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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0-08-08 10: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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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무성이 박근혜에 대해 평가한 것을 두고 친박진영이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화가 많이 나고 분이 풀리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어찌되었건 한때 자신이 좌장으로서 모셨던 지도자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이해가 부족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표현은 지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서있는 스승이 어리숙하고 모자라는 제자에게나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김무성이 박근혜에 대해 감정적으로 응어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자신보다 우월한 리더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도 이제 원내대표가 되어 지도부의 한 축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박근혜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마이웨인 선언인 셈입니다.

그러나 김무성이 지적한 두 가지 중 다른 하나는 대단히 의미 있는 지적입니다. '정치적 유연성'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사실 이것은 제가 박근혜 캠프에 몸담고 있을 때에도 대단히 절실하게 느꼈고, 너무나도 아쉬웠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치적 유연성'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박근혜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유연성'이라는 것은 정치지도자-참모-지지그룹을 모두 함께 묶은 전체 진영을 통해 발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추상적일 수 있을 것같아 좀 더 쉽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데에 성공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을 살펴보면 좀 더 그림이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노무현의 경우 노무현-386참모-노사모 요렇게 구성될 수 있고, 이명박의 경우 이명박-참모그룹-뉴라이트 요렇게 묶을 수 있습니다. 김영삼-상도계-영남, 김대중-동교계-호남이라는 묶음도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지도자-참모-지지그룹이 모두 강경했던 사례는 노무현 밖에는 없습니다.

김영삼의 경우 지지그룹이 사실상 군사독재세력과의 야합인 3당합당을 수용할 만큼 유연했고, 김대중의 경우에도 이기택-김종필-이한동 등 정치적 성향과 지지기반이 다른 이질적 세력과 선거연합을 할 수 있을 만큼 유연했습니다.

이명박의 경우에는 본래 독보적인 지지기반이나 정치철학이 없었기에 유연성 자체를 따질 수가 없습니다. 그냥 세력이 몰리는 쪽으로 줄서고 휩쓸려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이회창의 경우 1997년과 2002년 모두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되는데에 실패했습니다.

1997년에는 이인제와 김종필을 끌어안지 못했고, 2002년에는 박근혜와 정몽준을 끌어안지 못했습니다. (물론, 막판에 박근혜를 끌어안기는 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 시너지가 제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가 '정치적 유연성'에 대해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하느냐? 지금까지 노무현을 제외하고 강경 일변도로 나가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노무현도 본격적인 발톱을 드러낸 것은 2002년 3월 민주당 국민경선이 시작되면서 입니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 호남 강경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시절에는 발톱을 숨기고 철저히 엎드려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고 민주당 부총재를 했습니다. 정치적 유연성은 없지만 최소한 스스로 강경하다는 이미지를 주지않기 위해 철저하게 위장하고 엎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남 강경파의 아성인 광주에서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훗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갈라지게 된 것도 사실 그 비극의 시초는 광주 경선입니다.

호남 강경파의 아성인 광주는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어줬는데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노무현 입장에서는 호남에서 얻은 90% 득표율보다 부산과 경남에서 얻은 35% 득표율이 대통령 당선에 더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노무현은 김대중 집권기간 중 발톱을 숨겼을까요? 그 이유는 그래야 지지기반을 넓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과 386참모들 그리고 노사모는 자신들이 호남 강경파들과 정치적으로 절대 한 배를 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표를 줘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위장하고 엎드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호남 강경파들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북송금 특검과 이라크 파병을 주도함으로써 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그 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기에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김영삼의 경우에는 더욱 노련했습니다. 자신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 소신있고 강경한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형우와 김동영을 앞세워 제1야당 총재인 김대중과 전면전을 벌임으로써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김윤환이라는 '트로이 목마'를 내세워 민정계(전두환-노태우가 창당한 민정당 출신)를 사실상 와해시키면서 '신YS계'를 만들면서 정치권 내 지지기반을 넓혀갔습니다.

