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칼럼]유명환 파문과 MB의 딜레마
- 대한민국 '국민정서법' 위반… 특권의식, 머리-가슴 밑바닥까지 박혀<관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크게 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5급 특채전형에 응시했지만 서류미비로 자격미달인 딸을 구제하기 위해 지원자 전원을 탈락시키고 재공지 절차를 거쳐 결국 자신의 딸 1명만 최종합격시켰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교관 자녀였으니 외국어 실력도 뛰어났을테고, 명문대 석사 학위 이상을 취득했을테고, 아버지가 차관이었던 시절에 일반계약직으로 근무한 경험도 있다하니 전혀 자격미달은 아니었을 것이고, 나름대로 일을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너무 안좋고 타이밍이 최악일 때에 이 문제가 여론에 불거져나왔다는 점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즉, 집안이 좋다고 해서 스스로의 처절한 노력 없이 쉽게 어떤 열매를 따먹는 것에 대해 상당한 사회적 반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들어 대물림 연예인, 정치인, 경영인이 많이 배출되고 있지만 연예인의 경우 나름대로 냉혹한 서바이벌 경쟁을 치러야 하고, 정치인의 경우 공천과 선거라는 혹독한 절차를 거치고, 2세 경영인의 경우에도 일정부분 아버지를 도와 회사 발전에 기여한 공로분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용납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유 장관 딸의 경우는 이와 상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특채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서바이벌 경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특성상 그럴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제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아빠가 장관인데 특별전형에 응시하겠다는 딸이나, 응시하겠다는데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합격하게 놔두는 아빠나 도통 그 정신세계(멘탈리티)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이와같은 상황을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전에 겪었던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회창과 그 아들 및 며느리 시리즈였습니다. 당시에도 이회창측은 아들은 병역면제가 법적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맞섰고, 며느리 원정출산에 대해서도 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대권 도전에 실패했지요. 지금 유명환과 그 딸의 멘탈리티가 이와 비슷합니다. 결국 핵심은 특권의식이 머리와 가슴 밑바닥까지 박혀있다는 거지요.
요즘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저 아이 강남 살아"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놓고 끼리끼리 밀어주고, 남들이야 어떻든 아무런 의식없이 우월함을 드러내고, "찌질한 놈들은 입닥쳐!"하며 대놓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이런 행태들에 대해 분노와 억울함이 치밀어올 때 그냥 서로 위안삼기 위해 "강남 살아" 이렇게 말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유명환 부녀의 경우에도 이러한 특권의식에 빠져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거기에 외교부만이 갖는 조직적 폐쇄성도 이같은 특권의식을 더욱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외교관 뿐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외교관 여권을 소지하면서 면책특권을 부여받는 것, SKY대 등 명문대에 비교적 손쉽게 특례입학을 하는 것, 외국어에 능통하고 외국생활 경험이 있기에 손쉽게 상류층 문화에 스며들 수 있는 것, 외교라는 전문성 때문에 외부에서의 인재영입이 가장 적다는 폐쇄성... 이런 것들 말입니다.
오늘 오전에 유명환 장관이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딸이 응시를 취소했다고 했는데... 이것도 참 미스테리합니다. 이미 특별전형 절차가 마무리되어서 합격 통지까지 했는데 '응시 취소'라? 마치 이미 결혼식을 끝내고 혼인신고까지 마쳤는데 '이혼'이 아니라 '청혼 취소'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런 경우는 결국 절차에 하자가 있었기에 원인이 무효라는 이야기인데 유명환 표현대로라면 "절차적 문제는 없지만 아버지가 수장인 곳에 딸이 근무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고 하니 도무지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절차는 문제가 없다면서 원인무효에 해당하는 응시 취소라...ㅎㅎ 더욱 가관인 것은 그래도 명색이 5급 공무원 합격통지를 받았는데, 과연 법적으로 '응시 취소'라는 행위를 공직 내정자가 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난해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등에 합격한 사람이 임명에 응하지 않아 임용이 안될 수는 있어도 합격 후에 "나 외무고시에 응시한 것 취소하겠다"고 한 사례가 과연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만 되어도 모두가 아는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쓰지 말고, 외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메지 말라"(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위 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러한 격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대놓고 딸 한사람만을 합격시켰으니 시중 여론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뜩이나 행정고시 비율을 50%로 줄이고 나머지를 민간전문가로 특별채용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한 후 대학가와 고시촌이 폭격맞은 듯 쑥대밭이 되어있는데 이번 유명환 딸 파문이 터졌으니 아마도 여론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입니다.
특히, '취업'문제는 20~30대와 부모 세대가 모두 '내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사안이기에 그 사안의 휘발성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명환 장관이 결국 사퇴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문제는 사퇴까지 가는 과정과 사퇴 이후 이명박 정권에 엄청난 상처와 후폭풍이 밀어닥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고 말할 때만 하더라도 그냥 부도덕하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총리와 장관을 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사안은 과거제-국가고시로 이어져온 '공직 진출의 공정성' 문제를 정면으로 엎어버린 것이기 때문에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자마자 이런 일이 터지면서 '고려시대 음서제 부활' 논란을 야기했기에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정한 사회'가 '불공정한 특채' 때문에 무너져내리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유명환 장관을 단칼에 경질하기도 어려운 국면에 현재 놓여있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오는 11월에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주무 핵심장관인 외교통상부 장관을 경질한다는 것은 행사 준비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고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위신 손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야당과 시민단체가 이번 파문에 대한 국정조사와 감사원 조사를 요구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장관을 사퇴시킬 경우 이를 사실로 시인하는 결과가 되어 G20 정상회담을 2개월 앞두고 외교부 업무를 사실상 마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안은 당장 경질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크지만 현실적으로 사퇴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거지요. 이게 MB의 딜레마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유명환 장관을 그대로 안고 갈 경우 사안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왜냐하면 취업이 안되고, 비정규직 청년층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야말로 이들의 분노와 상실감을 표출할 수 있는 상징적 이슈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수많은 청년들과 부모들이 광장으로 달려나와 '유명환 퇴진'을 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G-20 정상회담을 두달여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수천-수만의 인파가 외교부 청사로 몰려와서 항의 시위하는 상황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은 공권력을 투입하고, 부상자는 속출하고, 그 상황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해서 G-20 치안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조현오 청장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시나리오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유명환 파문으로 인해 김태오-신재민-이재훈 사퇴로 일단락되었던 '인사청문회 국면'이 다시 제2라운드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의 맹공으로 유력 정치인 3명을 낙마시킨 후 '부자 몸조심'을 하고 있던 민주당에게 다시한번 '내각의 도덕성과 자질'을 공격할 절호의 빌미를 주었으니...
정말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지요. 그나마 인사청문회는 국회라는 제한된 링에서 펼쳐졌지만 이번 제2라운드는 여론과 언론을 통해 사실상 '여론재판'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그 끝과 파장을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유명환이라는 분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 시점에 이렇게 자극적이고 휘발성 있는 이슈를 등장시킬 수 있는지... 혹시 MB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일부러 그랬을까요? 정말로 미스테리한 아버지와 그 딸입니다.
<프런티어타임스 네티즌칼럼위원 관찰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