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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10-04 09: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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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청문회장에서 "眞實을 밝혀야한다."며 의원나으리들이 목청을 높이던 장면을 심심찮게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진실을 밝힌다는 청문회를 통해서 청문회스타도 나오고 또 그중에 한 사람이었던 盧씨는 일약 중량급정치인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는 과정을 우리는 봐 왔었다.

眞實이라는 말은 참 좋다.
사람들은 항상 진실하게 살아야한다고 말하고 오른손 들고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도 하지만 정말 우리는 진실과 허위속에서 얼마나 제대로 바르게 인식하고 살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도 많다.

또 우리는 정말 진실만을 말하며 살고 있는 것이며 진실을 감추고 거짓인 줄 알면서 거짓을 사실로 믿어라고 강요했던 적은 없었던가 이따끔씩 自問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에서 불행하게도 아내가 품행이 좋지 않아 이혼했을 경우, 어린 자식에게 사실대로 어머니의 방탕한 생활을 자식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는 일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하거나 멀리 외국에 나갔다고 거짓말을 해야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자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善意의 거짓말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범위를 확대해 보면 국가차원에서 국민을 상대로 善意의 거짓말을 해야할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잘 몰라서 적당히 -그럴 듯하게 그러나 惡意는 없이- 설명해주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사실대로 말하기가 너무 창피해서 적당히 쪽팔리지 않게 사건을 창작해서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다.

무능한 권력자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이르면 이렇게 쪽팔리지 않게 적당히 창작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역사기술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부분은 잘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에 의거해 적당히 꿰어맞혔을 것으로 보이고 또 어떤 부분은 사실대로 밝히기가 창피해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상- 선의의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멀리도 아니고 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서 있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원인은 덮어두고 결과만 강조하고 있는 이 사건은 언젠가 역사학자들이 반드시 사실에 의거해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7년전의 사건도 이렇게 집권층의 입맛따라 왜곡하는데 기록도 별로 없었던 조선시대의 사건을 지금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1866년부터 이땅에서 시작됐던 서양인들과의 충돌, 즉 오페르트도굴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 제너럴 셔먼호사건, 거문도사건과 을미왜변, 한일합방, 해방, 남북분단, 6.25동란, 광주사태 그리고 6.15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이 이 역사적 사건에서 얼마나 사실을 제대로 바르게 알고 있을지 의문이 들 때가 너무 많다.

교통사고에서 목격자의 진술에 의해 가해자 피해자가 가려지듯 역사에서도 그런 목격자가  있다면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겠지만 - 이 경우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아쉽게도 우리가 세계무대의 중앙에서 너무 멀어져 있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제 3자가 없다.

해방이후 우리 손으로 역사교과서를 만들 때 당시의 우리 학자들은 일제의 교육을 받았던 학자들로서 그들 역시 교육 받은대로 기술하다보니 우리는 선량한 피해자였고 서양세력은 침략세력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1853년 페리제독이 4척의 黑船을 이끌고 강제로 일본의 門戶를 개방시켰던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랬을 것이라는 추론위에서 그 두 사건도 문호개방과 통상 압력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假說이 定說이 되고 定說이 眞實로 자리 잡게 된 황당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소설이라는 말이다.페리제독은 미국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일본의 문호를 개방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본으로 갔지만 신미양요때 강화도에 4척의 군함을 이끌고 왔던 로저스제독은 美정부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온 것은 아니었다.

이들 선단의 임무는 탐사와 海圖제작이었던 점으로 봐서 "漢江을 탐사하고자 하니 進入을 허락해달라고."고 조선정부에 요청했다는 미국 측의 기록은 사실로 보인다.

(W.E. Griffis 著, '隱者의 나라 韓國')물론 서양오랑캐의 침략공포에 휩싸여있던 조선정부가 이를 허가해 줄 리는 만무했겠지만 이때 조선정부가 분명한 태도로 "No!"했다면 로저스제독은 그대로 물러났으리라고 본다. 왜냐면 당시로저스제독은 美정부로부터 조선정부와 관련해 어떤 구체적 임무를 부여받거나 지시를 받고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라는 강화군수의 말에 따라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무런 회신이 없자 이들은 한강으로 들어가려 했고 이때 조선군이 발포함으로써 일어난 우발적 충돌이 신미양요였다.

신미양요는 양쪽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와중에 일어난 우발적 충돌이었지 무슨 문호개방이니 통상압력이니 하는 이유로 계획적으로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고 병인양요 역시 대체로 추론은 가능하나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는 미스테리 사건이었다.신뢰할 만한 근거나 자료가 없어 설명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대로 그대로 두는 것이 옳다.

