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物 比較 : 高建과 申鉉碻(신현확)
- 행정의 달인 처세술의 달인
듣자하니 高建이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6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35살 나이인 73년에 강원도 부지사, 37살인 75년에 최연소 전남 도지사를 역임, 출세가도를 달려 박정희 대통령 서거때엔 청와대 수석 그리고 전두환 정권때는 교통부 장관, 농수산장관, 내무부장관을거쳤고 김영삼 정권때는 총리를 했었다.
김영삼과 평생 라이벌이었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 국민회의黨 소속으로 民選 서울시장을 했고 노무현 때는 다시 총리를 했었는데 盧깽판때는 잠시 대통령 대행까지도 했었다.
노무현 뒤를 잇는 대통령깜으로 高建이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한때 유력했던 사람이 이제 72살의 고령으로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이 된 것은 좀 格에 맞지 않는 의외의 나들이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쨌던 대한민국 역사 61년에서 이승만 대통령만 제외하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이명박 7대에 걸쳐 최고위 관직을 누빈 장수무대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기록을 남긴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뼈없는 연체동물처럼 네모상자에 들어가면 네모가 되고 세모상자에 들어가면 세모가 되는 발군의 처세술로 언론에서는 그를 '행정의 달인'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처세술의 달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모든 권력자의 눈에 들게 했을까?
나는 高建을 볼 때마다 申鉉碻이 동시에 떠오른다.
申鉉碻은 이승만 정부때인 1959년 39살 나이로 부흥부(뒷날 건설부) 장관에 임명된 인물로 일제시대에 고등문관시험(요즘의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관리생활을 시작, 일제와 이승만 정부 그리고 박정희 정부에 봉직했다는 시기적 차이는 있으나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자의 눈에 들어 벼락출세했다는 경력은 비슷하나 신현확은 80년 최규하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끝으로 관직을 끝내고 27년뒤 87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은 점이 다르다.
두 사람은 고위 관료로서 한 시대의 포커스를 받은 인물이긴 하나 그 성격은 아주 다르고 매우 대조적이라 비교의 대상으로 꼽을 만 하기에 한번 짚어보기로 한다.
高建은 거의 평생을 고위관직에 몸담았으나 한번도 다친 적이 없는 사람이고 신현확은 자유당 정부가 무너지고 난 직후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책임을 지고 2년 6개월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부흥부 장관으로서 자신의 개인적 잘못은 없었으나 3.15 부정선거을 획책한 국무위원이라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었던 것이다. 부흥부 장관이 3.15 부정선거에 책임을 진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하여튼 그래서 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 고건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과연 옥살이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었을 때 청와대수석비서관으로서 사태수습을 해야할 위치에 있었던 고건은 갑자기 청와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사실 세간에서는 당시 고건에 대해서 일시 잠적이라는 그런 표현이 있기는 했으나 당시 상황으로서는 전후 사정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때 김재규가 정승화가 朴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려주면서 비상계엄선포를 주문했을 때 그 공포분위기속에서 "비상계업 선포할 이유가 뭐냐?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안 된다."고 용감하게 김재규, 정승화에게 반기를 들고 맞섰던 사람이 바로 신현확이었다.
이때 김재규의 주문대로 비상계엄선포를 했더라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신현확 자리에 고건이 있었더라면 어떤 처신을 했을까......여러 장면들이 교차된다.
78년 경, 국무회의에서 내무부장관이 기획원에서 예산을 대폭삭감하는 바람에 농촌주택개량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보고하자 朴대통령은 부총리 겸 기획원장관이던 신현확을 쳐다보며 "부총리, 그 예산 좀 늘려줄 수 없겠소?"하고 물었다.
이에 신현확이 단호하게 "안 됩니다."고 했다. 그러자 내무부장관의 보고는 계속되었는데 박대통령이 한참 보고를 듣다 다시 "부총리. 그 (농촌주택개량사업) 예산 좀 늘릴 수 없겠소?"하고 다시 신현확을 쳐다봤다.
그러자 신현확은 똑 같이 "안 됩니다." 했다.
그러자 朴대통령은 "안 된다니 할 수 없지."하고는 다시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신현확은 그런 사람이었다.
신현확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을 중용하는 朴대통령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때 고건이 부총리 자격으로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23살 어린 나이에 공직을 시작해서 72세가 된 오늘까지 국가의 요직에 기용되는 高建을 행적을 보면서 그리고 흥분해서 날뛰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비상계엄선포 요구에 "그 이유가 뭐요?" 하며 맞섰던 신현확을 대비하며 인물은 인물이 알아본다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며 양지만 찾아가는 사람들의 처신을 생각할 때 대통령의 주문을 "안 됩니다" 한 마디로 거절했던 신현확과 "안 된다니 할 수 없지"했던 朴대통령이 새삼 그립다.
<프런티어타임스 이태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