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09-06-17 13:11:40
기사수정
▲ 사진설명: 지리산 불일 폭포
지리산(노고단-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뱀사골)


봄은 겨울을 타고 온다.
천길 낭떠리같이 깎아지른 경사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겨울의 지평을 넘어서 오는 것이다.
봄은 완만한 평지처럼 오기에 평지풍파를 대동하지 않는 것이다.

봄은 회색에서 시작한다.
겨우내 햇살이 그리워 검게 타버린 산이었다.
물푸레나무가 봄을 예고한다.
물푸레나무의 회색이 더욱 선명하여진 것이다.
봄은 물푸레나무의 회색에서 오는 것이다.
회색은 곧 청색이 되어 여름을 이끌 것이다.
봄의 시작하였다면 곧 여름이 되는 것이다.

봄은 그리움에서 온다.
잘 생긴 소나무아래의 진달래가 붉다.
마치 누나의 립스틱같다.
진달래가 그리도 붉게 피어나는 것은,
겨우내를 참고 기다린 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리움에 지쳐 혼절하기 직전에 구급차처럼 봄이 오는 것이다.

봄엔 동행이 있어 즐거운 것이다.
움추림의 블랙홀에 빠져든 겨울의 시간에 정지시켰던 움직임이 태동한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의 적막이 해빙의 물살처럼 졸졸 흐른다.
냉한 적막의 산에 차가움과 따사함이 교차한다.
그 산에 동행이 있어 사람들은 고마운 것이다.
그 산에 동행이 있어 산들은 신이 난 것이다.

봄의 반주에 몸을 실고 노고단에 오른다.
지친 몸을 이끌고서도 고단하지 않는 산이다(No-고단).
조망을 위하여 만들어진 산같다.
오르는 길목에서부터 내려다볼 수 있는 화엄사이다.
응달을 오르면서도 듣는 물소리이다.
얼음장이 하얗게 자기과시를 하고 있는데에도 불어오는 따사한 바람이다.

그 겨울에 설화가 떠오른다.
온 산이 하얗게 설화로 치장하고 있었던 그 해의 겨울,
차가움도 잊었다.
시간도 잊었다.
산을 떠나지 못하는 노고단이었다.
산을 떠날 수 없는 걸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절경에 도취되어 숨소리조차도 크게 내지 못하였다.
그 겨울에는 그랬었다.

겨울을 타고 넘어온 봄에,
그 해 겨울의 설화를 빚어낸 경사면의 나무들을 쳐다본다.
마중하기 위하여 치장을 마친 여인네처럼 다소곳하다.
눈맞춤인 것이다.
사진작가들이 에워싸고 터잡고 있었던 그 터에는 빈 바람만 세차다.
그 곳의 능선의 평평한 안부에 턱하니 선다.
더 보탤 것도,
더 버릴 것도 없다.
그 만으로로 자연이며 산이다.
그 곳에서 무아지경에 취한다.
그 곳에서는 다정도 다감도 거두어 들일 수 없다.
노고단에서는 산을 향한 그리움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이다.

노고단의 여름은 경계가 없다.
겨우내 사방을 살피느라 고단한 초병들이었다.
녹음의 푸름때문에 살피는 것이 또 고단할 것이다.
녹음의 푸름때문에 숨는 것도 수월한 것이다.
노고단에 걸음 하나 내려 놓는다.
걸음이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만든다.
천황봉으로 향하는 거대한 걸음이 시작된다.
여름은 산을 덮어 경계를 무위로 만들었것만,
걸음은 경계를 만들어 천왕봉속으로 빠져든다.
녹음의 푸름은 빗자루가 걸음의 꽁무니조차 지운다.

마치 지각생처럼,
이제서야 출석을 하는듯 철쭉 하나가 애처롭다.
걸음이 서두니 눈여겨 볼 수야 없지만,
그 피어난 애틋한 사연이 분홍으로 붉다.
발걸음에 돌이 퉁퉁 튕긴다.
햇살이 따가운듯 그늘에 멈추는 돌이다.
천왕봉 가는 길이 좀 더 평평하여 질 것이다.
돌 하나를 걷어 내었기 때문이다.
돌에 부딪힌 나무가 파르르 몸체를 떤다.
거대한 지리산이 미소처럼 흔들린다.

반야봉이 더벅머리처럼 자유롭다.
여름이 반야봉에서 그 무성함을 멈추었다.
노고단에서 보내는 뭇 시선들이 부끄러운 듯,
반야봉이 여름푸름으로 속살을 감추듯 옷치장을 한 것이다.
밤에 갈 길을 알려 주던 달맞이 꽃이다.
임걸령의 샘물이 차다.
샘물은 마르지 않는데,
달맞이 꽃은 아직 시간을 기다리는가 보다.
여름이 무르익으면 노랗게 필 것이다.
달맞이 꽃은 밤에 반야봉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물 한 바가지 들이키면서 노란 갈증을 삭인다.

삼도봉에 그늘이 내린다.
넓게 트인 전망에 가슴이 쏴아하고 트인다.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많은 삼도봉이다.
반야봉을 사모하는 삼도봉이다.
들키지 않으려고 삼면에 조망의 터를 만든 것이다.
반야봉의 면만이 조망할 수가 없는 모양새이다.
아마도 삼도봉 저 혼자서 반야봉을 올려다 보고픈가 보다.
행여 반야봉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갈까 그런가 보다.

뱀사골이 솟아올랐다.
숱한 용들이 뱀사골을 타고 승천하였다.
뱀사골의 계곡이 그리도 긴 까닭은,
승천을 꿈꾸면서 기회를 도사린 용들을 안전하게 숨게 하기 위함이다.
세월이 무용이 되는 계곡이다.
500백년 전에도 물이 흘렀을 것이다.
성이 난듯 우렁찼을 것이다.
500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이 찾는다.
계곡이 보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일 것이다.
뱀사골에서는 물이 주연인 까닭이다.
뱀사골에서는 사람이 주연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계곡에 흐르는 물이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 계곡을 지켜보느라 하염없이 세월을 잊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사진출처: 지리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323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