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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절감형 경제구조와 고용창출
월드뉴스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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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운달산의 희망 !
정극원 취재기자
200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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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사막화는 인간 공해의 중벌이다.
지구의 사막화는 인간 공해의 중벌이다.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삼동에 웅크리고 있던 겨울나기가 무섭게 봄맞이 하는 노래와 예쁜 시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계절. 만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따뜻한 봄맞이가 한창일 때 하늘의 불청객 황사가 봄기운을 망치곤 했는데 요즘은 사 계절을 황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 멀리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그리고 몽골고원의 고비사막에서 인간들이 저질은 자연 환경의 파괴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를 덮치는 것이다. 그래서 황사현상은 인재라고 부르고 있다.
녹색의자연환경이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숲의 나라가 청국시대부터 무작이 하게 벌목하여 땔감으로 쓰고는 황토 민둥산으로 방치 되드니 사막화 현상이 일어나서 황사의 여파가 태평양을 넘어서 미국 땅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게 되었다.
날로 넓혀지는 사막화가 바람의 방향이나 동절기의 눈보라에 덮여서 그나마 한반도 봄맞이 황사 현상이 되고 있는데 대기층의 환경오염이 지구온난화의 불안전한 조건으로 요즘은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연중 내내 황사경보를 받는가 하면 조류독감. 사스 등의 전염성 바이러스가 황사를 타고 전염경로가 되고 있다.
동아시아 상공으로 퍼져있는 황사 량이 100만톤에 달한다 한반도로 날아드는 미세 먼지수량이 4만~ 8만 톤이 편서풍을 타고 유입되어 농산물 피해와 인체의 기관지. 눈병. 피부병 등으로 병원진료의 대다수가 황사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반도만 하여도 황사로 인한 피해액이 5조원을 상위 한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중앙아시아의 아랍해의 해수가 줄어들어서 토지에 건조된 소금 알갱이가 인근의 국토로 날아들어 수천 년 지켜온 수목 림이 염분에 의해서 빨갛게 말라버리는 지구 대재앙에 손을 놓고 있으며 호흡기 질환자와 피부병환자들이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나는 인류 대이동으로 빚어지고 있는데 비하면 다행으로 본다.
사막화와 황사발생 방지 대책을 위하여 인근 국가들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사막지대가 워낙 광대하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확산 되고 있으므로 연구진들마저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공회전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막지대의 일교차가 고르지 않아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의 빈도가 점차로 증가되고 있으며 거센 바람에 나무심기는 불가능 하고 보리 싹 파종 같은 초목 지를 바람이부는 반대 방향으로부터 덮어버리는 방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식물학자로부터 바람에 견디는 뿌리 깊은 초지와 건조한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초목의 배양으로 사막화를 막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봄 향기 그윽한 꽃철에 창문을 닫고 살아야 했고 신록의 푸르른 동산을 보며 차창 문을 열고 달리는 추억이 그립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를 촉촉이 맞으며 사색에 젖어 거니는 오솔길도 그립다.
빌딩 전체가 창호로 된 오피스텔에 황사가 지나가면 외부의 유리면에 흉하게 더렵혀져 있다.
가정에서 한겨울 덮고 저린 이불 빨래를 봄빛의 바람결에 널 엄두도 못 낸다.
필자의 환경 사업 중에는 위생관리 용역업도 운영하였는데 일거리는 해마다 진행되는 조달청의 입찰에 의해서 년 중 한두 건은 선정되었다.
특히 공공건물의 창호시설이 전반적인 건축물은 유리세척 고소작업이 빈번했다.
실내 청소가 대부분이고 년 중 2회 외부유리를 세척하기로 되었지만 황사로 인해서 창밖 조명이 어두워 청소횟수가 늘어나게 되니 우선 임금비용이 예산을 몇 배나 초과 되었고 자체예산 한도관계로 계약자가 큰 손해를 보기도 한다.
황사로 인한 대기오염을 벗어나려면 황사 발생지의 식목운동이 아니고는 달리 해결책이 없다.
모든 책임은 오늘날 희망과 꿈을 향하는 우리 모두가 사명감으로 해결해야 되는데 어련히 그러느니 하는 사람들의 방관자세에 황사 방지 해결이 더 난감해 지고 있다.
