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09-12-16 18:14:46
기사수정
자연의 것은 인간의 것에 비해 항상 위대하다.
자연에 가까운 생명체는 인간에 비해 영적으로 더 뛰어나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능력이 우월하지 못하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자연앞에 인간은 왜소하다.
그런데에도 세상은 인간에 의하여 가공된다.
정복과 파괴를 더 본성으로 하는 데에도 인간만이 우월하다.
직감하는데 있어서 더 무능한 인간들이지만,
자연과의 영적인 대화에 있어서 더 무력한 인간들이지만,
그럼에도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공존에 있다.
그럼에도 더 큰 능력을 행사하는 것은 기록하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더 번창하는 것은 기원하는 데에 있다.

인간의 정복을 피해가는 자연의 방법이 대재앙이다.
홍수가 되어,
태풍이 되어,
지진이 되어,
화산이 되어,
인간에 의한 자연의 파괴를 경고하는 것이다.
파괴되어 버린 자연을 원상으로 바꾸려 하는 것이다.

선행을 많이 베푼 사람이 아주 운좋은 날이면,
백록(흰 노루)을 만날 수 있는 산이 기룡산이다.
전설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다.
묘각사에서 차가운 물한모금으로 시작하는 걸음이 가볍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능선을 향하는 몸짓이 설레인다.

수십리 길의 산을 넘어야만 했다.
그렇게 절에 올 수 있었던 그 옛날이 떠오른다.
마음이 단순하여 소망도 더 명료하게 이루었을 것이다.
걸음이 더 건강하여 정신이 더 고결하였을 것이다.
삶의 지향이 더 소박하여 이웃으로부터 행복을 만들었을 것이다.
단숨에 나아간 0.8키로의 겨울산길을 걸어 산능성이에 당도한다.

양면의 바람을 동시에 맞으며 통쾌한 정한에 젖는다.
소통이 있어 날씨가 차다.
하얗게 쌓인 잔설이 띠를 만들어 길게 선을 긋고 있다.
이편의 걸어가야 할 길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저편의 바라보기만 하는 길도 그렇게 일목요연게 드러내고 있다.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이 기운을 준다.
양면을 볼 수가 있어 눈에 기운을 얻고,
소통하는 공기로 호흡할 수가 있어 코가 뚫린다.
목적지가 가까이에 있서 마음이 가볍다.
몸에 담은 욕심을 벗어던질 수 있어 걸음이 경쾌하다.

산 공기는 한없이 맑은데,
산의 능력으로 치유할 수 없는 도시의 공기들이다.
그로 인해 도무지 멀리까지 조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정상에 서면,
안타까움은 멀고
공명처럼 세상을 다 삼키는 마음은 넓다.

기룡산의 정상에 우뚝선다.
정상석에 적힌 해발 931.8 미터를 읽는다.
윙 소리는 내는 차가운 바람도,
응달을 타고 오르는 혹한의 공기도 개의치 않는다.
그 어딘가에 남아있을 전설의 흔적을 찾아 본다.
그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날 백록을 기다린다.
백록의 위엄이라면 분열과 파탄의 시대를 접고,
공존과 공영의 시대가 도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564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