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09-10-21 20:37:45
기사수정
▲ 연세대학교 직업평론가
40년 전의 일이다. 1970년대 중반에 많은 제주 해녀들이 원정을 떠난다. 새로운 일터로.
남해안의 섬들에 제주해녀들이 진출한 것이다.

이들 섬마을에서는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하여 수산물을 채취하게 한다.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운 좋은 남해안의 섬마을 총각은 제주 해녀들과 눈이 맞아서 결혼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제주도 해녀들인 이 시기를 자기들의 직업 전성시대로 회상(回想) 하기도 한다.
1931년에 제주 해녀들은 일만 6천여 명이 일한다.

이들은 일제시대라는 분위기 속에서도 나름의 물질을 해서 벌이를 이어 간다. 이듬해인1932년에는 해녀들이 항일운동을 한다. 문헌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제주에서의 해녀는 오랜 직업이었다. 그들이 물질을 하는 것을 가업으로 승계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지금 2009년 가을에 해녀는 약 5천여명이 제주에 있다. 다른 섬들로 원정간 해녀들도 거의 제주도로 귀향 한다. 물론 더러는 그 섬에서 가정을 이루고 산다.

제주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3천여 개의 섬을 지닌 한반도의 수산 자원은 무궁하다. 이런 여건에서 바다 것을 해서 먹고 사는 해녀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여성들의 일자리 파생이 어려운 지금.

해녀스쿨을 제주도에 세우는 것은. 해양 수산 정책을 하는 정부 기관이 검토할 할 만한 일이다. 수산 자원인 전복, 해삼, 미역 등을 채취 하는 직업인으로서 해녀. 이전에 그들은 한달에 18일은 일한다. 바다 물때를 봐서 바다에서 작업을해야 하고 휴식을 일정하게 가져야 하는 직업이다.

이들은 수산물 채취로 자녀들은 상급학교에 유학 보내기도 한다. 지금은 하지만 40대 이하의 해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를 전승하고 발전 시켜야한다. 해녀라는 직업인이 채취하는 수산물의 가치도 만만 한 것은 아니다.

해녀 스쿨에는 전직 해녀들을 교사로 활용하자.

제주만이 아닌 3천여 개의 섬에서 처녀들이 지원하게 하자. 육지에서도 수영을 즐기는 이들을 학생으로 받아들여서 해녀 질하는 것을 학습하게 하자. 전문 직업인으로서, 전통을 지닌 직업인으로서 이들의 고용을 하는 전문 수산 자원 회사의 창업을 정책 당국이 돕는 역동적인 정책 접근은 요원한 일인가?

바닷물질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던 섬마을 해녀들이 일하는 모습이 그립다.(nnguk@yonsei.ac.kr)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5006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