황사오염 발생 원인을 분석해보면 초목지대를 벌목한 후 재 식목을 못한 중국에 그 책임이 있고 2차 오염으로 지구촌 전국이 내뿜는 산업시설. 자동차의 매연으로 대기오염을 확산하는 기후변화에도 책임이 있으므로 지구촌 국가가 모두 나서서 해결해야 될 문제다.
정기보 취재기자
200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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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변화와 직업의 미래성
박교서 기자
200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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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사람의 냄새가 난다.
정극원 취재기자
200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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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탄소 녹색성장 시대를 열려면
정기보 취재기자
200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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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허브국가, 그 도전과 정책과제 [1]
월드뉴스
200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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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산물이 살아지고 있다.
정기보 취재기자
20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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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후 중국 고용시장의 향방은?
월드뉴스
20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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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천하명당을 품다.
오대산(비로봉, 해발 1.563미터)
오대산에서 가을이 시작된다.
가을을 시작한 오대산에 세상 제일 안온한 기운이 넘쳐난다.
하늘로 오르려는 저기압과 지상으로 내려앉으려는 고기압이 만나는 해발 700미터 지점에서 그 기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대산 넓은 터전에서 저기압과 고기압이 합일한다.
지금,
그 오대산에서 안온한 가을이 발원하고 있다.
아무리 먼 길을 달려도 지치지 않는 마음이 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속삭임같은 밀어가 있다.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더 서둘지 못함이 한스러운 듯 오대산이 전하는 안온한 가을을 대면한다.
계곡맑음이 오밀조밀하다.
육중한 나무에 매달린 세월이 우람하다.
산은 기나 긴 지난 세월에 의하여 만들어 지고 나무들은 앞으로 세월을 가꿈하고 있다.
상원사 앞마당에서 바라다보는 수령 500년이 더 넘은 울창한 전나무들과 세월을 소통한다.
인간의 앎이라는게 고작 기록 몇 개일 뿐인데,
나무의 앎이라는 것은 얼마나 장구한 것인가.
말없이 그저 나무가 전하는 기운만 감지한다.
그게 나무와의 소통이라 생각하여 보지만 정작 그 장구한 세월을 담고 있은 나무가 전하는 언어를 가늠조차도 못하고 있다.
작열하던 여름의 태양을 견딘 잎새가 파르르 흔들리고 있다.
몰래 지나치지 못하도록 가을채색을 시작하고 있는 잎새가 감미롭다.
터덕터덕 적멸보궁으로 난 길을 오른다.
풀들은 저 마다의 소명을 다하여 환하게 꽃피우고 있다.
인간은 터덕터덕 걸으면서 시간을 메우고 있고,
풀들은 아름다운 자태로 꽃피워 공간을 메우고 있다.
길가 비켜선 바위가 고즈넉하게 시간과 공간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바위의 몸체 위로는 인간의 기원을 담은 돌조각이 무성하다.
바위의 기원과 인간의 시간과 꽃의 공간이 맞닿은 곳에 드디어 만나게 되는 적멸보궁이다(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라 불상이 없음).
아스라히 적멸보궁의 파란 지붕만이 보인다.
지붕보다 더 맑은 파란 하늘이 보인다.
탐방객의 분주함이 푹푹 계단의 먼지를 일으키고 있건만,
육중한 나무들이 보호하는 듯 아마득한 고요가 내려오고 있다.
"아하"하고 탄성을 질러대야만 직성이 풀릴 듯이 기막힌 터 위에 적멸보궁이 자리잡고 있다.
턱하니 정좌를 하기만 하면 세사를 다 떨치게 될 듯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를 절경이라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터는 ''절터''라고 하여야 할 텐데,
적멸보궁이 천하명당의 그 절터를 차지하고 있다.
절터에서 올려다보는 비로봉이다.
비로봉이 모나지 않게 숨결조차도 닿을 곳에서 가슴을 벌리고 있다.
능선자락을 손처럼 펼쳐 어서 오라고 수신호를 보낸다.
굽이 돌아서면 금세 나타나서 악수라도 청할 것 같던 비로봉이 울창한 나무숲에 숨어버린다.
비로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경사스럽다.
