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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08-15 22: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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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비로봉(해발 1439미터)

물욕을 멀리하라 한다.
소백산에서는 몸이 그렇게 닮아간다.
영욕에 초연하라 한다.
소백산에서는 마음이 그렇게 닮아간다.

맑다.
산은 깊은데 계곡은 소담하다.
계곡 흐르는 물이 빗물이 아니라 영롱한 꽃잎의 몸체를 타고내린 아침이슬 같다.
그 맑음이 모여서 흐르는 듯 구슬같이 맑다.

높이 솟은 소백산이다.
가는 가지를 펼치듯이 폭쫍은 계곡만 가지가지 거느리고 있어 소백산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정상에 소가 백마리는 있다 하여 소백산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아니 100보다는 적은 99의 산이라서 소백산이 아닐까 하는 해석으로 웃어 본다.
가을의 소백에는 99%의 맑음을 만나게 된다.

비로사 산초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너무 맑아 눈이 부시다.
사철푸른 소나무조차도 가을에 감응하고 있다.
덩달아 가지에는 노란 낙엽을 만들어 시간나들이를 하고 있다.
하늘 맞닿은 가지에 단풍처럼 노란 갈비를 달고 바람을 만나고 있다.
서두른 갈비가 벌써 나무에서 분주한 시간을 접고 땅에 내려앉았다.

휴식의 명상으로 지상의 풍경이 한가롭다.
군데군데 잣나무의 군락이 오수에 잠들어 있다.
나무 아래로 난 등산로만이 번잡하다.
나무들은 잠들어 있으면서 산소를 제일 많이 뿜어낸다.
나무가 만든 맑음일 것이다.

부드럽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나서 웃옷을 벗어낸다.
땀이 보송하다.
능선의 바위까지 배웅을 나온 맑은 바람소리를 만난다.
그 소리가 너무나 세차다.
소리만 들으면 겨울의 한가운데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바람은 계곡 안에서만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계절풍이 가장 분명하게 부는 곳이 소백산이다.
옛부터 '바람의 산'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름에는 남동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그 방향을 따라 성질을 부린다.
바람은 산의 기풍조차도 정하는가 보다.
여름과 겨울의 계절에 방향을 다 양보한 가을바람이 계곡 안에서만 포효하고 있다.
소망의 바램을 가득 품에 담은 가을바람이 더없이 부드럽다.

남동쪽 양지에 자라는 나무들의 모양새는 천편일률로 고르다.
다툼이 없는 듯 그저 같은 모양새로 산을 덮고 있다.
그러나 북서쪽의 나무들은 저 마다의 다른 기개로 모양새가 거칠다.
동남쪽에서 인공의 산이 지배하고 있다면 북서쪽에서는 제 각각의 자연의 산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북서쪽 산능성이에서 제 각각의 개성으로 연출하고 있는 산의 자태가 장엄한 채색의 조화를 만들고 있다.가을에 비로소 그 양방면의 대비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소백의 몸체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에 닿는다.
국망봉에서 언약하였다.
시간을 추스려서 곧바로 비로봉에 오리라고 마음에 다짐하였다.
마음의 언약은 아무도 듣지 못하기에 나중에 흐지부지되어도 그 만일 테다.
그 언약에 미소한다.
이제서야 그 언약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이 그 언약의 이행에 화답한다.

하늘을 다 담은 물동이 형상으로 비로봉정상이 고요하다.
산이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비로봉에서 정지하고 있다.
하늘의 마음을 아는 듯 정상 능선에서 자라고 있는 억새며 풀들조차도 위로 자라는게 아니라 고개를 순순히 아래로 숙이고 있다.

예로부터 흰백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산에서는 하늘의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이외의 산에서는 천신이 아니라 산신에게 제를 지냈던 것이다.
백두산, 태백산 등과 함께 소백산이 그 중에 하나였다.
소백은 곧 하늘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위계가 산에 통할리가 만무하다.산에 품계가 있을리가 만무하다.
소백산에서 천신께 제를 올렸던 것은 비로봉에 하늘이 정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에서 마음이 탁 트인다.
정지가 활동을 대신하고 있는 듯 비로봉을 향하여 달려온 대평원이 넓다.
제1연화봉과 제2연화봉 사이의 산봉 하나를 잠식하고 있는 천문대 하얀 건축이 부조화다.
더 멀리의 월악산이 구름아래 희미하다.
국망봉이 거울처럼 햇살을 반사하여 신호를 보내고 있다.
희방사쪽의 북서 경사면에 주목이 막 물든 단풍을 제치고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다.
어의곡리 마을이 올망하게 움츠려 가을시간을 조형하고 있다.

나무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풀숲에 털썩 앉아본다.
텅비운 마음이 넓은 소백산을 다 채우고 있다.
텅비운 마음이 소백산을 에워싼 하늘까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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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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