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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임진년 새해
새해 벽두에
주먹을 불끈 쥡니다.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웅건하게 영접하기 위함입니다.
붉게 동터 오른 태양을 영접하면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여명을 뚫고 태양이 솟아오르는 순간,
어둠에 묻힌 검은 파도가 경련을 합니다.
떠오름이 너무나 강렬하여 바닷물조차도 창공으로 치솟았습니다.
새벽의 격랑이 자자들면 한낮의 고요가 나래를 펼칩니다.
시간에 마지막은 없습니다.
지난 2011년이 제 역할을 다하였으니,
벅찬 2012년이 시나브로 온 것입니다.
시간은 인수인계 절차도 없이 당도합니다.
언제라도 새날입니다.
어제보다 다른 마음이라면,
오늘은 새날이 됩니다.
새날이 새벽에 열리는 것은 맑은 마음으로 맞이하라는 명령입니다.
언제라도 새해입니다.
지난 해보다 다른 다짐이라면,
오늘은 새해가 됩니다.
새해아침이 차가운 것은 총명한 다짐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한 해가 지나갔으니,
또 한해가 온 것입니다.
그 단초는 움틀거림입니다.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가지가 굵어집니다.
매서움이 더 할수록,
더 잘 견디는 나무입니다.
잎이 무성할 때의 성화가 내공이 되었습니다.
저 홀로 서 있는 데에도,
흘낏 눈짓 한번 보내주는 길손의 응원덕입니다.
비탈에 심어진 감나무입니다.
가파르게 자란 감나무의 가지 끝자락에,
다닥다닥 붙어서 열매가 열리면 서로가 햇볕을 가릴까 염려가 되어,
적당한 간격을 두고서 열리는 감입니다.
그러니 햇살을 앞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고루 익어가는 감을 볼 때면 평화로운 것은 서로 다투지 않음에 있음을 봅니다.
아름답지 않은 동행이 있겠습니까.
강을 건너고,
개울을 건너고,
비바람을 함께 맞았다면,
그 역경을 다 물리치고서 함께 종점에 닿았다면,
그런 동행은 이미 아름답습니다.
보태는 것,
베푸는 것,
그것이 동행의 전제입니다.
그런 기운의 힘은 엄청난 것입니다.
가공할 혹한조차도 이기는 위력이 됩니다.
동행이란 차가움도 따스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졸졸 흐르는 개울에,
곁가지에서 흘러들어와 보태는 물 한 줄기입니다.
모일수록 유유히 흐르는 도도한 강이 됩니다.
들을 적셔 풍성한 결실을 만들고 인간을 풍요롭게 합니다.
보태는 것에 조금은 없습니다.
보태는 순간에 어마한 추진력이 생기게 됩니다.
베풀어 주는 것에 미력이란 없습니다.
베풀어 주는 순간에 어마한 동력이 용트림하게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좌절을 했었습니까.
수많은 뜨거운 담금질이 강한 무쇠를 만들듯,
인생의 낙방과 좌절은 견고한 디딤돌을 구축하게 합니다.
아무리 거친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는 거뜬한 철옹성이 됩니다.
가슴이 아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것이 더 깊은 상처가 되면 될수록,
그 때에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 하여도,
그것은 인생을 포동포동 살찌우는 자양분이 됩니다.
그것은 오늘을 건재하게 하는 발판이 됩니다.
삶이란,
최악의 경우에도 그 끝자락이 있는 것입니다.
절망의 정점에서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이,
난관의 가장 밑바닥에 곤두박질 한 상태가,
다시 희망이 솟구치기 시작하는 최적의 순간이 됩니다.
지리산의 일출을 볼 수 있음은 적선이라 합니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가다 귀퉁이에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만납니다.
배추 두 포기 상추 한단을 삽니다.
그 덕에 할머니도 다 떨이하고서 귀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라도 좋게 나눕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은 그 말에 행여 닥친 시름을 떨칠 수 있습니다.
지나치는 사람이라도 친절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쌓아 가면 지리산 일출을 단번에 볼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가고 떠나오고 잊어버리곤 합니다.
지금 잊혀 져 있다고,
무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처음에는 파장으로 요동하였을 것입니다.
그 처음에는 설렘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같은 장소 같은 길을 지나갈 때면 떠올리게 됩니다.
