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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6-24 21: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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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산(해발 469,1미터)

때가 있다.
때는 의미가 된다.
때는 의미있는 모든 것을 점지한다.

장마가 그친다.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에만 몰두하여 왔다.
장마가 인간의 그러한 소행을 호되게 질타한다.
자연에 대하여 소홀했던 인간들의 과오를 반성하여 보지만,
그러나 너무나 때가 늦었다.
장마의 파괴가 늘 가공스럽다.

마음에 숙연한 순수가 있다.
성암산에 오른다.

꿋꿋하다.
세사에 핑계를 되지 않는다.
작은 이유로 변명을 만들지 않는다.
이기심이 판단의 근거 되지 않는다.
선 큰 모습으로 성암산의 시점인 욱수골이다.
낮은 곳에서 산능선을 쳐다본다.
성암산으로 이어지는 공제선이 활처럼 부드러운 동선이 된다.

의연하다.
나의 가치로 세상을 평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이기로 타인을 평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머리의 생각과 계산이 발붙이지 못한다.
가슴의 행동과 다감만이 넘친다.
작은 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공존과 화합의 정겨움이 저절로 넘친다.
꿋꿋함으로 의연함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성암산이 화답한다.
성암산은 수채화의 채색보다도 더 푸르게 미소한다.
푸른 나뭇잎은 마치 옷자락을 흔들듯 환영이라고 표시한다.

계절의 청포도가 맑다.
산에서의 내려보낸 공기가 맑기 때문이다.
계절의 능소화가 주황빛으로 농염하다.
햇살이 작열하면서 담벼락을 내리쬐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휘익 접어든다.
햇살은 저 만치에 물러나 있고
맑은 공기는 이 만치에 와 닿는다.
비의 흔적이 아련하다.
움푹 패인 땅이 아직도 처절한데,
산길은 수로가 되어 물이 졸졸이다.
강냉이(옥수수) 전하여주는 이웃처럼 욱수골이 편하다.

발에 돌 하나가 툭 걸린다.
손에 나무가지 하나가 툭 잡힌다.
물기 머금은 돌들이 생생하다.
지상 가까이에 가지를 내린 나무들이 안정적이다.
능선의 소나무가 우애스럽다.
소나무는 어울려 숲을 만들기에 그렇다.
능선에서 택하는 용지봉 향하는 길이 안온하다.
참나무에 가린 계곡이 깊다.
산의 중턱을 가르는 굴참나무 아래의 수평길은 언제나 인간적이다.
그 길에 접어들면 인간은 순수로 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려올 산을 왜오르느랴?"고 물어온다.
" 다 뱉어낼 공기를 왜 들어마시느냐"라고 화답한다.
산에는 인간의 본래가 있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것이다.
정상을 향하는 수직의 길을 걸을 동안에는 세상을 잊을 수 있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수평의 길을 걸을 때에는 마음의 평화를 만난다.
수평의 능선길에 접어 들면서 그 평화를 온 몸으로 체득한다.

하늘에 맞닿은 굴참나무를 본다.
굴참나무는 낮선 이방에게도 전하여 줄 것이 아주 많은가 보다.
산에서 제일 높이 자란 굴참나무이다.
굴참나무가 하늘과 지상을 매개하고 있다.
굴참나무가 있음으로 하여,
산에서는 천, 지, 인의 합일이 있는 것이다.
욱수골에서 용지봉으로 가는 길의 굴참나무가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
굴참나무를 매개로 하여 인간의 본래를 본다.

산길이 아름답다.
산에 접어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임도조차도 편안하다.
언젠가 소용되는 것이기 그렇다.
용지봉을 오른편에 두고서,
성암산을 난 능선길 속으로 꽁무니를 감춘다.

노란 참외의 곡선을 돌아가듯이 참외의 배꼽 쯤에서 산깊음에 고마워한다.
성암산은 참외의 꼭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그 곳에 우뚝 서 있다.
가을에 오면 너무나 아름답다 한다.
겨울에 오면 너무나 환상적이라 한다.
봄에 오면 너무나 매혹적이라 한다.
지금,
여름에 가을과 겨울과 봄을 동시에 만난다.
동시통역처럼 성암산의 사계절을 만난다.

가볍게 생각하고 나선 성암산이다.
잔디는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보호막이 된 자부심으로 뿌듯한 자태이다.
자작나무가 저 홀로 서서 가벼운 잎새의 흔들림을 내보이고 있다.
몸체를 흔들면서 한낮의 시간들을 조형하고 있는 억새가 키보다도 높다.
안개보다도 더 높이에서 하얗게 하늘을 뒤덮고 있는 구름이 한가롭다.
자연의 것들은 한 낮의 더위에 무관한듯 초연하다.

정상은 아직 저 먼 곳이다.
먼 곳이 주는 의미들로 인하여 마음이 서두른다.
산에서는 가벼움이 없다.
산에서는 내세움은 금물이다.
성암산이 먼 무거움의 모습으로 내려 보고 있다.
산을 무겁게 생각하면 인간은 지혜로워 지는 것이다.
산에서 인간의 입이 무거워지면 산은 환하게 말을 전하는 것이다.
말없음으로 묵묵히 걷는다.
세상에 그 보다 더한 의미있음이 또 무엇이 있으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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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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