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개혁적 중도보수'당내외 이념갈등촉발
- [긴급진단] 한나라, 新보수주의냐 좌경화에 따른 포퓰리즘이냐 논란
최근 ‘개혁적 중도보수’란 새로운 노선을 천명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보수진영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 심각한 이념갈등과 혼선을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건국이래 좌우익 이념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돼온 국내 정치상황에서 애매모호한 중도주의 실용노선은 ‘회색분자’, ‘기회주의’로 낙인찍히기 일쑤였고 안 대표의 새 노선 역시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강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일련의 정치적 이념논쟁에 비춰 한나라당이 추구하고 해야 할 정체성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는 지면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나라당 안팎에선 최근 정치적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때때로 종종 실용적이지 못한 이상주의자들의 낭만적인 말싸움으로 비하되는 정치적 노선투쟁으로 보이는 이번 논쟁을 촉발시킨 주인공은 바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최근 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친서민 정책으로 재미를 본 뒤 포퓰리즘 노선을 택하려 한다”고 비난했고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이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위장된 보수주의라고 경계하고 있고 보수진영에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을 좌경화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냐며 반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안 대표가 주장한 ‘개혁적 중도보수’는 이름만 들어봐도 혼란한 신조어임에 분명하다. 개혁, 중도, 보수는 다양한 정치세력에 의해 상이한 의미로 해석되고 오-남용되는 부분이 많은 단어다. 그런데 이렇게 섞어 놓다보니 ‘개혁-중도세력을 현혹시키려는 新보수주의다’, ‘보수세력을 좌경화시키려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란 뒷말만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럼 이 같은 애매한 정치노선이 등장하고 여당 안팎에서 논란을 야기하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60년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온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당시부터 생각해보기로 하자.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10년동안 이상주의적인 좌파정치 실험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은 5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말단직원에서 대기업 CEO로, 또 다시 서울시장으로 신화를 만든 이 대통령의 화려한 능력과 매력에 빠진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말기까지 집권한 부패하고 무능한 좌파세력과 결별하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당시 국민들은 진보 내지 개혁, 참여 따위의 상투적인 수사에 싫증나 보수주의 우파세력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당선이전 보수색채를 강하게 내비친 뒤 취임이후엔 곧바로 실용주의적 인사들을 대거 발탁한다면서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강남 땅부자’,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으로 제대로 검증되지 못하거나 부적절한 인사들이 등용돼 첫 내각조차 구성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어진 총선 공천과정에선 친이-친박갈등이 폭발, 대통령의 친위세력을 자처한 친이계 세력에 맞서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 등이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대립이 심화됐다. 특히 2008년엔 한미FTA 의회비준을 서두르던 정부가 광우병 감염 위험성을 거론하는 군중시위에 위협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근 1개월이 넘도록 촛불시위를 벌이던 군중들의 주축세력은 여중생들, ‘떡볶이를 사먹어도 죽는다’, ‘화장품 발라도 죽는다’, ‘미국산 쇠고기는 모두 광우병에 걸렸고, 먹으면 다 죽는다’식의 낭설이 나돌았다. 지금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전파되는 거짓말이 사실처럼 알려지면서 정부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 와중에 몰락하는 서민, 중산층에 어필할 새로운 이념적 지표가 필요하게 된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유명을 달리하면서 과거 좌파세력의 구심점이 돼왔던 서민적 이미지가 보수우파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젠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킬 때 필요했던 시대정신인 전통적인 의미의 보수주의와 우익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기 위한 새로운 이념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성공을 모델로 마이크로 크레딧을 도입해 미소금융이 시작되고, 반값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 프로그램은 물론 대통령의 시장순례, 직업학교 학생과 실업자들과의 만남도 줄을 잇게 된다. 재래시장이나 길거리 음식을 맛있게 먹는 ‘먹성 좋은 대통령’의 사진들은 이때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올 들어서도 충격적인 이슈는 끊이지 않아 서해상을 항해하던 해군초계함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격침돼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보수진영 내부에서 대북 경각심을 제고하고 안보의식을 다잡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효과가 있었으나 정부의 초기대응 미흡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떠안게 됐다.
이후 정부부처 이전대신 새로운 세종시 발전계획을 추진하려던 정부는 박 전 대표의 국회 본회의 발언을 통해 표대결에서 패배, 원안대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를 맞게 된다. 이후 지방선거 등을 통해 득세한 야당은 4대강 살리기 사업반대를 주장하는 등 지속적인 대여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사실 정치적 흐름에 따라 전개된 시대정신이 ‘개혁적 중도보수’노선에 대한 여당의 정체성 논란을 야기한 측면이 있다. 집권후반 ‘공정한 사회’구현 및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실천을 위한 이념적 잣대는 다소 정략적인 의미가 내재돼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중도실용 내지 개혁진보 및 좌익적 가치를 도입해서라도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새 이념을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 대표가 제기한 노선이 애매해 보일 순 있지만 근본적으로 보수주의를 벗어나겠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면서 “보수정권 집권이래 제기된 다양한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고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해 새 노선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들이 현혹될 수 있는 아리송한 용어를 집권여당의 新노선으로 인정하긴 곤란하다”며 “명확한 보수우파의 정치를 이어가는 것이 좌경화를 통한 표퓰리즘세력이 되는 것을 막는 길”이라고 의견을 표명했다. 사실 서로가 너무 상반된 견해인 셈이다.
물론 최근 한나라당의 이념논쟁은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친서민’으로 전환한 뒤 이를 강화해온 대통령의 국정의지가 반영됐는지, 차기대권 레이스를 앞둔 당내외 역학관계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가 이를 촉발한 것은 아닌지 주목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체성의 확립 없는 새 노선의 결정은 지지세력의 결집을 저해하고 기존 지지자들의 이탈 내지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 원로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다음지면에 계속>
<프런티어타임스 송현섭 편집국장 21cshs@frontier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