억지로 꿰어 맞춰 소설같은 역사를 만들지 있지만.제너럴셔먼호 사건은 미국해운회사의 간부들과 선원들이 일으킨 도굴미수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오페르트도굴미수사건"은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정확하게 대원군의 아버지 南延君의 묘를 단숨에 찾아갔다는 점에서 이들 오페르트일당을 사주하고 정보를 제공했던 배후인물이  조선내부에 있었음도 명백하다.

이들 배후세력이 누구였는지는 당시 천주교탄압으로 수많은 지식인계급이 처형당하던 시절이었음을 참고하면 추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왕릉도 아닌데 하필이면 왜 南延君묘를 찾아갔을까? 최근 남북분단의 원흉이 미국이라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를 하며 맥아더장군을 학살자로 매도하는 위수김동족들의 발호가 있었다.

이들의 난동을 가만히 지켜보면 우리 역사기술의 의도적 맹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근현대사를 조작해 국민들을 세뇌 할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우리의 근현대사를 사실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부작용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다.

우리 민족의식속에 짙게 깔려있는 弱者로서의 피해의식을 최대한 자극하고 증폭해서 强者에 대한 적대감을 최대한 확산해 그속에 우리의 무능과 숱한 용렬함을 용해하고 희석해 덮을려고 한다."우리는 항상 선량한 피해자고 서양놈들은 항상 나쁜 침략자다.

그중에서도 미국놈이 제일 나쁜놈이다. 왜냐하면 제일 힘이 세니까.

"우리 역사에서는 남북분단의 원인에 대해선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학자들이 분단원인에 대한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으나 지금은 미국이나 러시아 측에서 공개한 외교자료에 의해 이제는 모든 사실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음에도 아직도 분단원인에 대해 엉뚱한 "카더라"類의 억지나 추측성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해방당시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분할하게 된 과정을 간단히 기술하기에는 무리라, 결론만 말한다면 남북분단의 원인제공자는 한반도영토에 욕심을 품고 있었던 소련이고, 미국은 고육지책으로 소련에 분단을 제의하게 된 것인데 친북인사들은 미국이 소련에 분단을 제의한 사실만 끄집어내어 분단의 원흉으로 미국을 매도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억지다.일본이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일본이 지배하던 조선은 당연히 미국이 접수하게 되어있었는데 소련이 일본의 항복직후 한반도를 전격적으로 기습 점령할려는 의도를 정보수집차원에서 포착한 美펜타곤에서 결국 소련에 半만 접수하라고 제의했고 이를 스탈린이 수락해서 분단이 성립된 것이었다.

당시 스탈린은 소련의 기갑사단을 그대로 조선반도를 향해 남진케할 의도였으나 일본에서 터진 미국의 원자폭탄 위력에 놀라 결정을 못내리고 주춤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의 상황에선 소련이 기갑사단을 앞세워 한반도점령을 시도했다면 미국은 그냥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승전무드에 취해 있는 미국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멀리 있는 코리아라는 작은 나라를 위해 소련의 막강한 기갑사단을 상대로 다시 전쟁을 벌일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한반도분단은 일본이 항복하던 그날에도 전혀 시나리오에 없던, 全的으로 한반도영토에 욕심을 품고 있던 소련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지 미국 때문이 아니었다.

위수김동족이 가슴을 치는 속사정은 그때 소련이 그대로 밀고 내려오지 않았던데 대한 아쉬움과 그 뒤의 6.25전쟁에서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적화통일되어 있을텐데 하는 원통함 때문이다.

그놈들은 미국이 이승만정부를 사주해서 북침을 했다고 수십년동안 우겨오다가 소련 붕괴후 러시아가  6.25관련 자료를 공개하자 그 다음부터는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어떤 미친 대통령은 6.25는 실패한 통일전쟁이라고 북한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기도 했었고......

슨상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는 어느 지역사람처럼 위수김동족 역시 김일성의 말씀이라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어주고 물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고 해도 믿는다.이런 인간들에게 우리의 목숨을 맡기고 "우리 민족끼리"구호아래 같이 살 생각은 전혀 없다.

민족 아니라 형제라도 사람 같지도 않는 종자들과 같이 살 생각은 전혀 없다.누구를 위해서 적화통일하자는 것인가?계급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자면서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내는 골수빨갱이들을 위해서?

이들이야말로 북한주민을 노예로 부려먹으며 제놈들만 호의호식하는 게으른 돼지계급들 아닌가?지금이라도 왜곡되고 감춰진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르게 정리해서 사실대로 가르쳐야한다.

그것이 무책임한 침묵과 의도적 왜곡이 틈입할 여지를 없엠으로써 적화세력들의 역사조작과 우리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국민을 상대로 한 교묘한 세뇌작업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프런티어타임스 이태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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