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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1-12 11: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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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근엄하다.

그 처음에는 무작정 솟아올랐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이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솟아오름만이 답이 아님을,


솟은 바위가 아래를 살핀다.

더 오래도록

더 편안하게 살피기 위하여 낮추었다.

안정된 자세를 잡고서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처음에는 엉성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다.

나무가 둘러싸고,

바람이 풍경을 온화게 만들고,

바위도 감흥을 받고서 완성이 된 것이다.

두루두루 함께하는 것이니 저절로 신이 난 것이다.


그곳에서 스스로의 격을 형성했다.

바위가 부드러워졌다.

갖추었으니 중심을 잡은 것이다.

갖추었으니 다 내놓아도 너그러운 것이다.

영겁의 세월에 맞닿아서 부드러움을 닮은 바위이다.


그 처음에는 저 홀로 바빴다.

솟으려고 바빴고,

세찬 바람을 견디려고 바빴다.

폭우에 대항하느라 온 힘을 솓았다.


혼자일 때에는 견딤의 용을 썼지만,

전체속에 함께 자리를 잡고서는 조화에 흥겹다.

그곳이 오른쪽의 귀퉁이던,

그곳이 왼쪽의 모퉁이던,

자리잡은 그곳에서 전체를 만들었다.

전체속에 모여서 펼치고

제 머무는 곳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바위가 되었다.


저 홀로였을 때에는 악을 쓰면서 견뎌야 하는 풍파였다.

이제 전체가 되었으니 개개의 바위에 몰아치는 풍파조차도 잠시의 일탈일 뿐이다.

비틀거리지 않으려 용을 썼다

흘러내리지 않으려 기를 썼다.

전체가 되고 나니 어울려 보내는 응원이 있어 그대로의 변함없는 모습이 되었다.


가운데의 바위는 왕관처럼 솟았다.

활할 타오르는 불꽃같다.

불꽃같은 바위가 뾰족하게 나란하여 왕관이 되었다.

왕관을 호위하느라 양옆의 바위들이 무사같이 위엄있다.


관룡산의 바위이다.

인간이 이름지어 바위에 의미를 부여했다.

바위의 모습이,

인간이 지은 이름에 걸 맞은 것 같아 탄성이 나온다.


인간이 이름부르는 그 의미보다는 천배만배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관룡산의 바위가 저 홀로 잘난 것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속에 제 자리에서 제 역할에 부동할 것이다.

한갖 인간의 얕음으로는

숨겨져 있는 바위의 속깊은 의미의 크기를 가늠할 길이 없다.

애초에 그것은 가당한 일도 아니다.


추신:

관룡산은 창녕 화왕산(억새의 산) 에 붙어 있는 산이다.

옛 이름은 부처님의 산이라는 뜻의 영축산이라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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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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