시작된다.
가을을 시작한 오대산에 세상 제일 안온한 기운이 넘쳐난다.
하늘로 오르려는 저기압과 지상으로 내려앉으려는 고기압이 만나는 해발 700미터 지점에서 그 기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대산 넓은 터전에서 저기압과 고기압이 합일한다.
지금,
그 오대산에서 안온한 가을이 발원하고 있다.

아무리 먼 길을 달려도 지치지 않는 마음이 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속삭임같은 밀어가 있다.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더 서둘지 못함이 한스러운 듯 오대산이 전하는 안온한 가을을 대면한다.

계곡맑음이 오밀조밀하다.
육중한 나무에 매달린 세월이 우람하다.
산은 기나 긴 지난 세월에 의하여 만들어 지고 나무들은 앞으로 세월을 가꿈하고 있다.

상원사 앞마당에서 바라다보는 수령 500년이 더 넘은 울창한 전나무들과 세월을 소통한다.
인간의 앎이라는게 고작 기록 몇 개일 뿐인데,
나무의 앎이라는 것은 얼마나 장구한 것인가.
말없이 그저 나무가 전하는 기운만 감지한다.
그게 나무와의 소통이라 생각하여 보지만 정작 그 장구한 세월을 담고 있은 나무가 전하는 언어를 가늠조차도 못하고 있다.

작열하던 여름의 태양을 견딘 잎새가 파르르 흔들리고 있다.
몰래 지나치지 못하도록 가을채색을 시작하고 있는 잎새가 감미롭다.
터덕터덕 적멸보궁으로 난 길을 오른다.

풀들은 저 마다의 소명을 다하여 환하게 꽃피우고 있다.
인간은 터덕터덕 걸으면서 시간을 메우고 있고,
풀들은 아름다운 자태로 꽃피워 공간을 메우고 있다.

길가 비켜선 바위가 고즈넉하게 시간과 공간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바위의 몸체 위로는 인간의 기원을 담은 돌조각이 무성하다.
바위의 기원과 인간의 시간과 꽃의 공간이 맞닿은 곳에 드디어 만나게 되는 적멸보궁이다(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라 불상이 없음).
아스라히 적멸보궁의 파란 지붕만이 보인다.

지붕보다 더 맑은 파란 하늘이 보인다.
탐방객의 분주함이 푹푹 계단의 먼지를 일으키고 있건만,
육중한 나무들이 보호하는 듯 아마득한 고요가 내려오고 있다.
"아하"하고 탄성을 질러대야만 직성이 풀릴 듯이 기막힌 터 위에 적멸보궁이 자리잡고 있다.
턱하니 정좌를 하기만 하면 세사를 다 떨치게 될 듯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를 절경이라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터는 ''절터''라고 하여야 할 텐데,
적멸보궁이 천하명당의 그 절터를 차지하고 있다.

절터에서 올려다보는 비로봉이다.
비로봉이 모나지 않게 숨결조차도 닿을 곳에서 가슴을 벌리고 있다.
능선자락을 손처럼 펼쳐 어서 오라고 수신호를 보낸다.
굽이 돌아서면 금세 나타나서 악수라도 청할 것 같던 비로봉이 울창한 나무숲에 숨어버린다.

비로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경사스럽다.
죽어 하얀 주목이 자신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비로봉의 전령사라도 된 듯이 하얀 주목이 울창한 숲을 대동하고 있지만 홀로인 듯 고혹스럽게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그 하늘이 바로 해발 1.563 미터의 비로봉이다.

비로봉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한다.
설악산의 대청봉이 참한 성질의 소뿔처럼 다가온다.
백설이 성급하게 내린 듯 대관령의 넓은 목장이 평온으로 희다.
넘실되는 파도가 몰아쳐 오는 듯이 주문진의 동해바다가 푸르다.
안개에 뒤덮인 호령산의 기개가 군사를 모으는 듯이 철쭉나무군집을 만들어 비로봉을 사모하고 있다.

산깊으면 계곡도 깊다.
산넓으면 평화도 넓다.
깊은 오대산에서는 계곡조차도 평화를 위하여 대체하고 있는 듯 깊은 계곡 대신에 넓은 평화를 넘친다.
비로봉정상에서 하염없이 평화로움에 잠들어 본다.
하산조차도 잊었다.
한낮의 시간이 그렇게 무방비로 다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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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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