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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4-10 14: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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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해발 801,5미터)

길이 없다.
금정산 정상에 서면 하산을 잊는다.
하산하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은 보이는 데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 금정산이다.
길이 없는 정상이 사방으로 통한다.
우물 정(井)자의 네 귀퉁이가 다 하산하는 통로이다.

신록은 저 혼자 무성하다.
바위는 저 홀로 묵상한다.
산성은 저 홀로 장대하다.
쉽게 길을 터주지 않으려는 듯이
바람을 몰아가려는 듯이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이어진 산길 접어든다.
오르는 길은 없고 옆으로 가는 길만 있는 듯
상마리에서 시작하여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그렇다.

비내린 후의 습도가 냉하다.
물기를 다 털지 못한 잎새가 푸르다.
치장하는 솜씨라도 터득한 듯 나무들이 아담하다.
주춧돌 크기의 돌들이 빈자리를 내어준다.
쉬어가면서 나무들을 보라고 하는 듯하다.
앞서간 마음이 발동하여 소나무를 안아본다.
소나무 아름드리가 눈높이에서 아늑하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툭 흔들어 보건만,
원심력으로 작동하는 듯 소나무는 금새 자세를 바로잡는다.

반환점을 돌듯이
소나무를 지나쳐 둔턱의 언덕에 오른다.
오르는 길에는 바위를 지나서 또 바위이다.
바위에 앉아 바라보는 나리 꽃 하나가 상큼하다.
나리꽃은 제 철의 고적한 자태로 시간을 조형하고 있다.
한 줄기 비가 내린다.
햇살이 없는 곳에서 나리 꽃은 그 선명도로 시간을 가르키고 있다.
아름다움의 소용에다 시간기능까지 하고 있다.
금정산에서는 나리 꽃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유(U)자 형상의 바위 틈새로 부산을 본다.
외계의 기술로 지은 듯 아파트가 하늘높다.
바다가 높이의 성원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위에 솟은 마천루같다.
아파트의 입장에서 보면 바다가 배경이지만,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가 배경이 된다.
산의 입장에서 보면 그 모두가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산속에서 정상을 본다.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에서 보든 듯 편하다.
구름이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름에 가린 정상이 가깝다.
정상 아래의 터 넓은 통바위가 파도처럼 하얗다.
바위가 시선을 보내는 곳은 바다의 푸르름일 것이다.
바다는 바위를 닮고 바위는 파도를 닮았다.
그래서 평온하다.
닮음에는 시샘도 다툼도 없기 때문이다.

돌로 쌓는 금정산성의 뜻을 헤아려 본다.
문득 만리장성의 길이로 가늠하여 본다.
금정산성에 숨은 의미가 그렇게 만리장성보다도 긴 것이다.
민초들의 노고였을 것이다.
그 엄청난 노동으로 막으려고 한 것은 왜적뿐이었을까.
쌓으려고 한 것이 후세의 공덕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자신의 현재를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염원을 이루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염원이 하도 강하여 우리가 부강한 것은 아닐까
고스란히 원형을 보존한 성이 장엄하다.

북문에 오른다.
고향을 떠나온 장졸들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연상된다.
돌아갈 고향으로 인하여 차가움도 배고픔도 이겼을 것이다.
쩌렁쩌렁하게 호령하던 옛 함성을 떠올린다.
싸워야 하는 것이 민족이 아니라 적이었기에 그렇게 호령하였을 것이다.
양 날개를 펼치듯 성의 대칭이 견고하다.
북문에서 올랴다 보니 이제서야 금정의 정상이 배시시 보인다.

걸음이 쾌속이다.
조금만 지체하면 놓치고 마는 연락선에라도 오르려는 듯,
정상으로 향하는 마음이 그렇게 서둔다.
행렬이 이어진다.
맞잡은 손을 놓치기만 하면 이별하고 마는 피난민처럼,
정상가는 데에는 뒤쳐지고 싶지 않아서이다.
정상이 어디로 도망하지도 않는 데,
정상의 높이가 더 낮아지는 것도 아닌 데,
전설의 고당신당을 지나 정상에 선다.
사방이 다 푸르름으로 바쁘다.

달콤하다.
하산길의 계곡에 발을 담군다.
평면바위에 배냥을 베개삼아 오수에 빠진다.
안빈낙도하라 한다.
편안한 빈곤을 체득하여 본다.
즐거운 도를 깨치지 않아도 넉넉이다.
계곡의 물살이 하얀 포말을 만들며 숲의 그늘로 흘러간다.
그늘을 따라 하산하는 길은 이미 선계이다.
산속에 있을 때에는 도시와 산의 경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만들고 있는 범어사 일주문에 기댄다.
몸이 기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기대고 싶은 것이다.
일주문이 기둥 하나로 건축을 완성하고 있다.
신비함을 본다.
그리도 많은 내방자가 분비건만 대웅전에서도 지장전에서도 청량한 기운을 느낀다.
일주문이 완성시킨 저 마다의 경지일 것이다.
기댄 마음이 완성의 근처에 이르기도 전에 벌써 출발점에 당도한다.
미완성으로도 그저 기쁜 것이다.
다음에 또 올라야 하는 산이 남아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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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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