삶에 있어서 큰 의미로 남아있습니다.
그 처음부터 건방을 떠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처음부터 술수를 부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처음에는 누구라도 그 무엇이라도 여렸습니다.
초심은 농익어 꽉 찬 것이 아니고
여리고 순수하여 여백이 많은 것입니다.
초심은 오만한 독선이 아니고
두리번거리고 살피면서 경청하는 것입니다.
초심은 완성되어진 것이 아니라
어설프기는 하여도 선하고도 선한 것입니다.
초심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그러하니 초심이면 그 어떤 희망도 다 일구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임진년 새해에는
초심으로 대망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2012년 임진년 새해아침
정극원
정극원 취재기자
20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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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임진년의 소원
정기보 취재기자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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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전염된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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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다고 권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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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려고 작정하면 웃게 된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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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소통笑通하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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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어릴 때부터 습관화해야
정은상 취재기자
201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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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백악관 비서관이 되기까지 (3편)
(※ 지난 줄거리)
6.25전쟁때 고아가 되어 서울역을 무대로 소매치기와 절도 행각으로 자신이 데리고 있던 100여명의 고아들을 먹여 살렸던 임종덕 소년이 어느날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즉, 서울역 앞에서 그날도 임종덕은 절도 대상자를 유심히 관찰하던중 한 미군 장성이 탄 승용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승용차의 뒷자리에 있던 가방 하나를 들고 도망쳤다.
그러나 즉시 미군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경찰서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이 광경을 본 미군 장성은 임종덕 소년을 불쌍히 여겨 그를 자신의 하우스 보이로 채용했다. 그 미군 장성이 바로 미국 제5공군 사령관 스티브 토마스 화이트 중장이었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임종덕 소년은 화이트 중장의 양아들로 입적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하바드 대학교 정치학 박사가 되었다. 그후 월남전에 참전 그린베러가 되어 미군 포로들의 구출 작전중 월맹군에게 포로가 되어 마지막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온다.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
밀림속에서 미군 헬리곱터에 극적으로 구출된 임종덕은 사이공의 공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즉시 미국 공군 참모총장 화이트 대장과 전화 통화가 되었다.
아버지 화이트 대장은 포로가 되었던 아들이 탈출해서 사이공에 왔다는 아들의 육성을 듣고 “이게 혹시 꿈이 아니냐 아들아 너가 포로로 잡혀간 그날부터 네 어미와 나는 밤낮으로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당시 월남전에서 8명의 미군이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에 성공했는데 그중 임종덕 대위가 제1호 탈출이었다. 그래서 미군은 물론이며 미국내 참전 가족들의 환성이 대단했다. 화이트 대장은 “아들아 내가 너를 직접 보아야 실감이 날 것 같구나 그래 어디 부상 당한데는 없느냐”며 계속 울먹이며 질문을 했다.
임종덕은 울먹이는 아버지를 오히려 위로하면서 그가 항상 아버지께 한 말을 했다. “아버지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고 늘 얘기 했잖아요”……
임종덕은 1주일간 공군병원에서 요양을 하면서 3개월간의 포로 생활에서 특히 그 생사의 갈림길에서 끝까지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사이공에 도착한지 8일째 되는날 임종덕은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긴급 통보를 받았다. “존손 대통령께서 귀관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라는 명령이니 급히 오십시오”……
임종덕은 즉시 아버지께 이 내용을 알렸드니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다면서 나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은성 무공 훈장과 1계급 특진을 받은 임종덕
임종덕은 키가 팔대장 같은 거구의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은성 무공 훈장을 받으면서 감격했다.
한편 대위에서 6년후 소령이 되는데 임종덕은 대위에서 바로 소령 특진을 받았다.
특히 은성 무공 훈장을 받은 것은 부하 3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한다.
훈장 수여가 끝나자 존슨 대통령은 임종덕을 신기한 표정으로 아래 위를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
키가 1m64cm의 이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 엄청난 행동과 지혜가 있었는지에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공군 참모총장에게 “귀관은 어떻게 이런 자랑스럽고 훌륭한 아들을 두었소”하고 물었다.
대통령의 질문에 아버지가 답변을 못하자 임종덕은 “대통령 각하 하나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하십니다”라고 말하자 존슨 대통령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임종덕의 굳건한 신앙에 큰 미소를 지었다.
