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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9-25 10:24:19
  • 수정 2016-06-16 09: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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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팔웅 월드뉴스 논설실장
<近 攻 遠 交>

근공원교 이 말은 가까운 형제보다 먼 일가가 낫다는 뜻이다. 삼국지와 초한지에 등장한 경구이다.
가까운 나라 공격하고 먼 나라와 수교한다는 말로 멀리 있으면 복잡한 이해관계가 없고 분쟁 소지도 없으며 싸울 일도 없다.

그러나 인접한 나라와는 자주 분쟁하지만 먼 나라와는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근공원교 외교를 실현한 국가로 폴란드를 꼽을 수 있다.

폴란드가 걸어온 험난했던 역사를 살펴보면 독일과 러시아라는 유럽대륙에서 제국주의를 지향한 초강대국들 틈에 끼어 이리 찢기고 저리 뜯긴 폴란드의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되었다.

1795년부터 1918년까지 123년동안 프러시아(당시독일),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참혹할 정도로 유린되었으며 3국에 의해 분할 점령당한 채 유럽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역사도 있었다.

1918년 독립한 폴란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왕성한 경제발전도 보였다. 히틀러는 1939년 8월23일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비밀리에 체결한 후 8일 뒤인 9월1일 폴란드를 기습적으로 침공하기 시작했으며 소련은 독일과의 양해 사항에 따라 9월17일 폴란드 동부를 공격했다.

동서에서 강대국들의 협공을 당한 폴란드는 한달도 버티지 못하고 9월28일 항복했다. 이것이 제 2차세계대전의 시작이다.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두 강대국은 폴란드 영토가 탐나 무력으로 점령해 버린 것이다. 당시만해도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보다 소련이 우호적이라고 생각했으며 기대감도 가졌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이 얼마나 막연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스탈린이 증명해 주었다.

전쟁 초기에 폴란드 전체 장교의 절반 정도가 소련군에 포로가 되었으며 또 폴란드 지식인 2만5700명이 1940년 3월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의 스모랜스크 인근 카친(katyn forest) 숲속에서 기관총으로 집단학살 당했다. 저 유명한 카친숲의 대학살이었다.

이밖에도 폴란드 사람 170만명이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스탈린은 폴란드 독립의 싹을 아예 없애려는 대학살이었다.

폴란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반도와 비슷하다. 지정학적으로도 그렇다. 123년 동안 강대국의 침탈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본능적 이다. 이렇게 강대국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을 때 한반도도 중국과 일본에 의해 유린당했다.

이렇게 주변 강대국의 무자비한 유린을 경험한 폴란드가 최근 예상외로 실리외교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친미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유럽이 친미 반미로 나누어지자 폴란드는 미국편에 선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안보 우산을 선택한 것이다. 근공원교라는 외교 패턴을 그대로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폴란드로서는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으면 영토의 야심은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럽 속에 있지만 폴란드의 안보를 대서양 건너 미국에 맡기겠다는 것으로 인접국 독일과 러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진행했을 때 폴란드가 전투병을 파견한 것이다.

이라크와는 연관도 없고 파병의 명분도 약하지만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다지고 국익을 위해 선택한 파병이었다. 유럽좌파의 격렬한 비판을 받아가면서 말이다.

독일에 주둔했던 미군이 이라크로 이동했다가 종전 후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폴란드에 배치 주둔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한 폴란드의 선택은 국제관계 현대사에서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근공원교의 외교정책 의미를 우리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들어 중국에 경도되고 있다는 일부여론과 우방의 곱지 않은 시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인식해야할 것은 중화제국 부활을 도모하는 중국의 꿈이다. 그리고 중국이 추구하는 제국주의는 일방적, 압제적이며 공격적인 행태가 저변에 깔려 있음을 잊어서는 않된다.

<기고 이팔웅 월드뉴스 논설실장 2015년 9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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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BS방송 프리랜서 시사해설 담당
    -시니어저널 신문 논설위원
    -관동대학교 출강(컴뮤니케이션강의)
    -월드뉴스 논설실장/보도총괄본부장
    -바른말실천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현재 월드뉴스 논설위원(논설실장)
    -월드뉴스 보도기획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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