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와 생각들
- 꼴찌 學力으로 노벨 과학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정말 緣木求魚다

▲ 이태준 프런티어타임스 편집국장
월드컵경기나 올림픽이 개최되면 신문과 방송은 개최 몇달 전 부터 이번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16강에 들어갈지 8강까지 오를지 또는 금메달을 몇개나 따서 세계 몇위가 될지에 관심이 높아지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명예로운 경기이자 知的 경기라 할 수 있는 노벨상 시상식이 다가오면 이런 열기는 찾을 수 없고 조용해지고 만다.
보나마나니까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겠지.
허기야 서울 저 모퉁이 어디에선가에는 해마다 이번에는 문학상을 혹시 받지 않을까해서 어느 늙은 詩人의 집앞에는 수상발표 순간의 감격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죽치고 있다는 소리는 듣고 있지만 나도 여태 그 사람의 詩를 읽어본 적이 없는데 무슨 詩로 노벨상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꿈도 야무지다.
일본이나 중국과 스포츠경기때는 절대로 질 수 없다는 대단한 애국심을 발휘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노벨상 경쟁에서는 아예 기대를 하지 않으니 언제쯤이면 우리도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노벨상 경쟁을 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일본은 과학분야에서만 벌써 13명의 수상자가 나왔으나 중국은 아직까지 수상자가 없다. 다만 中國系 수상자는 몇 몇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美國 국적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 자세한 건 모르겠다.(공산국가에서는 학문연구업적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상 시상은 상금도 대단하지만 상금보다는 그 명예가 대단해서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그 수상자의 祖國에도 큰 영광을 부여한다.
올림픽 메달순위에서 세계 7위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지만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은 언제쯤일지 기약할 수가 없다. 좀 창피한 일이다.
설령 수상자가 나온다하더라도 韓國국적이 아니고 美國시민권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의 기초과학분야가 그만큼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와 열정을 갖고 스스로 발견한 의문에 대해 헌신적으로 연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만이 이런 영광의 賞을 받는 것이지 賞을 받기 위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교육이 과연 이런 과학자를 양성하고 호기심 많은 학생을 육성하는 분위기가 되나 생각하면 참 우울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암기를 강요하는 우리 교육풍토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 위에서 잉어를 잡겠다고 그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학도 암기를 시키는 나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60년대 공부를 했던 우리는 수학의 定理를 증명하는데 골머리를 앓았는데 요즘은 공식이나 定理를 증명하는 교육은 아예 없고 그냥 외운다더만...이래서야 어떻게 기초가 된 수학교육이 될 수 있나
노벨상 역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퀴리夫人일 것이다.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흡잡을 곳이라는 전혀 없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남편 퀴리와 공동으로 화학상을 받고 다음에 혼자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그 딸이 다시 노벨상을 받았으니 수퍼우먼이라고 할까. 그래서 퀴리夫人을 칭송하는 말중엔 "神의 실수로 세상에 잘못 나온 인간"이라는 말도 있다.
109년 역사와 그 권위와 명예를 자랑하는 노벨상이지만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잡음이 없을 수 없고 뒷말이 없을 수는 없다.
특히 평화상과 문학상에서 그러한데 이번 오바마의 평화상 수상이 더욱 시끄러워 미국내에서조차 빈정대는 소리가 높고 평화상이 아니라 소란상이 아니냐는 비꼬는 소리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는데 백악관 관리조차 오바마의 평화상 수상소식에 "오늘이 만우절이냐?"고 했다니 일반인들이 수긍하기 힘든 건 사실인 것 같다.
하도 시끄러우니까 노벨위원회가 나서서 이런 빈정거림에 대해 반박을 할 정도니.....
大文豪 톨스토이가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이나 인도의 간디가 평화상을 받지 못한 것은 다분이 정치적 이해관계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렇다면 노벨상이 얼마나 공정한가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분명이 있다.
1906년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평화상을 받은 것도 코메디에 가까운데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平和'와는 거리가 먼 다분히 호전적이고 '힘의 우위'를 신봉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사람에게 평화상을 준 노벨위원회는 정말 뭘 모르고 그랬는지 아니면 어떤 정치적 계산을 하고 주었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명분이 러.일 전쟁을 중재한 공로라고 하는데 이 전쟁을 부추킨 사람이 바로 시어도어 루즈벨트였고 일본의 조선합병을 묵인해 준 사람도 이 시어도어 루즈벨트였었다.
베트남 종전협정에 서명한 공으로 미국의 키신저와 월맹의 레 뚝토에게 평화상을 준 것도 코메디였기는 마찬가지....두 사람은 베트남 전쟁을 확대한 공신들이었는데... 키신저는 받았지만 레 뚝토는 수상을 거부했었다. 아직 평화는 오지 않았다는게 거부 이유였는데 실상은 평화를 거부한 것이었다.
이번 오바마에게 평화상을 준 것은 이번 심사위원 5명중 3명이 左派이기 때문이라고 미국 정치 전문지 폴티티코가 논평하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오바마에게 평화상을 준 것은 사실 너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천마감이 2월1일이라는데 그렇다면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연설하고 보름만에 평화상 후보로 추천을 방아 심사대상이 되었다는 말 아닌가? 도대체 뭘 보고 추천하고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의 미국에서도 시끄럽고 상을 준 노르웨이에서도 시끄럽다니 어쨌거나 노벨상의 권위가 심히 훼손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권위있는 상이지만 1973년의 레 뚝토 말고도 상을 거부한 사람이 있다.
1964년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사르뜨르는 "내가 그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는데 사르트르가 노벨상을 거부한 이유는 자신과 앙숙이었던 까뮈가 1957년에 먼저 받았기 때문이다. 까뮈보다 7년 늦게 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사르뜨르는 자존심이 엄청 상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고르바초프는 냉전종식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로 평화상을 받았는데 냉전종식의 콤비였던 레이건은 받지 못했다. 사실 냉전종식은 고르바초프보다 레이건이 주도적으로 이룩한 것인데....
2002년 지미 카터가 평화상을 받은 것도 左派성향이 강한 북유럽 인사들이 右派인 부시를 견제하고 비판할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노벨평화상 위원들이 대체로 左派성향이 강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이에 대해 노르웨이 심사위원회는 1906년 시어도르 루즈벨트에게도 준 사실을 끄집어내어 반박하지만 그건 100년전의 일이고 2차대전 이후에는 대체로 左派的 인사에게 많이 수여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에게는 어쩐지 까마득한 일인 것 같아 답답하지만 우리도 대대적인 교육개혁과 기초과학육성책을 마련해 노벨상 수상자 경쟁에서 올림픽 메달 성적만큼 좋은 결실을 맺는 날을 보고 싶지만 현재 교육문제에 머리 싸메고 걱정하고 고심하는 정치인이나 유력인사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다.
당장 하기 쉬운 것으로 고교평준화를 없에고 대학입시문제는 대학마다 특성에 맞게 출제하는 동시에 고교과정에서 교과과목을 대폭 줄여 교육수준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대학강의는 영어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24시간 영어TV 방송사를 설립하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세계에서 꼴찌를 다투는 學力으로 노벨 과학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정말 緣木求魚다.
올림픽 금메달 숫자나 월드컵 경기성적에 쏟는 관심과 정열의 절반이라도 교육문제에 쏟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태준 프런티어타임스 편집국장 frontier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