한편 임종덕의 포로수용소 탈출 기자회견을 계기로 그가 겪었던 수용소 생활과 특히 러시안 룰렛 즉, 권총 살인게임 등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 되었다. 감독에 마이클 치미노 주연 배우에는 로버트 드니로를 비롯한 존케세일, 존세비지 등이 출연한 이 영화가 바로 디어헌터 (The Deer Hunter)였다.
1978년에 제작된 디어헌터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영화 펜들을 감동시켰다.
임종덕은 당시 영화 제작사로부터 기막힌 소재를 제공한 대가로 당시 15만불을 받았다.
또한 미국 육군사관학교는 임종덕의 수용소 탈출과 15일간의 정글 생활에서 살아나온 과정을『정글 탈출기』란 책으로 만들어 육군사관학교 정식 교과서로 사용했다. 다시 월남전선으로 복귀한 임종덕 소령은 그린베레로서 맡은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은 존슨 대통령이 물러나고 닉슨이 대통령이 되었다.
닉슨은 하바드대학교에서 국제외교 분야의 베트랑급인 키신저 교수를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하고 장차 중국과의 수료를 위한 극비 연구를 지시했다. 닉슨이 키신저 교수를 보좌관으로 임명한 것은 과거 타임즈에 게제되었던 『21세기의 공존 공생』이란 기사를 감명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사에서 키신저가 제자인 임종덕 학생의 글 『21세기는 중국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내용을 언급했는데, 닉슨은 당시 임종덕 학생을 만나기를 원했다.
키신저는 며칠후 임종덕이 월남전선에서 그린베레 소령으로 근무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닉슨에게 보고하자 닉슨은 즉각 임종덕을 백악관으로 불러 오라고 지시했다.
-백악관에 두번째 불려간 임종덕 소령
존슨 대통령을 만난지 5년만에 임종덕은 키신저와 함께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다.
닉슨은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하바드 대학교 57년도 학생잡지를 임종덕에게 보이면서 여기 당신의 글을 관심있게 읽었다면서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변하겠느냐고 물었다.
임종덕은 닉슨 대통령에게 “사상과 이념의 역사는 100년이상 간 것이 없었다”는 아놀드 토인비 교수에게 들은 강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지금부터 (1970년) 앞으로 40년 후에는 (2010년) 지금의 중국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것은 바로 군사력과도 직결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만일 공산주의를 포기하면 중국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임종덕의 말을 다 듣고난 닉슨 대통령은 이날 바로 임종덕 소령을 미국 국가안전보장 이사회 근무를 명하고 키신저와 함께 중국과의 수교를 위한 극비 작업을 지시했다.……
임종덕은 이날밤 호텔에서 하나님께 불평어린 기도를 했다. 즉 “하나님 나는 전쟁터에서 미군 포로를 탈출시키는 특수 작전을 전문으로 하는 그린베레인데, 어떻게 저를 갑자기 백악관 근무를 하게 하십니까, 나는 국가간의 비밀 외교수립을 배워 본적도 없는 문외한(門外漢)입니다.……
그러나 임종덕은 기도를 하는 중에 갑자기 큰깨 달음이 왔다. “내 인생이 지금 여기까지 오게된 모든 과정이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항상 나의 앞날을 인도하고 있다는 즉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한편 임종덕의 아버지 화이트 공군 참모총장은 미국 군인의 최고의 자리인 합동참모본부 의장 즉, 합참의장으로 승진했다. 화이트 장군은 아들이 백악관 대통령 안보 비서관으로 오게된 것을 매우 기뻐하면서 자신의 승진과 아들의 백악관 근무는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 예배를 드렸다.
-중국과의 수교를 위한 임종덕의 사명
임종덕은 대통령 특별안보 보좌관인 키신저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중국 근세사를 열심히 공부 했다.
당시 미국은 중국을 완전 적성국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일체의 교류가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임종덕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바로 탁구 시합을 구상하게 되었다.
때마침 1971년 3월 제31회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가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되었다.
임종덕은 이 대회 기간에 미국과 중국과의 탁구 경기를 상호 친선방문 개최를 은밀하게 추진했다.