그만큼 정치라는 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고, 모두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올인'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에 걸맞는 행보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김무성이 지적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실정치 속에 파묻혀있고, 그 안에서 권력게임과 이권쟁탈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들은 더러운 쓰레기들이고 박근혜만이 고귀한 희망이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2012년 대통령선거까지 2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 동안 박근혜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게임만 해오고 있습니다. 한때 박근혜의 좌장이라고 했던 사람들은 이제 '친박'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만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서청원도 대오에서 이탈했고, 최병렬도 이탈했고, 허태열과 김무성도 이탈했습니다. 이에 반해 그들 만큼의 정치적 비중을 갖고 있으면서 새롭게 박근혜의 좌장이 되었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명박 진영에 가있는 사람들 상당수도 본래 '친박'으로 분류할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강재섭이 그렇고, 전여옥이 그렇고, 김덕룡이 그렇고, 맹형규가 그렇고, 나경원이 그렇고, 주호영이 그렇고, 최경환이 그렇습니다. (물론, 강재섭과 최경환은 스스로 부인한 적이 없으니 아직 '친박'무늬지만...)

2008년 총선에서 이재오, 이방호, 박형준, 정종복 등 공천학살을 주도한 인물들이 모조리 낙선하고 친박연대가 약진한 이후 한때 한나라당 국회의원 160여명 중 '사실상의 친박'이 80~90명이 된다는 이야기가 여의도에 나돌기도 했고, '주이야박'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냉정하게 진성 친박을 따지면 20여명에 불과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핵심이 바로 정치적 유연성 부족입니다.

박근혜를 소신있고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유정복-이정현-이성헌 등 친박참모들이 박근혜보다 더 강경한 스탠스를 잡고 있고, 박사모와 친박 지지자들은 이들 참모들보다 더 강경한 것처럼 국민들에게는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외연을 넓힐 수 없고 지지기반도 넓어질 수가 없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지난 2007년 경선에서 전여옥, 나경원, 주호영, 김덕룡, 맹형규 등이 일찌감치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지 못한 데에는 강경한 참모들과 강경한 지지자들이 단단히 한 몫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말로 박근혜를 소신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참모들과 지지자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들이 보다 유연해지고 개방적이 될 때에 그만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태생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그럴 수 없다면 하다못해 노무현 참모들처럼 발톱을 숨기고 엎드릴 능력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박근혜가 정도를 걸어간다 하더라도 그 밑에서 강경 일변도 언행을 일삼으며 박근혜에 대한 충성경쟁을 일삼는 참모들과 지지그룹을 보면 상당수 국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광경을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너무나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용산에 지역구를 둔 진영이 이재오 당선을 적극 도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진영도 친박 대열에서 이탈한 것일까요?

혹시라도 그렇게 몰고가면 절대 안됩니다. 지금은 멀쩡한 '친이'라 할지라도 '친박'으로 데려와야 할 판인데 스스로 '친박'임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을 왜 자꾸 선명성과 충성 경쟁 때문에 내칩니까?

기본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일종의 '의회 민주주의'와 '광장 민주주의' 투트랙입니다. 의회 민주주의 하에서는 정치세력이 중요한 것이고, 광장 민주주의 하에서는 이미지와 콘텐츠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박근혜가 뛰어난 이미지와 콘텐츠를 갖고 있더라도 여의도 정치권에서의 세력 싸움에서 패배하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습니다. 지난 2007년 경선에서 그것을 저는 똑똑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참모들과 지지자들은 도무지 바뀐 것이 없습니다.

패배 원인을 제대로 분석한 사람이 없기에 이를 개선하고 보완할 대책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국회를 폐쇄하고 완벽한 '광장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이상 "국민을 향한 정치"만으로는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현실정치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과 타협도 하고 거래도 해야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지난 2007년 경선 패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분석이 친박 지지그룹 내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봅니다.

<프런티어타임스 관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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