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한나라호, 어디로 가는 배인가
- '개혁적 중도보수'로 노선 탈바꿈, 용어 자체도 억지스럽고 헷갈려
표정. 노가쿠(能樂)라고도 하는 노(能)는 일본 전통 가면 무극의 한 장르로서 가마쿠라 시대에 성립되어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다. 노는 일명 노가쿠시(能樂師)라는 전문 배우들에 의해서 공연된다. 노가쿠시는 기본적으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데 느린 음악에 맞추어 유현(幽玄)하게 연기한다는 데 노의 특징이 있다.
즉 노를 보고 있으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된다. 따라서 노를 아주 잘 이해하거나 노에 심취한 사람은 예외겠지만 대개는 노의 대사나 동작이나 음악의 느린 템포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쓰고 있는 가면들의 표정이다. 개개의 표정이 사라져 무표정한 것이 되어버린 노의 가면. 그러나 표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의 어느 표정에도 통할 수 있는 중간표정인 것이다.
소리. 몽골의 전통 음악에는 흐미 또는 배음이라 하여 목을 사용한 독특한 성악 스타일이 있다. ‘흐미(Hoomi)’는 입을 움직이지 않고 목청과 혀로만 뱃속의 소리를 끌어내는 창법이다. 높은 옥타브의 꾀꼬리 소리와 낮은 옥타브의 깊은 베이스 소리가 한 입에서 동시에 나온다.
즉 몽골전통 음악인 흐미는 목소리의 성대와 가성대를 동시에 울려 저음과 고음을 같이 내는 발성을 말한다. '흐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몽골 유목민들이 말, 양 등의 가축을 부르는 소리에서 발전했다는 설(說)이 있다. 그들이 의하면 만물이 창조한 시초부터 시작된 흐미는 인간이 처음으로 산속에서 강의 소리와 메아리를 흉내 낸 첫 멜로디라고 한다. 어쨌든 ‘흐미’는 한 입에서 동시에 두 가지 소리를 내는 독특한 이중구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잠시 화제를 돌려 보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10월 25일 '항미원조 전쟁기념일'을 맞아 중국의 6.25 남침전쟁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정부도 "이는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재확인 못을 박았다.
이처럼 6.25 남침전쟁이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 및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승인하에 감행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고 있음에도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나라당을 ‘개혁적 중도보수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밝히는 내용이 나왔다. 한 정당이 그것도 집권 여당의 당수의 입에서 개혁도 하고, 중도도 하고, 보수도 한다면 당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개혁적 중도보수’가 주는 용어 자체가 억지스럽다. 무슨 표정인지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한나라당이 2013년부터 소득·법인세 최고구간(소득세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 법인세 2억원 초과) 세율을 인하하려던 방안을 철회하고 원래 세율대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처럼 발표했다가 반나절도 안 돼 이를 '검토 여부 논의'로 축소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한나라당이 감세 정책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국정을 이끌 책임이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무리 야당이 지난 6.2지방선거 당시 포퓰리즘 정책을 내 놔 재미를 봤다고 해도 집권여당이 휘말리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집권 여당은 국가와 국민의 내일을 걱정하는 어른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한 표, 한 의석을 의식하고 인기영합주의를 덩달아 내세운다면 나라살림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고 두 가지 소리를 내고 있는 집권 여당은 그 자질을 의심받는 구실 밖에 안 된다.
6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듬고 다듬어진 노(能)의 양식에서는 한두 발짝 앞으로 나는 것만으로 세상을 향해 내닫는 결의를 나타내고, 또한 뒤로 한 발 물러나는 것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런 극도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이른바 ‘가마에(かまえ)' -자세를 취하다- 라는 노(能)의 동작이 있다.
말하자면 그저 한 위치에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서 움직임을 나타내는 연기다. 그것을 어느 비평가는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팽이가 마치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집권 여당이 북한의 김가(家)네 3대 세습과 중국의 시진평의 6.25 남침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에도 공식 논평을 못하면서 ‘개혁적 중도보수정당’을 내세워 국민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다. 자세만 바르게 취해도 상대방은 초조해 하는 법이다.
한나라호, 어디로 가는 배인가? 한나라당은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를 놓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 오동추야 / 해당글은 프런티어타임스 토론방글로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프런티어타임스 frontier@frontier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