때마침 중국의 모택동이 나고야 대회가 끝나는 날 4월 6일밤 현지에 있는 중국 대표단에게 미국 탁구선수단 초청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나고야 대회가 끝난후 3개월만에 미국 탁구선수단이 중국의 공식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때부터 임종덕은 중국의 실권자인 주은래와 미국의 키신저를 만나게 하는 물밑 작업을 비밀리에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임종덕은 파키스탄에서 대기중 중국으로부터 상해로 오라는 비밀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이 자리에서 키신저와 주은래의 회담 주선이 결정되어 71년 6월 키신저는 임종덕을 데리고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한다.
키신저와 주은래의 베이징 비밀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가 적성국이지만 앞으로 수교를 하자는데 합의하고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까지 정했다. 키신저는 귀국길에 우방국인 일본을 방문 일본 수상에게 베이징의 비밀회담 내용을 알렸다.
한편 임종덕은 키신저에게 한국에도 이 사실을 당연히 알리자고 말하자 키신저는 한국은 당신이 가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임종덕의 첫 만남
임종덕을 처음 본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한국인이 미국 대통령 외교 안보비서로 근무한다는 것에 대해 격려를 해 주었다.
특히 임종덕의 신장(1m64cm)이 자신과 같다는 것도 호감을 가졌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은 임종덕으로부터 보고를 듣고 이때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앞으로 적성국과도 외교를 할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의 자주국방을 확고하게 진행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그후 임종덕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청와대를 방문 박정희 대통령과 교분을 쌓아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임종덕이 36세의 나이에 아직 미혼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꼭 자신이 중매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임종덕은 대통령의 중매 이야기는 안드레 명상에 언급하지 말라고 했지만 필자가 탐문한 바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에게 의뢰를 했고 육영수 여사가 좋은 규수감을 물색하던중 독립지사의 가문인 즉, 민영익의 후손으로 대학교수인 민씨 집안 아가씨를 선정 결혼이 성사되었다.
이때부터 박대통령과 임종덕의 사이는 더욱더 가까워졌다.
한 번은 임종덕이 박대통령에게 아들 지만이를 미국에 유학을 시키자고 하면서, 모든 학비 일체를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제의를 했다. 이 말을 듣고난 박대통령의 얼굴이 상기되면서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내 아들을 유학을 보내면 지금 장관 차관 그리고 국영기업체 사장들이 내 눈치만 보고 있는데, 자기 자식들도 전부 다 유학 보낼 것이다. 공장의 여 직공들이 피눈물로 벌어드리고 있는 외화가 장관 차관 자식들의 학비로 사라진다면 이 나라가 언제 자립하고 언제 자주 국방을 하겠느냐!! 지만이는 육사 졸업후 다행히 중령까지 가서 예편한다면 그 연금으로 살 수가 있다.
그러니 자네 앞으로 지만이 유학 이야기는 절대 입밖에도 내지 말게!!……
한편 임종덕은 이때 자신이 알고 있는 중대한 정보가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다.
즉, 미국의 무기회사 부사장이 박대통령에게 한국의 무기 구입에 대한 감사의 표시(리베이트)로 무려 100만 달러의 수표를 건네자, 박대통령은 이를받아 “이 돈이 내 개인 앞으로 주는 것이냐 혹은 청와대에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무기회사 부사장은 “이 돈은 대통령 각하 개인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이 수표를 청와대 공식 봉투에다 넣고 “이 100만 달러는 지금부터 내 개인의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겠다”고 하면서 이 돈을 다시 부사장에게 건넸다.
무기회사 부사장은 당시 박대통령의 그 청렴한 애국정신과 특히 자주국방을 위한 그 투철한 집념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 회사가 전세계와의 무기 거래 역사상 국가 원수가 자기 개인주머니로 들어오는 거액의 돈을 거부한 예는 전무후무한 일로서 그 소문이 백악관은 물론 미국 정부 고위층에도 알려졌다고 한다.
한편 임종덕은 백악관에서 닉슨, 포드, 카터 대통령 등 3명의 대통령 안보비서관을 지내다가 장군 진급을 2개월 앞두고 갑자기 백악관을 떠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됨.)
글 : 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 안드레 명상 106호는 예산 부족으로 평소의 발행 부수에서 1천부를 주렸습니다.
이 글을 보신후 꼭 다른 사람들과 돌려가면서 봅시다.