죽어 하얀 주목이 자신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비로봉의 전령사라도 된 듯이 하얀 주목이 울창한 숲을 대동하고 있지만 홀로인 듯 고혹스럽게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그 하늘이 바로 해발 1.563 미터의 비로봉이다.
비로봉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한다.
설악산의 대청봉이 참한 성질의 소뿔처럼 다가온다.
백설이 성급하게 내린 듯 대관령의 넓은 목장이 평온으로 희다.
넘실되는 파도가 몰아쳐 오는 듯이 주문진의 동해바다가 푸르다.
안개에 뒤덮인 호령산의 기개가 군사를 모으는 듯이 철쭉나무군집을 만들어 비로봉을 사모하고 있다.
산깊으면 계곡도 깊다.
산넓으면 평화도 넓다.
깊은 오대산에서는 계곡조차도 평화를 위하여 대체하고 있는 듯 깊은 계곡 대신에 넓은 평화를 넘친다.
비로봉정상에서 하염없이 평화로움에 잠들어 본다.
하산조차도 잊었다.
한낮의 시간이 그렇게 무방비로 다 흘러가고 있었다.
정극원 취재기자
200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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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힘, 한국형 슈타이너 학교는?
박교서 기자
200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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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아 !
정극원 취재기자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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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장,그래도 직권상정은 안된다
신봉기 취재기자
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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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정치 지도자가 강한 나라를 만든다.
정기보 취재기자
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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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통합법 시행에 앞서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김준성 취재기자
200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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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비로봉-바람의 산
소백산 비로봉(해발 1439미터)
물욕을 멀리하라 한다.
소백산에서는 몸이 그렇게 닮아간다.
영욕에 초연하라 한다.
소백산에서는 마음이 그렇게 닮아간다.
맑다.
산은 깊은데 계곡은 소담하다.
계곡 흐르는 물이 빗물이 아니라 영롱한 꽃잎의 몸체를 타고내린 아침이슬 같다.
그 맑음이 모여서 흐르는 듯 구슬같이 맑다.
높이 솟은 소백산이다.
가는 가지를 펼치듯이 폭쫍은 계곡만 가지가지 거느리고 있어 소백산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정상에 소가 백마리는 있다 하여 소백산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아니 100보다는 적은 99의 산이라서 소백산이 아닐까 하는 해석으로 웃어 본다.
가을의 소백에는 99%의 맑음을 만나게 된다.
비로사 산초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너무 맑아 눈이 부시다.
사철푸른 소나무조차도 가을에 감응하고 있다.
덩달아 가지에는 노란 낙엽을 만들어 시간나들이를 하고 있다.
하늘 맞닿은 가지에 단풍처럼 노란 갈비를 달고 바람을 만나고 있다.
서두른 갈비가 벌써 나무에서 분주한 시간을 접고 땅에 내려앉았다.
휴식의 명상으로 지상의 풍경이 한가롭다.
군데군데 잣나무의 군락이 오수에 잠들어 있다.
나무 아래로 난 등산로만이 번잡하다.
나무들은 잠들어 있으면서 산소를 제일 많이 뿜어낸다.
나무가 만든 맑음일 것이다.
부드럽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나서 웃옷을 벗어낸다.
땀이 보송하다.
능선의 바위까지 배웅을 나온 맑은 바람소리를 만난다.
그 소리가 너무나 세차다.
소리만 들으면 겨울의 한가운데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바람은 계곡 안에서만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계절풍이 가장 분명하게 부는 곳이 소백산이다.
옛부터 '바람의 산'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름에는 남동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그 방향을 따라 성질을 부린다.
바람은 산의 기풍조차도 정하는가 보다.
여름과 겨울의 계절에 방향을 다 양보한 가을바람이 계곡 안에서만 포효하고 있다.
소망의 바램을 가득 품에 담은 가을바람이 더없이 부드럽다.
남동쪽 양지에 자라는 나무들의 모양새는 천편일률로 고르다.
다툼이 없는 듯 그저 같은 모양새로 산을 덮고 있다.
그러나 북서쪽의 나무들은 저 마다의 다른 기개로 모양새가 거칠다.
