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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08-20 14: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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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인 칼럼니스트
팔공산(동봉-해발 1155미터)

바람이 달려가서 머무는 곳에서 제일 먼저 동이 터 오른다.
어둠에 가린 아름다운 상상이 여명으로부터 몰려온 밝음 앞에서 죄다 일상의 속내를 내보이기 시작하는 아침의 약한 햇살이 팔공폭포의 하얀 폭포수를 내리 비추고 있다.
팔공산을 통 틀어서 유일한 폭포가 팔공(일명 공산)폭포다.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가 포효하고 있다.

세찬 물줄기가 우렁차게 소리하고 있지만 아침 동 터오름이 견인하여온 산의 고요를 이기지 못하여 고적스럽다.
하얀 물줄기가 청아한 맑음을 내보이고 있지만 아침 햇살의 영롱한 맑음에 의탁하여 허공에 무지개를 그리고 있다.
계곡의 수정같은 맑음을 바라본다.
팔공폭포에서 동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맑은 계곡소리의 동행이 있다.

걷기에 좋은 길이 있고, 관상하기에 아름다운 길이 있다.
산중턱의 진불암까지의 길이 걷기에 좋은 길이라면,
진불암에서 동봉까지의 길은 관상하기에 좋은 길로 구분된다.

차마 넘어서기에 아까운 너무나 맑은 계곡을 좌측에 두고서 진불암에 이르는 길은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고즈넉함이 묻어 있다.
가파르지도 비좁지도 않은 완경사를 따라 오르다 보면 진불암이 큰 노송 몇 그루의 호위속에 나타난다.
산은 햇살을 사무치듯 좋아한다.
어느 산이던 햇살이 더 많이 드는 동남향으로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햇살이 더디게 드는 서북향의 산의 면적보다 어마하게 더 넓은 것이다.
응달인 산의 서북향은 세월좋게 햇살을 즐길 수 없기에 넓은 면적을 가지지 못하여 가파르고 경사가 심하다.
산의 폭포가 주로 서북방향에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팔공폭포에서 동봉으로 오르는 서북면의 더딘 햇살과 급경사의 좁은 면적의 와중에서도 가장 햇살이 많이 드는 터넓은 곳에 진불암이 자리하고 있다.
햇살을 받은 노송이 더욱 푸르다.
대나무숲을 걷던 나그네가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
겁에 질린 나그네는 사력을 다하여 줄행랑을 쳤고 화가 난 호랑이는 그 나그네를 잡으려고 뛰었다.
호랑이게 잡히려는 순간 나그네는 체념하면서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도망치고 있는데, 어라 호랑이 앞질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가 달리기 경주로 착각하고서 나그네를 힘차게 앞질러 갔던 것이었다.

작은 대나무숲을 보면서 사람이 살던 터와 호랑이가 동시에 떠오른다.
거칠 것이 없던 호랑이라도 대나무숲은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집주변에 대나무를 빼곡히 심었던 것이다.
산깊은 곳의 대나무숲을 지나치며 옛 시간의 인기척을 느낀다.

산의 자태가 행복하다.
능선에 올라 준령과 고산을 한꺼번에 본다.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준령의 신령재방향이고 우측으로 올려다보면 최고봉의 비로봉이 눈앞이다.
팔공산에서 제일 높은 비로봉은 군기지가 되어 범접할 수 없어 마음 아깝지만 터 넓은 준령과 터 높은 고산을 함께 바라다보는 마음의 행복이 감쇄되지는 않는다.

마음행복을 배가하는 아름다운 바위가 능선길의 중간에 있다.
평상처럼 고른 평면바위라 아름답고,
세월의 풍상을 다 받아드려 모난 데가 없어 아름답고,
능선에서는 제일 큰 적송들이 바위를 감싸고 있어 그 조화가 아름답고,
앉으면 시선을 가리는 것이 없는 조망이 아름답다.
그 바위에 맥을 놓고 앉아 하염없이 산 전체의 위용스러움을 관조한다.
시간이 그리 적요하기 때문이다.
팔공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위이다.

