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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09-20 13: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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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호 전 kbs 사회교육방송국 프로듀서, 안드례 명상저자
[월드뉴스는 앞으로 안드레 명상 저자이신 김수호님의 허락을 받아 그의 글을 부정기적으로 연재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어버이 살았을 때" 제목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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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06년) 10월 21일 중국 산동성 TV는 92세의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중국의 명산인 태산을 오르는 장면을 방송했다. 그 주인공은 우리나라 농협에 근무하는 42세의 이군익 집사였다.

이군익 집사는 이에 앞서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금강산을 구경시켰는데 이 보도를 본 중국 산동성 취부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권혁범씨가 이군익씨를 초청한 것이다. 산동성의 취부는 공자의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특히 공자의 학문을 교육하는 학교가 있을 정도로 효(孝) 사상이 뿌리 깊은 곳이기도 하다.

92세의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태산 관광을 하는 이 모습은 전국 방송망을 가진 산동성 TV의 뉴스를 통해 약 5분간 1억 2천만 중국 시청자를 감동 시켰다. "한국에 저런 효자가 있다니..." 이 뉴스는 중국 전역에서 며칠간 화제거리가 되었다.

TV 화면에서 지게에 탄 아버지는 아들을 고생시키는것 같아 기쁜 표정은 전혀 없었으나 오히려 아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아버지를 모시고 태산을 올라가는 것에 대해 연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시조를 좋아한다는 이군익씨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이 시조가 그날따라 더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한편 올해 93세의 이선주 옹은 슬하에 7남매 (2남 5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 올해 43세의 막내 아들 이군익 집사는 이선주 옹이 50세에 얻은 쉰둥이로서 특히 근간에 지게 효자로 소문이 나있다.

어느 집안이든 부모님은 항상 막내를 늘 생각하며 또한 막내는 부모님이 빨리 늙어가는 것을 형제중에서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자식이다.

이군익 집사도 평소 빨리 장성하여 꼭 부모님께 효도 하겠다고 다짐하며 살았지만 이미 부모님은 서산에 지는 태양처럼 황혼길로 가고 있었다.

. 특히 어머니는 오랜 세월 천식으로 고생을 했는데 어머니가 77세 되던 2004년도에 결혼 60주년을 기념하여 병중에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설악산 관광을 시켜드렸다.

이군익 집사는 형님과 함께 휠체어와 산소통을 준비하여 어머니와 설악산 관광을 했는데 그때 권금성 정상에서 찍은 부모님의 사진이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효도 여행이었다고 지금까지 아쉬워했다.

2005년도 어머님은 자녀들이 미처 손쓸 시간도 없이 77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영면했다.

17세에 시집와서 자신과 60년을 함께 살았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던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 차마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그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짝을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된 아버님을 그대로 볼 수 없어 막내 이군익 집사는 형님과 의논하여 아버지를 자기 집으로 모셔 왔다. 아버지를 모셔 온 첫 날, 응접실의 TV를 아버지가 거처할 방으로 옮겼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TV를 보기 위해 항상 아버지가 손자들의 재롱을 보면서 어머니의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외에도 집안에 화단을 만들어 화초를 가꿀 수 있는 소일거리도 만들어 드렸다.

이것도 부족하여 집 모퉁이에 조그만 정자를 만들어 동네 어른들을 수시로 초대하여 회식 자리를 만들었다. 이 회식 자리는 자신이 직장에 출근하기 때문에 부인이 전담했다.

특히 부인 김연희 집사는 일찍 아버님을 여의었기 때문에 친아버님께 못다한 효도를 시아버지께 해드려야겠다는 각오로 남편 못지 않는 효성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친교가 이루어졌고 또한 자식들의 극진한 효도로 얼굴에 드디어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가지 안타까운 일은 6.25 전쟁때 북한 인민군으로부터 심한 구타를 받아 척추 신경이 손상돼 지금까지도 하반신 통증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 됐다.

이군익 집사는 형님과 의논하여 아버지의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아버님이 가보고 싶다고 했던 독립기념관과 금강산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금강산 관광을 앞두고 이군익 집사가 온갖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이 바로 '특수 지게'였다. 바로 이 지게에 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에 올라가려 한 것이다.