동남쪽에서 인공의 산이 지배하고 있다면 북서쪽에서는 제 각각의 자연의 산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북서쪽 산능성이에서 제 각각의 개성으로 연출하고 있는 산의 자태가 장엄한 채색의 조화를 만들고 있다.가을에 비로소 그 양방면의 대비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소백의 몸체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에 닿는다.
국망봉에서 언약하였다.
시간을 추스려서 곧바로 비로봉에 오리라고 마음에 다짐하였다.
마음의 언약은 아무도 듣지 못하기에 나중에 흐지부지되어도 그 만일 테다.
그 언약에 미소한다.
이제서야 그 언약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이 그 언약의 이행에 화답한다.
하늘을 다 담은 물동이 형상으로 비로봉정상이 고요하다.
산이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비로봉에서 정지하고 있다.
하늘의 마음을 아는 듯 정상 능선에서 자라고 있는 억새며 풀들조차도 위로 자라는게 아니라 고개를 순순히 아래로 숙이고 있다.
예로부터 흰백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산에서는 하늘의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이외의 산에서는 천신이 아니라 산신에게 제를 지냈던 것이다.
백두산, 태백산 등과 함께 소백산이 그 중에 하나였다.
소백은 곧 하늘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위계가 산에 통할리가 만무하다.산에 품계가 있을리가 만무하다.
소백산에서 천신께 제를 올렸던 것은 비로봉에 하늘이 정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에서 마음이 탁 트인다.
정지가 활동을 대신하고 있는 듯 비로봉을 향하여 달려온 대평원이 넓다.
제1연화봉과 제2연화봉 사이의 산봉 하나를 잠식하고 있는 천문대 하얀 건축이 부조화다.
더 멀리의 월악산이 구름아래 희미하다.
국망봉이 거울처럼 햇살을 반사하여 신호를 보내고 있다.
희방사쪽의 북서 경사면에 주목이 막 물든 단풍을 제치고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다.
어의곡리 마을이 올망하게 움츠려 가을시간을 조형하고 있다.
나무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풀숲에 털썩 앉아본다.
텅비운 마음이 넓은 소백산을 다 채우고 있다.
텅비운 마음이 소백산을 에워싼 하늘까지 담고 있다.
정극원 취재기자
20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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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대표 선수들 뒤에 숨은 전문직
김준성 취재기자
20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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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63주년을 맞이하면서
박교서 기자
200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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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용수 고갈.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정기보 취재기자
20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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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국망봉
소백산 국망봉(해발 1420.8 미터)
오래 기다려야 가는 산이 있다.
마음의 변덕이 아니라 상황의 변덕때문이다.
큰 산은 언제나 변덕을 부린다.
자신이 아우르는 넓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들조차도 다 평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그 인간의 변덕 때문에 미루어 놓았던,
산의 변덕을 부리는 소백산을 향한다.
초암사를 기점으로 국망봉에 이르는 지름길을 택한다.
초암사에서 좌측에 만나는 계곡이 퇴계 이황선생이 명명한 죽계9곡이다.
담아야 하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계곡이다.
어제 쏟아 붓고서 훌 떠난 소낙비에 불어난 물이 웅장하다.
그 흐르는 위용으로 계곡이 소란하다.
명경지수가 바로 여기이다.
여름더위의 시원함을 선사하려고 밤새 정수를 마친 듯하다.
탁한 색깔이라곤 없는 맑은 물들이 콸콸 흘러내린다.
시간은 바위도 뚫는다.
시간에 가미된 흐르는 물은 바위웅덩이도 넓힌다.
웅덩이에 가득 맑은 물이 흐름을 이어가면서 고여있다.
이름하여 선녀탕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있었다.
나무꾼과의 전설같은 만남을 기대하면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옷을 고이 벗어 놓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나뭇꾼이 선녀가 벗어 놓은 옷을 본체만체 지나쳤다.
몹시 화가 난 선녀가 나뭇꾼에게 말을 하였단다.
"왜, 옷을 안 집어 가세요?"
나뭇꾼이 대답하였다.
"나는 그 나뭇꾼이 아니고 금도끼 은도끼 나뭇꾼이거든요."
산에는 음미가 있다.]
그래서 웃음도 미소이다.