이병식 장 로 (주님의 교회)
이을형 장 로 (주님의 교회)
김유호 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주님의 교회 피택장로)
최진성 장 로 (인천 성가단장)
차재완 장 로 AD 농어촌 방송선교회장
(충신교회 (북가좌동))안드레명상 선교헌금안내
국민은행 268802-04-031127
(예금주 김수호)
* 안드레 명상은 KBS로고스와 월드 뉴스에도 동시 게제됩니다.
* KBS로고스 : (www.kbslogos.com)
* 월드뉴스 : (www.worldnews.or.kr)
* 인터넷 : www.andre.pe.kr
* 네이버에서『안드레 명상』을 쳐도 됩니다.
발행처 : 안 드 레 명 상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7-4
H. P : 010-8871-0685
FAX : 02-514-0686
E-mail:songpo8304@naver.com
월드뉴스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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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웃어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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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습관이 선입견과 편견을 이겨
정은상 취재기자
201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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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입을 벌려야 사진이 잘 나와
정은상 취재기자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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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사람보다 웃는 사람이 행복하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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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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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 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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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직업의식
2011.1월에 취임한 브라질의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의 인기가 브라질에서 국민들 사이에 높다.
전임 롤라 남성 대통령은 인기를 얻고 임기내내 그인기가 지속되었다. 이런 룰라 에 비하여 호세프가 인기가 더 높다고 한다.
왜 더 인기가 높은가?
호세프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서란다. 브라질 국민들은 룰라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시기에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 못한 정치인들에의해서 국가 정책이 표류하는 것을 많이 경험한 터였다. 그러나 룰라가 취임한 이후, 그리고 여성 대통령 호세프가 등장한 지금까지 브라질은 개방형 통상 국가로서의 정책 기조를 세우고 그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통한 일관성을 하는 중이다.
외국자본이 브라질에 들어 오고, 자본을 결합하여 호세프는 브라질의 풍부한 자원속에서 상당히 좋은 방향으로 국가를 발전 시키는 중이다. 지우마 호세프는 대학 시절에 경제학을 전공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커리어는 정치에 입문하면서 달라진다. 다른 정치인에 비하여 특이한 커리어 코스를 거친다. 에너지부장관을 2003년 부터 몇년간 한다.
그후에 국방에 대한 학습을 하면서 그녀는 군 참모총장을 무려 4년 이상 한다. 성공적인 여성 참모총장을 말이다. 그녀는 학습하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정책 습관을 발휘 한다. 여기서 자신 감을 얻은 지우마 호세프는 룰라의 뒤를 이어 브라질 여성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수행중이다.
그녀는 개방 형 국가를 지향하는 정책을 세우고 ,브라질의 경제 체질을 개방형 통상 국가에 적합 하게 만들어 간다.
정책의 일관성은 이처럼 해외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지우마 호세프는 아마도 유럽 연합과 브라질 정상 회담을 위해서 유럽으로 달려 갈것이다.
그녀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브라질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 가는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인기는 이런 흐름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중의 하나이다. 그녀가 이렇게 성취를 이룬 것은 그녀의 직업의식
' 맡은 직무에 대한 철저한 학습후 직무 수행은 일관성있는 정책 기조로 하는 ' 직업의식을 실천한데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 김준성 연세대 직업 평론가 , nnguk@yonsei.ac.kr)
김준성 취재기자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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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것이 쉽지 않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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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습관화하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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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직업 노동 정책 스무가지 과제와 대안10
하나의 민족이 성장하는 파워는 그들의 출산율에 달린 문제이다. 이렇게 설파해도 무리는 아니다. 출산 장려는 하나의 국가 진흥정책이이다. 국가가 발전하는 데는 신 생아의 출산을 통한 노동력이 만들어 저야하고 일정한 내수 소비자가 확보되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맬더스가‘ 인구론’ 을 집필하면서 출산율에 주목한 것은 그 민족의 미래 소요 노동력을 출산율에서 찾을수 있었기에 그렇다.
유럽에서 출산율 저하로 고생을 하는 나라가 많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출산율 증가시키기 위한 예산과 정책을 수립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나라가 많다. 그러나 프랑스만은 성공하는 중이다.
출산율이 상당히 정책에 힘입어서 올라가는 중이다.
