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6-06-23 19:52:09
  • 수정 2016-07-17 21:22:30
기사수정



이팔웅논설실장


제 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인명피해를 낸 전쟁은 6.25 한국전쟁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남북 상잔의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발발해 3년 1개월 2일 동안의 걸친 무력 충돌은 남북 양측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혔고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 되었다.

남한의 민간인 인명 피해를 보면 사망 373,599명 부상 229,625명이며 한국군 전사자 58,809명 부상자 178,632명 실종자 82318명, 한편 유엔군 사망자 36991명 부상자 115648명 실종자 6994명이다.

북한의 피해를 보면 민간인 사망자 200만명 북한군과 중공군 전사자 52만명 부상자 40만 6천명이다. 이 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한국전쟁은 2016년 6월25일로 66주년이 된다.

우리가 결 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슴 아픈 민족상잔의 6. 25 전쟁은 종전 아닌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무력 충돌만은 멎게 됐지만 남북간의 총성 없는 무력 대치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한반도에는 불안한 평화가 이 시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5000만 인구 가운데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불과 20%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우리 안보에 대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의 상황인식이다. 전면적인 무력충돌이 없다고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된 것으로 안도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전후 세대들은 평화시대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나라의 동량들인 젊은 세대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6. 25전쟁이 발발한지 66년이라는 세월과 시간이 흐른 지금 6. 25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후 세대를 위해서 말이다.

-전쟁의 발발 원인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운 김일성이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한 야욕으로 스탈린의 허락을 받아 무력으로 침공해서 일어난 전쟁이 바로 6. 25 한국전쟁이다.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북한의 20만 군은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우고 개전 4일만에 북한의 105탱크부대 선발대가 6월28일 오전 10시서울역에 도착함으로서 서울을 점령한 것이다.

또 다른 전쟁 발발 원인으로 미국의 극동방위선인 애치슨(dean gooderham acheson)라인 선포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에 잠시 설명하고자 한다. 1950년 1월12일 미국국무장관인 애치슨이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에서의 위기”라는 연설을 통해 미국의 극동방위선은 ‘알류산 열도, 일본, 오끼나와, 필립핀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선포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한반도의 남한과 대만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쏙빠진 것이다. 이것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남침유도설이라고 해석해 6.25전쟁이 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일성은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자 한껏 고무되어 남한 적화에 자신했다고 스타린에게 보고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애치슨 라인 선언의 사실은 미국이 소련과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북경을 겨냥한 것으로 그 목적은 중국의 “티토화”를 우려한 미국이 중국에 대한 평화제스쳐이고 중국과 소련의 이간 정책이었다고 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발발과 UN

북한이 불법적으로 남한을 침공했다는 보고를 대통령별장에서 받은 당시 트루만 미국대통령은 “공산주의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어야겠다고” 일갈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미국은 즉각 안보리를 소집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한 논의를 했다.

UN군을 한반도에 파견해 공산군의 남하를 저지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한국가가 파병을 반대하면 안보리의 결의는 무산되는 것이다. 당시 반대할 수 있는 국가는 소련뿐이었다.

최종적으로 파병 결의안을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련이 불참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련이 왜 불참했느냐다. 만약에 당시 소련이 참석해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면 한반도는 김일성의 의도대로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 불참한 것은 스탈린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소련의 불참 이유를 한반도에서 중국과 미국이 적대적 행위로 전쟁에 휘말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불참했다는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스탈린의 의도대로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중공이 적대적 전투를 벌였다. 미국과 중공은 냉전시대를 적국으로 지내 왔다.

-한국전쟁의 휴전

한국군과 UN군 대 북한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는 1951년 4. 5월 공산군의 춘계 총공세작전이 실패하고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한국전쟁에서 UN군을 몰아내고 전쟁을 승리로 끝내겠다는 공산군의 목표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1951년 6월23일 소련의 UN대표 자콥 마리크는 유엔총회에서 “한국 문제를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자고 정전(휴전)을 제안하게 됐다.

1951년 7월1일 북경방송을 통해 북한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중공군총사령관 팽덕회 공동명의로 공산군은 전투행위를 중지하고 평화협상을 개최하자는 유엔군측 제안에 동의한다.

회담장소는 개성에서 개최하자고 회답했다. 회담 장소는 나중에 판문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지루하게 정전회담이 진행되었고 전선은 소강상태였다. 결국 현 전선에서 정전(휴전)하기로 합의했다.

1953년 7월 27일 이다. 이 날을 기해 전 전선에서 총성이 멈춘 것이다. 정전(휴전)은 종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전투행위는 정지되었으나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종전은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것으로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것처럼 전쟁의 종결을 말하는 것이다.

정전(truce)은 일반적으로 한정된 장소에서 폭력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반도 6.25 전쟁은 총성은 멈추었지만 결코 평화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
정전(휴전)협정은 전문 5조36항과 부록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6.25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2일만에 전쟁은 멈춘 것이다.

=오늘의 한반도 정세

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에서의 총성 한방으로 일어난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그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이 핵미사일 발사단추를 거머쥐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조그마한 충돌이 핵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동북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당사국가간 조정할 수 없어 전쟁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매우 높다. 새뮤얼 로클리어 미국 태평양사령관은 올해 1월23일 김정은에 대해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며 어린 지도자 김정은의 행동은 그가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의문스럽게 한다.

이것이 큰 문제라고 평가했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음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은 최소 10개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정은이 지금이라도 발사 단추를 누르면 핵 미사일이 10분내로 서울 상공에서 터져 한국의 모든 기능이 정지 상태에 빠질 것이다. 5000만 국민은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셈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전쟁과 분단의 척박한 토양위에서 잘 사는 터전을 만든 것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중동의 열사의 땅에서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인 것이다. 우리가 6.25 전쟁 66주년을 맞이하지만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바로국가와 국민의 안보이다. 우리국민 모두는 나를 지켜야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언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것이다. 안보는 우리의 생명이고 살길이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1908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이팔웅 논설위원 논설실장 이팔웅 논설위원 논설실장의 다른 기사 보기
  •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 공채 합격
    -KBS 부산방송국 아나운서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
    -KBS 대구방송국 보도과장
    -KBS 남원방송국장
    -KBS 사회교육방송 전문위원,
    논설집필 직접출연방송
    -TBS방송 프리랜서 시사해설 담당
    -시니어저널 신문 논설위원
    -관동대학교 출강(컴뮤니케이션강의)
    -월드뉴스 논설실장/보도총괄본부장
    -바른말실천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현재 월드뉴스 논설위원(논설실장)
    -월드뉴스 보도기획총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