한바탕 크게 박장대소를 하고 나니 국망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웃는 얼굴 가벼움이 결코 걸음 가벼움은 아니지만 이 순간 그저 가벼운 것이다.
굴참나무며, 박달나무가 하늘은 가리고 있다.
나무의 틈새로 부채 빗살을 그리면 지상으로 내리 달려온 햇살이 외롭다.
가파른 능선 하나만 더 오르면 국망봉까지 1.1키로 지점인 봉두암이다.
만년세월에도 변형을 하지 않는 위세로 서 있는 바위이다.
걸음 하나를 옮기기가 무섭게 장대비가 막무가내로 쏟아 붓는다.
아직은 젊은가.
아랑곳하지 않고 더 서둘러 정상으로 오른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더 굵은 비가 얼굴이며 온몸을 때린다.
하늘을 가린 나무를 우산삼아 피하여 보지만 30분 이상을 그렇게 장대비가 내린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산 초입에는 비 한 방울 안 내렸단다.
산이며 바위며 나무가 세면을 마치고 웃고 있다.
변심하지 않고 버틴 우리들도 비에 흠뿍 젖은 몰골을 하고서 웃는다.
소백산이 비로소 자신을 찾은 탐방객을 영접하려는 듯 창공 맑음을 선사하고 있다.
봉두암앞 넓은 평면의 바위 터에 서서 물 한 모금 크게 삼킨다.
봉황의 머리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라 그렇게 이름 부른다.
바위의 거대함 위로 세월의 하얀 채색을 본다.
구름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서 몸을 파르르 떨면서 추위를 느낀다.
봉두암에서 국망봉으로 이르는 1.1키로의 길이 제일 험난한 오름길이다.
세상에 오름이 험난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중에서도 산에서의 험난한 오름만이 제일 평화롭다.
산은 그 오름에 다 이르러도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여우자적을 잠시 접어둔다.
멀리 오래도록 지치지 않는 보폭으로 다시 오른다.
금세 장대비에 젖은 옷이 다 말라버린다.
비가 땀에 용해되어 버린 것인지, 땀이 주룩 흐르는 산오름이 바로 등산의 묘미이다.
그 호흡에 산의 기운들을 저절로 다 나안에 체류시킬 수가 있으니 말이다.
확 트인 능선의 개활지에서 맨 먼저 하늘을 올려 본다.
눈을 좌측으로 돌려 안개에 잠긴 비로봉(해발 1439.5미터)의 묵묵한 위용에 탄성한다.
지척에 올려다 보이는 국망봉에 이어지는 나무계단에 묻어있는 사연의 빛바랜 채색을 본다.
문득 바위틈에 나즈막한 햇 노란 구절초의 꽃피움을 보게 된다.
그 언젠가 들은 소백산에서 처음 만나 손잡은 여인이 구절초를 꺾어 오겠다면서 사라졌던 사연을 들려주던 어느 산인의 이야기가 갑자기 미소와 함께 떠올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백산에는 해석은 없고 전설은 있다.
그 장엄한 산을 치졸한 인간이 감히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장대비를 쏟으면 맞고 안개가 뒤덮히면 집중하여 길을 찾으면 될 테고,철이 되어 철쭉이 온 능선을 다 붉게 물들이면 감탄하면 된다.
국망봉에는 전설이 있다.
산자락에 살던 심성착한 대장장이에게 퇴계선생이 그 행실의 착함에 대하여 칭찬을 하였다.
그 대장장이는 퇴계선생이 죽은 후에 국망봉에 올라 3년 상을 치루었단다.
아쉬워라!
비로봉을 앞에 두고서 다시 쏟아 붓는 장대비다.
산을 온통 뒤덮고 있는 농무에 연유하여 서둘러 하산을 한다.
소백산이 부르기도 전에 다시 올 것이라는 다짐의 예약을 한다.
그 때에는 비로봉이 먼저 환한 대답을 할 것이다.
산에서는 경험만이 알게 한다.
그 길이 멀고 가깝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산의 장엄함에 의하여 몸이 느끼는 곤함의 농도가 다르다.
소백산이 몸에 주는 곤함을 벌써 듬뿍 느낀다.
명산의 기운에 몸의 기운을 다 바치고 내려오는 하산이다.
정극원 취재기자
2008-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