그러나 금광산 관광에 오르자 이 특수 지게는 남측 검사대에서는 통과외었지만 북측 물품 검사대에서는 의심을 받게 됐다. 이에 이군익 집사는 북측 검사원에게 특수 제작된 지게의 용도를 설명을 했고 그러자 북측 검사원은 이군익 집사의 지극한 효성에 감복하여 통과시켜 주었다.

그런데 정작 이 지게를 탈 아버지는 아들이 금강산을 오를 때 여러가지 짐을 지고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첫날 구용연 코스 산행을 할 때 비로서 이 지게가 자신을 태우고 산을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면서도 웃었다.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뚜벅뚜벅 금강산을 오를때 주위 사람들이 "요즘 병든 부모도 몰래 버리는 세상에 저런 효자가 있다니 참 희안한 일이다." 또 어떤 사람은 " 아마 고향이 이북인 모양이다." 또 어떤 사람은 "손자가 할아버지를 지게에 모시고 금강산 구경을 시키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이 지게는 특수 알미늄으로 제작되어서 무게가 15kg에 아버지의 체중 43kg, 그 외 구두,지팡이 등 모두 합쳐서 총 60kg이나 되었다.

이군익 집사는 형님과 누님의 도움을 받으며 첫날 금강산 관광을 무사히 마쳤다. 온천에서 이군익 집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지게 끈에 눌린 어깨와 팔의 상복부가 검푸르게 멍이 들었고 하복부는 벌겋게 부어 있었다. 이 모습에 형님과 아우 두 형제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이 처참하게 보였는지 매우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 없으셨다.

두번째날의 관광은 만물상 코스였는데 아버지는 예상한대로 만상정 앞 공터에 앉아서 "나는 여기서 구경해도 되니 올라가지 않겠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즉 어제 온천에서 본 아들의 멍든 그 상처가 생각나서 다시는 아들에게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었다

. 그러나 이군익 집사는 한 시간 가량 아버지를 설득하여 삼선 앞 전망대까지 올라가 만물상을 구경 시켜 드렸다. 이군익 집사는 이 곳에서시 한 수를 지었다.

연 자 부 엄 행 금 강 (戀 慈 負 嚴 行 金 剛) 내용인즉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아버지를 등에 지고 금강산에 올랐다는 뜻이다.

이군익 집사는 이 지게 관광이 비록 힘들고 위험한 일이지만 아버지가 평소 보고 싶어 하시던 금강산에 모셔다 드렸다는 것에 너무나 뿌듯하여 기뻤다.

어버이 살았을 때 섬기기를 다하라는 옛 시를 생각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림움의 눈물이 돌계단에 방울 방울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 눈물을 땅방울로 생각했을 것이다.

금강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목이 뒤틀리는 극심한 통증으로 한달간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이 치료가 끝나면 이군익 집사는 또다른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올해 93세의 이선주 옹은 주일만 되면 두 아들과 딸, 사위,며느리, 손자들과 함께 인천 성산교회 (담임 목사 최상용)에서 예배를 드린다.

거동이 다소 불편 하지만 그래도 주일날은 떨어져 사는 자녀들이 한 교회에서 만나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이 이선주옹에게는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이선주 옹이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둘째 따님 이순익 권사 때문이다. 이순익 권사는 부모님과 두 남동생 그리고 그 가족들을 모두 자신이 다니는 성산 교회로 인도했다.

성산교회 관리 부장으로 있는 이관익 장로는 누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아버님이 교회에 나오시게 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면서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마이크 소리에 귀가 울려 설교를 전혀 못 들으셨는데 지금은 설교가 잘 들려 기쁘하고 계시다는 말을 했다.

또한 며칠 전에는 동생 이군익 집사가 한 주일에 세 사람을 전도했다고 자랑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교회 지휘자, 반주자, 선교회장등 교회가 맡기는 각종 봉사 사역에 온 가족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관익 장로는 "우리 가족들이 항상 즐겨 보며 묵상하는 성경의 구절이 예배소서 6장 1-3절"이라고 말했다. 즉 부모님 공경에 대한 말씀이다.<이글은 언제나 www.월드뉴스.kr 칼럼연재에서 김수호 란을 찾으면 됩니다.>

글 : 김수호 www.andre.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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