팔공산 동봉이 있어 대구는 희망이다.
희망이 있는 곳에서는 화합과 평화가 넘친다.
좌절하여 침체하고 있는 자 동봉에 올라 시련을 멀리 날리고서 새로운 각오를 산 오르는 근육처럼 단단하게 다진다.
모진 각고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성취를 누리고 있는 자 동봉에 올라 더욱더 겸허하게 살리라 다짐하게 된다.
동봉이 대구의 희망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대구가 다시 부흥한다면 동봉의 기여가 크리라.

동봉 바로 아래의 경사가 급한 나무계단을 오른다.
서둘러 오르려는 사람들이 숨이 차는지 "비껴(비켜)주세요"라고 거친 억양의 말문을 연다.
"산에 오느라 빗(머릿빗)은 안가지고 와서 빗껴 줄 수 없는데요"라고 답하고서 허허 웃음을 만든다.
금세 헉헉이는 숨참이 다 산화하여 버린 것인지 마음평정으로 정상 의 표지석을 바라다본다.

동봉을 너머서 달려온 서봉에는 내밀한 생명이 숨쉬고 있다.
몰려든 인파의 동봉에는 자신만의 희망이라는 이기가 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라면 서봉의 주변은 식물이며 곤충의 적합한 서식의 장이다.
서봉의 고요에서 동봉의 분주함을 바라다본다.
서봉의 자연이 동봉의 인공을 받치고 있다.
서봉 바로 아래의 폐허가 된 옛 절터의 아늑한 품에 터 잡고 앉아 절의 부활을 생각하여 본다.

선본사 뒷켠으로 접어드는 오솔길에 조바하는 마음들이 모였다.
팔공폭포에서 동봉에 이르는 횡으로의 산행의 후속편으로 선본사에서 동봉에 이르는 종으로의 산행을 도모하기 위한 마음들이 그렇게 모였다.
더덕냄새가 물씬하다.
자연의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족하다.
제철인 송이를 찾느라 소나무 아래를 더덕더덕 다 뒤집어 놓는 인간의 속내가 좁다.

갓바위를 먼 발치에서 아스라히 바라다보고 있는 병풍바위가 시간의 무심을 즐기고 있다.
그 바위 위에 유심인 인간의 마음으로 휴식의 담소를 한다.
무심의 마음일 땐 바위며 산의 조망이 너무나 웅대하여 보이더니만 유심의 마음일 땐 모든게 작아 보이기만 하는가 보다.
세 갈래의 산갈림길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의 골프장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Y자 모양의 세 갈래는 은해사 중앙암 방면, 갓바위 방면, 동봉방면이다.
동봉으로 가는 길이 제일 먼 길이다.

추상의 먼 길을 나서는 마음이 그렇게 조바하였던 것이었다.
큰 활의 모양새를 본다.
갓바위에서 동봉의 산능선이 그렇게 대구를 품에 안고 있다.
대구가 안온하게 보인다.과녁을 조준하는 왼손이 잡고 있는 활부분쯤의 능선에서 바라다보는 대구가 그렇게 안온할 수가 없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한다.
옛적에 장수가 전쟁터에 나가서 적들과 용감하게 싸웠다.
단숨에 적을 다 무찌르고서 크게 외쳤다.
"인자(이제는)무적(적이 없다)이다".

대단한 인내를 요하는 지난한 산행길이 바로 갓바위에서 동봉에 이르는 바위길이다.
신령재의 솟을 바위가 우람하게 먼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다.
화룡점청(化龍點晴)이라 한다.
단조롭고 지난한 먼 길의 상념을 단숨에 뒤집어 버리려는 듯 동봉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 거칠고 험한 위세를 다 보여주려는 듯 바위들이 한꺼번에 우람한 윗통을 다 드러내고 있다.
마치 점 하나로 마지막 눈을 그려 용을 완성시키듯이 바위들이 마지막 위세를 부려 동봉을 완성하려는 듯하다.

동봉은 그 긴 능선길 때문에 인자무적이며,
그 바위가 정상에 당도하기 직전 한꺼번에 험난한 위세를 내보이고 있기에 화룡점청이다.
인자무적하고 화룡점청하면 이 세상에 성취하지 못할 일이 그 무엇이 있을 것인가.
동봉이 그래서 대구의 동그란 희망으로 징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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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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