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09-10-10 17:16:27
기사수정
빗장을 연다.
깜깜한 어둠을 밀친 서광처럼 설악이 솟았다.
빛 한 줄기에 전설이 시작된다.
설악이 까마득한 서광의 발원처럼 아롱진다.
얇은 비단에서 톡톡 튕겨 홍엽의 단풍이다.
산비탈의 단풍이 화가 고호의 노란물감같다.
노을의 붉은 타오름이 설악을 닮았는가 보다.
대평원에 뿌려져 꽃피운 해바리기를 닮았는가 보다.

실어증이 도진다.
설악의 비경에 할 말을 잃고서,
어깨동무 걸음으로 다가가는 설악의 품이다.
바위는 바위와 어깨동무하고,
단풍나무는 단풍나무와 어깨동무하고,
낮은 곳의 계곡은 높은 곳의 봉우리와 어깨동무하고,
나는 통하는 벗이 있어 마음의 어깨동무를 한다.

무엇에 그리도 화가 난 것인지,
성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바위이다.
행여 하품이라도 하면 그 아름다움이 다 도망갈까 조심하는가 보다.
그 고운 단풍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바위이다.
바위가 단풍을 만나 요원처럼 타오르고 있다.

긴 행렬의 군상들이다.
신기루가 있기에 길을 멈추지 않는다.
마치 신기루 찾는 방랑처럼,
앞서거니 뒷서거니 장도였다.
백담사에서 오세암,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에 이른다.
가난을 떨치는 경제부흥을 위한 일념의 쉴틈없는 돌진처럼,
뒤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대청에서 오색으로 하산한다.
하루만에 이루어진 대단원이다.

행여 말이라도 한다면,
아무리 꼭 쥐어도 손아귀를 다 빠져나가 버리는 맑은 물처럼,
그 아름다움이 다 빠져나가 버릴 것 같아 차마 마음에만 절경의 운치를 담는다.
들키지 않으니 누가 훔쳐가지도 못할 것이다.

먼 추상의 그림을 그린다.
경험하지 않았으니 그저 아마득한 것이다.
몸을 의탁하여 발걸음을 내디딘 계곡이다.
용솟음의 동선을 따라 오르는 산능성이다.
몸을 담구었으니 그 어느 하나라도 아름다움에 소용되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그게 설악에서 피어오르는 산의 본성인가 보다.

고향의 호롱불처럼
그리움으로 애틋하게 타오르는 설악의 단풍이다.
지고 마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다음을 기다리기엔 너무나 긴 것이다.

가파른 바위언덕이다.
설사 인간의 능력으로는 오를 수 없다 하더라도
찾아도 찾아도 출구가 없는 듯 아무리 깊은 계곡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더라도
설악이라면 참아내는 것이 그리도 쉬운 것이다.
인간의 경계에서 멀어질수록
산의 깊이로 더 다가갈수록
만질 듯 가까이에 만나는 설악이다.

설악의 풍경은 파노라마가 되고,
어딘가의 보물창고에 꼭 숨겨놓은 보석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아름다움은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대체된다.
설악의 단풍은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서로를 부둥켜 겹겹으로 중첩된 아름다움이다.

몸의 곤함이 떨쳐지면
마음에 담은 절경은 더 선명하여 진다.
그 어디라도 산이 있다면,
아침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그런 산들의 자태를 바라다보면 설악이 절로 떠오른다.
그 언제라도 온몸의 전율처럼 설악의 기운에 감전되고 싶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487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