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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1-08 2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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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으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듯이 답변한 것을 두고 국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종부세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 입장을 어떻게 예상하는냐는 최경환의원의 국정질의에 대하여 한 답변이 문제된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헌법재판관은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조직이고 고도의 정치적, 윤리적, 법적 책임을 지는 공직자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기대하는 헌법재판관이란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가? 그들도 단순히 한 사람의 개인인가? 아니면 평범한 법조인이라도 모름지기 헌법재판관이 되었다면 그 때부터라도 그 처신이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

약 15년전, 헌법재판소에 연구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부장급 파견 판,검사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지인들로부터 가끔 연구관들이 식사 초대를 받기도 했었다. 어느날, 한 잔 술을 함께 하는 날, 기분좋게 술기운이 돈 한 부장판사인 파견연구관 왈, "판사도 사람입니다...!"

그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술주정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고독한 법관으로서의 삶을 얘기하자는 것이다. 평범한 부장판사 한 사람도 이럴진대, 헌법재판관이야 오죽할려나 생각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헌법재판관의 삶은 적어도 그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될 때부터라도 달라져야만 한다. 그 전부터 고귀한 삶을 유지해 온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야 뭘 못하냐는 식으로 헌법재판관의 권위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극도로 자제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이다.

요즘 들어 국가기관도 자기에게 불리하면 헌재를 비난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헌재의 위헌 결정은 다른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구속한다는 대세적 효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점은 국회도 마찬가지다. 이해관계인들도 다르지 않다. 자기에게 유리하면 박수 치다가도 자기와 입장이 다른 결정을 하면 매몰차게 몰아세운다.

헌재의 권위는 그 결론을 떠나 일단 존중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논란이 종식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 모두가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인들도, 국가기관들도, 국민들도,... 자기 구미에 맞지 않으면 매몰차게 몰아세우니 너무나 안타깝다.

이번 강만수 장관의 국회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강 장관은 헌재의 권위와 주심 헌법재판관을 더 이상 모욕해서는 안된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헌재에 온갖 짐을 뒤집어씌워서도 안된다.

오래 전에 독일 연방헌법재판관의 후임 선출을 두고 한 독일 교수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짜이퉁'(FAZ)이라는 가장 저명한 독일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번역하여 옮긴다. 헌법재판관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우리 헌법재판의 모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 국민들이 바라보는 기대치이다.

더 이상 헌법재판관을 몰아세우지 말라. 고독을 씹으며 고민하는 그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말라. 맘에 들지 않아도 그들의 결론을 존중해주라.
헌법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내 뱉는 이 시대의 한 법학자의 절규이다.


아래 글은, 헌재에 근무할 당시, 이 글이 좋아 당시 초대 헌법재판소장이신 조규광 소장님께 소개했고, 그와 마주앉아 함께 번역했던 글이다. 깊이 곱씹어볼 가치있는 글이어서, 묻어 둔 오래된 책에서 다시 꺼내어 글 의미를 되새기며 여러분들께 일독을 권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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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헌법재판소는 우리 민주공화국 헌법에서의 貴族的 要素이다. 8頭裁判部의 5인 裁判官은 경우에 따라서는 6천만 국민과 국민대표자의 다수에 반하는 재판을 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가 貴族的이라고 한다면 이에 더하여 知性과 人格을 갖춘 엘리트로 구성되어야 한다. 엘리트 자격이 있는 집단에서 - 생명의 약동(elan vital)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의 천부적 중심(Begabungsschwerpunkte)을 통하여 상하로 단계적 관계에 서 있다 - 주의깊게 선발되고 심사를 거치는 選拔節次를 통함으로써 비록 솔로몬과 같은 현자는 아니지만, 法曹엘리트 가운데에서 最高의 知性的 人士들 중 最頂上의 현명한 裁判官을 찾아내어야 한다. 최고의 적임자를 찾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 엘리트의 能力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것은 헌법재판관들의 協力權 또는 拒否權을 말하는 것이리라.

엘리트能力이 있는 자는, 예컨대 사회의 客觀的 價値 있는 目標를 위하여 평균 이상으로 全力을 다할 수 있는 자, 윤리적으로는 人間尊嚴的이고 知性的, 文化的으로는 高尙한 生活方式으로 水晶과 같이 순수함 그 자체인 자, 自由를 의무와 위험의 자유롭게 선택된 引受라고 보는 견해를 가진 자, - 의회와 언론의 소음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 여유와 성찰로써 創造的인 思想을 기대할 수 있는 자, 奢侈 대신에 連帶性으로써 모범을 보이고 자신의 정신적인 指導原理에 따르는 자, 名譽를 힘을 다하여 성실하게 一般的인 最高善(das allgemeine Beste)을 위한 最高人들의 競爭으로 받아들이는 자, 事物과 모든 人間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客觀的이고 中立的이며 또한 公正한 자, 부분적으로는 단순한 삶의 행복을 禁慾的으로 抛棄하는 자이다. Hegel에 의하면, 支配意識(희구, 요구, 향락)이 아니라 下人意識(노동, 봉사, 탐욕억제, 수양, “주는 것”(Leistung)에 대한 평가 추구)이 엘리트임을 말한다.
- Prof. Dr. H. Hummel-Liljegren -

※ 이 글은 "Hirsch 연방헌법재판관 후임자 물색에 있어 선발임무"에 대하여 Prof. Dr. H. Hummel-Liljegren이 1981년 6월 23일자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FAZ)에 게재한 글이다. Säcker, Das Bundesverfassungsgericht, 3. Aufl., S. 33.
※ <출처>[번역] 신봉기, 헌법재판관 선출제도 소고 - 독일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 선출에 관한 제도와 실제 -, 현대공법과 개인의 권익보호, 양승두교수 화갑논문집, 1994, 1087/1088면.


[덧붙이는 글]
헌법재판소와 헌법재판관이 무시되면 헌법은 무너진다. 헌법의 권위는 우리 국민이 지켜야 한다. 견제만 받는 헌법재판소, 그들의 결정이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기관으로부터 존중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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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일 뮌스터(Muenster)대학교 법과대학(법학박사), (현)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현)한국지방자치법학회/한국토지공법학회/한국비교공법학회 부회장, (전)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보,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한국공법학회 연구이사, 사법시험(2005, 2007) 및 행정고시(2003, 2001) 2차시험위원,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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