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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6-02 19: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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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공산 국립공원
팔공산(공산폭포-진불암-동봉)

길을 걷는다.
어제도 걸었다.
내일도 걸을 것이다.
계주달리기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가 바통을 이어받아 걸어 줄 것도 아니다.
어제 걸었다 하여 이어진 길을 걷는 것도 아니다.
돌아와 어제의 길을 다시 걷는 것이다.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길이 익숙하여져 있다 하여도.
어제의 곤함이 오늘에 남아 있는 것이다.
또 걷는 것이 성가신 것이 될 수도 있다.

길을 나선다.
어제부터 설렘이었다.
산행을 예비하는 마음이 늘 그러하다.
울창한 굴참나무의 가지를 밀친다.
마음이 다급하여서 얼굴부터 내민다.
사립문 밀치기도 전에 얼굴을 내미는 주인같다.
찾아온 손님을 살피고 싶은 앞서는 마음이다.
곤한 발걸음은 무거운데,
고개를 내밀어서 폭포를 먼저 대면하고 싶은 것이다.

공산폭포(일명 팔공폭포).
녹음이 알알이 소리를 삼키고 있다.
폭포가 우뢰같은 굉음을 내고 있다.
녹음이 폭포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있다.
폭포수는 낙하하는 것이 못내 아까운 듯,
하얀 포말이 되어 하늘에 부딪히고 있다.
겨울의 그 혹한이 사무쳤나 보다.

봄의 그 연미색 피어남이 그리웠나 보다.
그 속마음의 응어리가 깊었었나 보다.
폭포수가 만든 소용돌이가 예사롭지 않다.
공산폭포의 맑음에 마음 쏴 하고 트인다.
청아함으로 팔공산을 호령하고 있다.

속으로 후련하다.
집착은 그 속성이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산은 세상의 것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마음은 숲의 녹색을 닮기 때문이다.
숲에서는 저 홀로 자라는 나무란 없는 것이다.
홀로 자란 나무라하여도 숲이 되어 어울리는 것이다.
사는 것은 집착이 아니라,

자신을 다 내주는 어울려 있음인 것이다.
진불암으로 향하는 흙길에 접어든다.
고향의 토담길이 떠오른다.
햇살을 받아 따사한 토담이다.
담벼락에 기대어 소근 되던 친구가 그립다.
성장통을 나눈 친구가 있어 세상에 너그러운 것이다.
우정이 있었기에 방보다 더 포근했던 토담이었다.

걸음을 멈춘다.
한 눈을 살며시 감는다.
가늠하듯이,
천상의 소리를 내는 새의 방향을 찾는다.
우거진 숲이다.
숲은 창공을 올려다보는 것도 버겁게 한다.
애초부터 새의 행방에 관심이 없다.
그 정도는 몸짓하여야 예의인 것이다.

반가움을 소리로 반기는 새에 대한 성의인 것이다.
처연하게 걸음을 옮긴다.
새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새들이 알아차린 것이다.
걸음소리가 자신의 소리에 화답이 된 것이다.

터벅터벅 오른다.
마음이 풍성해 진다.
생각이 기분을 정하는 것이다.
능선에서 뒤돌아본다.
걸어온 곳이 저만치 보인다.
실은 조금밖에 실행을 안 한 것이다.
걸어온 곳이 아마득하게 보인다.
가야할 길이 조금밖에 안 남은 것이다.
 
산행은 여정이다.
걷는 동안에 사람을 만나고,
걷는 동안에 우정을 쌓아 가고,
걷는 덕에 사랑을 만나고,
인생의 걸음이 그러하다.
걷는 것이 움직임이라 하여
흔들려서 비워지는 잔속의 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정에서 생의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걸음걸음 산행이 곧 생의 여정인 것이다.

운이 좋아,
여정에서 멋진 친구를 만난다.
그리하여 생이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인연이 되어,
인생을 함께할 동반을 만난다.
그리하여 보듬어 생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이미 길을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의 열매인 것이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결실할 수 없는 열매인 것이다.
걷는 것은 행운이 된다.
가야 할 길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갈 길이 지나 온 길보다는 더 길었으면 좋겠다.
같이 걸어야 할 사람이 많고,
또 새롭게 만나야 할 사람이 더 있는 것이다.

바위에 앉는다.
동봉 아래에 제일 멋진 바위이다.
소나무가 처마처럼 바위의 난간을 덮었다.
운치의 최고는 바위와 소나무의 조화이다.
묵묵한 바위가 침묵하면,
소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말을 한다.
묵직한 바위가 부동하면,
소나무는 가지로 덩실 춤을 청한다.

난간의 바위가 조망을 만들면,
소나무는 가지를 수평으로 펼쳐 조망할 곳을 가르킨다.
그곳에 취하여 더는 오를 의욕을 접었다.
인간의 허장성세가
그 바위위에서는 한 갗 헛된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지난 온 길이 얼마면 어떠하고,
가야 할 길이 얼마면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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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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