다소 프랑스가 이렇게 성공적인 출산 장려정책의 성공을 거둔 것은 다름이 아니다.
프랑스내의 직장 조직 조직들이 정부 정책방향을 인식하고 직장 여성들이 출산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육아(育兒)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데 수년째 협력을 하는 직업 환경을 만들어 준데 기인한다.
출산 장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정책 기조이다. 이런 출산 장려 정책의 성공을 하는 여건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출산 후에 일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출산율정책은 아무리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
지금 한국의 기혼 여성들도 일과 육아에 대한 병행 조건을 갖지 못한데 대한 걱정으로 인하여 이들은 쉽게 임신 출산에 대한 의사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직업 환경이 결코 한국에서 출산여성들에게 호의적인 여건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수유(授乳) 시간의 미확보, 직장내의 수유 공간의 미비는 물론, 여성들이 일과 직장을 병행 하게 통근 시장의 일정한 책정이 공직 학교 외에는 거의 확보되지 못하고 잇는 여건 에 한국 여성들은 주목하는 중이다.
여성들의 직장여건이다. 최근 유한킴벌리 라는우리나라 회사에서 출산 장려 정책을 편 결과 개선된 직업 환경에서 출산율이 증가하는데 성공한 결과를 가져온 것을 본다.
유한 킴벌리의 케이스는 긍정적인 열매라는 평가를 하고 싶다.
유한킴벌리는 여성들이 이용하게 3개월 출산휴가, 1년육아 휴가덕분에 최근 260명 여직원중 가임 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1.84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평균1.16명에 비해서 높다. 유럽에서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덴마크 출산율수준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여성들이 출산한후 자녀 양육을 돕는 구조적인 관심을 주는 회사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육아에 유리한 직장 만들기를 통해서 여성 직원들이 원하는 경우에 출산율을 올리는 열매를 수확하기위한 정책적인 노력을 경주해가야 한다. 유한 킴벌리 같이 직장단위별로 이런 출산 여건을 만드는 운동을 사회 운동 형태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인구가 줄면 소비자가 줄고 경제의 활력이 사라진다. 경제 활력을 통해서 고용있는 성장을 하려면 유한 킴벌리 같이 육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출산이 가능한 구조를 직업 환경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프랑스가 성공한 것처럼 우리나라 출산 확대정책이 성공하게 하기위해서는 말이다.
맬더스의 ‘인구론’의 의미를 생각 하면서 다시 인구론의 이론적인 세상으로 우선 들어 가보고 싶어 지는 아침이다.일자리를 늘리려면 직장 여건을 한국에서 더개선해 가는 정책 인프라가 요구된다.
월드뉴스
201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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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불곡산
정극원 취재기자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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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의 바위들
추풍(秋風).
외로움을 타는 걸까
혼자서 왔다.
쓸쓸함을 타는 걸까.
낙엽을 쓸어간다.
추풍에 낙엽이다.
추풍이다.
일진광풍이 아니라 하여도,
낙엽은 1년의 여정을 끝맺는다.
연한 녹색은 푸름이 되고,
청춘인듯 푸름은 붉음으로 물든다.
추풍이 툭 건드리면 낙엽은 진다.
추풍에 산은 물든다.
그제서야 바위가 비장한 위용을 내보인다.
푸름에 숨겨진 바위였다.
내보일 수 없는 속앓이였다.
바위가 구름을 타고 오를 수는 없지만,
홀로가는 구름을 잡아둔다.
검은 바위가 하얀 구름을 닮아 흰색이 되었다.
바위가 구름을 잡아두려고 한 목적인가 보다.
추풍이 길을 가르킨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뒤돌아보면,
벌써 꽁무니를 감추었다.
산에서 뒤돌아보지 마라 한다.
풍경의 매혹에 반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위가 터 잡은 산에서는 그렇다.
칼바위(중산리 기점 1키로)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대면한다.
칼바위가 콧날같다.
나란히 솟은 바위 두개가 쌍검같다.
복수를 꿈꾼 것도 아닌데,
산은 복수의 마음도 거두게 하건만,
조선개국을 피하여 입산한 선비에게 반역의 칼을 뒤집어 쉬었다.
애꿎은 선비가 희생되었다.
칼바위가 슬픔에 젖어있는 이유이다.
철다리 삼거리(중산리 기점 1,3키로)이다.
