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나는 정치색 없다…웃기는 데는 좌우도 없다”
- 등록자 :경향닷컴, 이성희기자, 등록일시 : 2009.10.10 (20:05)
그가 마이크를 잡으면 시선이 집중된다. 자분자분한 목소리와 논리정연한 말솜씨,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에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차분하게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열고 진심을 담은 이야기에 마음을 연다. 방송인 김제동씨의 강의는 언제나 그렇게 북적거린다.
지난 8일 서울 노원구 북부고용지원센터는 250여명의 시민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정책연구소 격인 마들연구소의 ‘명사 초청 특강’으로, 김제동씨가 14번째 강사로 강단에 섰다. 앞서 이금희 아나운서, 소설가 조세희,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도 강연을 했다.
이날 주제는 ‘사람이 사람에게’. 김제동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방법과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이라며 자신의 웃음철학과 웃음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마이크를 켜고 끄는 법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이미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할 수 없으면 속상한 시대가 왔다”며 마이크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 수 있는 이 시대의 갈대밭”이라고 표현했다. “과거 일부 권력이나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마이크가 이제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며 그런 만큼 마이크를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강의는 재미와 메시지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들었다. 특유의 입담으로 사람들을 배꼽 잡게 하며 중간 중간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다 또 분위기가 무거워질 만하면 허를 찌르는 유머를 던졌다.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좌석이 부족해 깔개를 깔고 앉은 시민들 사이에서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웃음철학에 대해 “웃음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증거”라며 “사람을 웃기는 기술은 없다. 진심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또 노회찬 대표를 유머 소스로 활용하며 “웃음 속에는 혁명적인 요소들이 있다. 기존의 틀을 깨지 않으면 사람들을 웃길 수 없다”면서 “이 유머를 잘 하는 사람들이 바로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느냐’는 질문에 어른들은 ‘물’이라고 답하지만 어린이들은 ‘봄이 된다’ ‘개구리가 된다’고 답한다는 것.
이야기는 영어열풍으로 이어졌다. 그는 “웃음이 없는 사회는 반드시 병들고 무너지게 돼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웃을 수 있어야 한다”며 “‘오렌지, 어륀지’가 아니라 모국어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짧은 영어로도 미국인과 이라크 전쟁에 대해 토론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내 나라, 내 땅에서 영어를 잘 하는 게 자랑이 될 수는 있지만 수치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향닷컴 이성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