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간 산송(山訟) 문제 해결
- 청송 심씨가와 파평 윤씨 사이에 벌어진 산송,청송 심씨 양보로
청송 심씨 가와 파평 윤씨가 간의 묘를 두고 2백50년동안 양문중간의 산송이[묘를두고싸움]이 청송 심씨 문중의 양보로 해결됐다.
지난 24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에서 의정부 영의정 만사[睌沙] 심 지원[沈之源] 천장[櫏葬]과 더불어 고유제 [告由祭]가 청송 심씨 대종회 회장과 인수 부윤공 심 정구회장 심 찬구 부회장등 종인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였다.
이 자리에서 청송 심씨 대종회 고 심 명구회장은 양문중의 오랜 다툼이 조상을 바로 섬기려는 올곧은 신념에 의한 것이라 하드라도 후대에 이르기까지 첨예한 대립으로 나갈 것을 우려하여 이를 당대에 그치고자 화해 결정을 위해 양 대종회의 회장이 천장 사업에 따른 합의서를 체결하고 경기도 문화제 위원회와 중앙문화제 위원회로부터 의정부 영의정 만사 심 지원 묘의 천장 계획 승인을 얻어 냈다.
만사 심 지원 영의정 묘의 신도비는 경기도 기념물 제137호로 묘비에는 1593-1620년 조선중기 문신으로 칭송받은 인물이라고 쓰여저있다 .1593-1662년 조선조 중기인 인조[仁祖] 효종[孝宗] 현종[顯慫] 3대에 걸처 40년간 삼공[三公]높은 지위에 오르고 특히 효종과 현종의 지우[知遇]로 지근거리에서 임금을 보좌하며 당대의 조정 공론을 주도했던 정계의 원로 거목의 한분이였다
만사공 심 지원 영의정이 돌아 가신해가 1662년으로 올해로 346년이 되는것이다 .파평 윤문은 고려조의 문숙 공 윤관 장군의 실전된 묘를 찿는 다며 만사공 심 지원 묘 아래를 파 패치기에 이르렸고 차마 믿기 어려운 봉분을 범하는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
파평 윤문의 윤관 장군과 청송 심문간의 산송 싸움은 1763년 영조 39년이므로 올해로 245년이 된다. 파평 윤문과의 산송이 계속되자 영조 임금은 영의정 심 지원과 윤관 장군은 나라를 위해 허신한 분들로 두 집안 간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도록 교지를 내리기도 했다.
고 심명구 청송 심씨 대종회 회장은 맹자[孟子]말씀을 인용해서 안될 일을 하지 아니하고 구[求] 하고자 해서 안될 것은 구 하지 아니 한다 를 바로 새겨 저들의 잘못을 꾸짖어 내치돼 마땅이 매양[每樣] 신중해 아무리 윤문의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한들 담장에 가로 막힌 영의정의 영역을 경원하고 어찌 누대의 선조의 인의와 덕행를 후손에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말하고 2005년 양 문중의 회장들의 합의하에 영의정 심 지원 묘소를 천장하게 됐다.
만사 심 지원 영의정은 한때 인조 반정 당시 저도[楮島]에 낙향한 당대의 명유 [名 儒]였다 반정후 조정의 부름을 받고 이활 의 난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을 잘 수습 하는 정치력을 발휘해 벼슬길에 오른 지 40년만인 1658년 효종 10년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의정에 올라 가문의 숙망[宿望]을 성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