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세론? 박근혜 위기론이 맞다
- 박근혜 전 대표에게 놓인 가장 큰 핸디캡은 당내 경쟁이 없다는 점
요즘들어 '박근혜 대세론'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이 30%대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잠룡들은 한자리수를 기록하고 간간히 손학규 대표와 유시민 전 장관만 10%대에 턱걸이 하고 있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10%대 지지율을 기록했던 오세훈 시장은 지난번 수도권 물난리로 기세가 꺾였고, 김문수 지사 또한 손학규 대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 유탄을 맞은 형국입니다. 결론적으로, 3~4%였던 손학규 대표의 지지율이 10%대에 오르는 데에는 오세훈-김문수 지지층 이탈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흐름만 놓고 보면 '박근혜 대세론'처럼 보입니다.
이 같은 흐름에는 미니시리즈 '대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야망의 세월'로 스타덤에 올라 서울시장-대통령이 되었듯이 대물이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행보에 탄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야망의 세월'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던 당시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혀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라있지 못했지만 '대물'이 방영중인 현재 박근혜 전 대표는 대권주자 부동의 1위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청자 또한 결코 순수한 생각으로 지켜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연 시청률이 계속 올라갈 수 있을지도 저는 다소 비관적으로 보지만 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손학규 대표가 급부상하면서 정치권이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역시 '마(魔)의 15%'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역시나 '찻잔 속의 태풍'이었구나... 안심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손학규 대표의 부상으로 비로소 민주당 대권주자 간 진정한 의미의 선의의 경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1위는 박근혜 전 대표(30.9%)였지만 2위부터 4위까지는 민주당 후보들이 싹쓸이했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11.6%), 손학규 대표(11.2%), 한명숙 전 총리(9.4%)의 순으로 나타났고, 오세훈 시장(8.2%), 김문수 지사(7.6%), 정몽준 전 대표(5.4%)는 하위권으로 밀려났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대표로 선출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시민 전 장관 혼자만 10%대 지지율로 2~3위를 오르내렸고 한명숙 전 총리와 손학규 대표는 하위권에 쳐져있었는데 손학규 대표의 상승세로 민주당 후보군 전체가 상승세를 타게 된 것입니다.
왜 갑자기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지난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쪽은 동반 상승세를 타고, 경쟁이 없는 쪽은 '대세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점입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회창 대세론'이 무너진 결정적 계기는 바로 '노풍(盧風)'이었습니다.
민주당 후보군 중에서 이인제 의원 혼자 20%대 후반으로 독주하고 노무현-한화갑-김중권-김근태-유종근 등은 지지율이 5%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절에는 '이회창 대세론'이 유지되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부상하면서 이인제 의원과의 치열한 경쟁구도가 전개되자 이회창 대표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2007년 대선은 그와 반대의 흐름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서로 싸우면서 본선경쟁력을 키우고 패자가 승복을 하게 되자 승자의 본선경쟁력은 극대화되었고, 민주당의 경우 '그들만의 개싸움'에서 지지자들의 대규모 동원에 힘입은 정동영 의원이 본선경쟁력이 가장 약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후보가 되어 승리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헌납하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당시 후보가 정동영 의원이 아닌 유시민 전 장관이나 이해찬 전 총리였으면 좀 더 선전했을 것입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이대로 지지율 고공행진으로 순항하고 싶겠지만 '정치적 역동성'이 강한 대한민국에서 그와같은 일이 벌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당내 경쟁이 없다시피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벌였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합당을 통해 호랑이 소굴로 들어갔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와 박태준 회장을 끌어들였습니다.
결국 치열한 내부경쟁 없이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치권 지각변동의 중심에 서야 하고, 기존 정치판도 내에서 본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당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그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박근혜 전 대표 측은 마치 이대로 시간만 지나면 대통령선거에서 압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말 순진한 정치적 시나리오 입니다. 5년마다 벌어지는 거대한 권력게임에서 누가 봐도 상대방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의 룰'을 그대로 놔둔채 승리를 헌납할 상대는 없습니다.
현재 박근혜 전 대표에게 놓인 가장 큰 핸디캡은 당내 경쟁이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김문수 지사나 오세훈 시장이나 남은 2년간 박근혜를 위협할 적수로 부상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후보를 띄울 수 있는 여건도 형성되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후보가 부상하기 위해서는 2012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압승을 일궈내고 이를 통해 스타덤에 올라야만 하는데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주당은 손학규-유시민-한명숙이 치열한 대권후보 경쟁을 벌이면서 송영길-이광재-안희정-김두관-이인영 등이 '젊은 리더'를 자임하며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게 될 것입니다. 보나마나 결과가 뻔한 스토리보다는 이 쪽이 아무래도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습니다. 손학규 전 대표는 단기필마로 승리했다는 '성공 스토리'를 노릴 것이고, 유시민 전 장관은 '노무현의 적자'가 승리했다는...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항할 여성 후보가 기라성 같은 남성 후보를 물리쳤다는 모멘텀을 노리게 될 것입니다.
폭발적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막을 내린 '슈퍼스타k2'를 보면서 제가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인물은 바로 장재인입니다. 초반만 하더라도 그 누구도 그녀를 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4강전에서 존박에게 맥없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음악평론가들은 초반부터 종반까지 큰 변화가 없이 안정감을 보였던 그녀보다는 갈수록 상승세를 탄 허각과 존박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탈락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한 대목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흐름으로 계속 가서는 그 어떠한 모멘텀도 형성할 수 없고 본선경쟁력을 강화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박근혜 대세론'에 안주하다 보면 민주당 쪽에서 상승세를 타며 '후보단일화'라는 모멘텀까지 형성한 후보에게 어느 순간 잡히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 내 친이 쪽에서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졌다'며 보란듯이 판을 흔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재오 장관은 그러한 타이밍이 올 것으로 기대하며 정중동 행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 쪽에서는 아무래도 유시민 전 장관이 요주의 인물입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대략 15% 정도를 차지하는 '노무현 지지자'의 적장자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남(대구) 출신입니다. 물론,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호남 쪽에서 훨씬 안티계층이 더 많기는 하지만 아직 2년이 남아있기에 속단할 수 없습니다.
만일 유시민 전 장관이 손학규 대표, 한명숙 전 총리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단일후보가 되어 손학규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가 호남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시민 전 장관의 지지를 호소할 경우 판세는 뒤바뀔 수 있습니다. 특히, 기존 민주당 후보 중 수도권에서 가장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은 20대와 30대 일부에서만 지지를 얻고 있지만 현재 10대인 세대가 2년 후 대거 유권자로 유입되게 되면 흐름은 급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잘 망각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유시민 전 장관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며 잠복하다가 2년 후 등장하게 되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흐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손학규 대표가 춘천 칩거를 접고 전당대회에 나오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듯이 말이죠.
따라서 지금은 '박근혜 대세론'을 말할 때가 아니라 '박근혜 위기론'을 말할 때입니다. 어차피 한나라당 내에서 그럴 듯한 경쟁이 벌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면 차라리 박근혜가 정치권 지각변동의 중심에 서야 할 때입니다. 이 판 그대로 흘러가게 되면 그만큼 민주당 쪽과 친이계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지난 1987년 민주당 쪽이 4자필승론을 내세우며 분열주의로 나갔듯이 친이계 또한 4자필승론을 주장하며 박근혜 흔들기 및 분열주의로 나갈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정국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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