택일이다.
가파른 법계사이고,
완만한 장터목이다.
남한 최고봉 천왕봉.
어디로 오른들 편한 꼼수가 통할까.
묵묵함이 있어야 당도할 수 있다.
마치 수직인듯,
법계사쪽 가파름에 접어든다.
무척이나 힘겹다.
세속의 명리를 더덕더덕 달고 있는 몸이다.
세속의 무거움이 그리도 큰 것이다.
숨이 멎을 지경이다.
그저 가쁜 호흡이다.
호흡을 정비하라는듯
육중한 망바위가 나타났다.
마을을 수호하는 성황당같다.
치성을 탐문하는 검문소같다.
탄성을 지르고 만다.
수평의 탁트인 조망에 털썩 주저앉는다.
잠시 눈을 감는다.
캥거루바위이다.
그렇게 작명을 한다하여 책망당하지 않을 것이다.
법계사를 가리고 있는 바위이다.
캥거루처럼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간 바위이다.
하얗게 들어난 바위의 속살도,
떨어져 땅에 낙하한 바위도 지리산이 되었다.
2년의 세월이면,
분가한 캥거루바위가 평온을 찾기에 족한가 보다.
법계사(중산리에서 3.4키로지점) 위의 평바위이다.
일품이다.
풍기는 기운이 그렇다.
영겁의 세월을 겪어 거만할 법도 한데,
무욕을 움켜쥔 모양이 그렇다.
인간이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경탄밖에 없다.
평바위에 앉아 욕심도 명리도 다 비운다.
누구라도 평바위에 앉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되돌아본다.
인생의 되돌아봄은 회한이지만,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인생이다.
산에서의 되돌아봄은 감탄이다.
평바위였기에 망정이지,
난간바위였더라면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심장이 요동친다.
뇌리가 텅비었다.
하마바위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축을 울리는듯 우뚝솟은 큰 바위이다.
하마바위의 부채살처럼 펼친 기운이 있어,
태초에 하늘이 열렸을 것이다.
하마바위가 통째로 솟았기에,
지리산의 모든 바위가 질서를 잡았다.
눈을 뗄 수가 없다.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평바위에 한참을 누운 후에 정신을 가다듬는다.
걸음이 한없이 가볍다.
속세의 때를 땀으로 흘렸다.
물고기바위다(평바위에서 100미터 위쪽).
코끼리 크기의 통바위에 개미크기로 새겨진 물고기이다.
물고기 머리가 천왕봉으로 향했다.
천왕봉이 몽매에도 사무쳤는가 보다.
통과의례가 있다.
형식이 아니라 진중한 환영이다.
개선문(천왕봉기점 0.8키로)이 영접에 나섰다.
우뚝 솟은 바위가 마치 쌍수를 치듯,
개선문이 겹으로 빗장을 열고 있다.
개선문(두개의 솟은 바위)에 기대어 본다.
한 점에 불과한 인간이다.
생명이 있기에 인간이 존엄한 것이 아니라
양심이 통하는 세상일 때 인간은 존엄할 수 있는 것이다.
존엄한 인간도 바위에 기대면 한 점 미물에 불과한 것이다.
천왕샘(천왕봉기점 0.3키로).
석간수가 스며 나온다.
천왕샘의 석간수는,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것이다.
영험한 바위가 기운을 모아 펌프처럼 끌어올린 물이다.
천왕샘물은 거대한 바위의 기운의 징표인 것이다.
목을 축이는 것이지만,
바위의 기운으로 몸이 충만되는 것이다.
지존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다.
천왕봉(1915미터)이다.
정상에 선다.
햇살은 경사각으로 내린다.
더 골고루 비추기 위하여서다.
지존의 무대를 더 화사하게 함이다.
정상에는 햇살조차도 조응한다.
지존이란 무엇일까.
근엄함이 아니라,
권세가 아니라,
한없이 가슴을 열고 다 받아드리는 것이다.
영겁의 세월도,
찰나의 세월도 다 품는다.
햇살이 천왕봉에서 염탐하려고 한 것도 그 세월일 것이다.
너그러이 관용하고 있는 천왕봉이다.
오후의 햇살을 다 빨아드리고 있는 천왕봉이다.
산행일: 2011년 9월 6일
정극원 취재기자
2011-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