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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08-18 11: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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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봉기 칼럼니스트
김형오 국회의장은 국회 원(院) 구성을 놓고 밤잠을 설치는 듯하다. 원구성 시한을 15일로 했다가 다시 18일, 오늘 정오까지로 연기했다. 오전 10시에는 국회법개정 특위 전체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개정안의 내용은 상임위원회 명칭 변경과 위원정수 조정이다.

김 의장은 합의가 안되면 직권상정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최초의 국회소집을 직권상정 등원으로 하는 것은 안된다. 그것은 거대 여당 출신 국회의장의 정치적 조정 능력의 부족을 의미하게 된다.

또 김 의장의 직권상정 등원결정은 18대 국회의 상징이 된다. 지금 와서 직권상정 국회 소집을 하겠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하는 게 더 나았다. 국회 출범후 80일을 무의미하게 보낸 데 대한 국민의 비난은 소수파인 야당보다는 절대다수 의석을 점한 한나라당과 김 의장이 송두리째 덮어쓸 가능성이 많다.

이 기회에 「직권상정」에 대하여 한 마디 하자.
이번 등원 건이야 원구성 합의라는 일말의 명분이 없지는 않지만, 등원국회부터 직권상정을 한다면 김 의장에게는 직권상정이라는 단어가 꼬리표가 된다. 이제 김 의장은 매 법안마다 여야 합의가 안되면 직권상정을 할 것인가?

직권상정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직권상정으로 발효된, 국민적 합의 없는 법률안의 하자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은 경우가 많다.

비록 입법절차상 허용되는 것이어서 명백히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법률제정절차가 아닌, 약식절차인 이른바 직권상정에 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은 그 정당성에 있어 의문이 있다.

더군다나 정치적 갈등 구도 속에서, 학계 및 사회의 각 영역에서 법률안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임에도, 소관 상임위를 파행적으로 거친 후 법사위 심의를 생략한 채 본회의 표결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경우에는, 비록 국회법상 위헌․위법에 해당할 정도의 입법절차상의 하자는 없다 하더라도, 그 내용적 위헌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당해 법률안 자체의 내용의 형성이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국민 총의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 있지만 대의제원리에 따라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입법과정이 이러했다면, 적어도 당해 법률은 “입법재량권 행사의 남용”에 기한 것으로 심각한 내용적 하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헌법적 및 입법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법률의 내용에 있어 위헌성이 큰 규정들이 다소 존재할 수가 있으며, 그 위헌적 규정이 당해 법률의 핵심사항(Kernbereich) 내지 본질적 내용(Wesensgehalt)을 구성하는 때에는 당해 법률 자체가 위헌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과거 토초세법이 그랬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심리중인 주민소환법도 바로 이러한 사례의 하나에 해당할 수 있다.

이번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른 「주민소환법」의 제정과정을 한번 보자.
주민소환법의 국회 제정과정을 보면, 한 마디로 졸속입법에 의한 준(準)날치기 법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이미 3개의 주민소환법안이 2004. 7. 23(지병문의원 대표발의), 2005. 11. 17(강창일의원 대표발의), 2006. 3. 30(이영순의원 대표발의)에 각 제출되어 있었는바, 2006. 4. 18.에야 소관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되었고, 법사위 심위를 거치지 않은 채로 소관상임위에 계류되어 있다가 2006. 5. 2. 당일 급조된 대안법률로써 법사위의 심의도 없이(심사미료) 본회의에 회부, 원안 가결되었다.

회의장에서의 소란 사태를 보면 본회의 역시 쉽게 통과된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한 마디로 주민투표법은 당시 “상임위 및 소위 법안 내용 심의 부실 → 직권상정에 의한 입법절차의 부실 → 일사천리로 진행된 본회의 절차 부실”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주민소환법의 부실한 본회의 통과는 곧 동법의 내용의 부실과 같은 의미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제259회 국회 임시회(2006. 5. 2)는 당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개정안(도정법)․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관한법률안 통과에 혈안이 되어 있던 시점이었고, 당일 함께 통과된 것은 주민소환법 외에 동북아역사재단법․임대주택법 등 7개 법안이었다.

당일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원기 국회의장은 16개 직권상정 요청법안 중 4개 법안(도정법․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임대주택법․동북아역사재단법)만 통과시키려고 했고, 주민소환법안․국제조세조정법안․로스쿨법안 등 12개 법안은 추후 타협을 통한 처리를 주문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사회권을 위임받은 김덕규 부의장이 주민소환법안․국제조세조정법안․지방자치법안을 추가로 포함시키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입법과정을 지켜볼 때, 과연 주민소환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국회 내부의 입법과정 즉, 소관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 및 법사위원회 등에서의 상세한 심사 등 법적으로 요구되는 각종 심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지극히 의문스럽다.

이는 곧 현행의 주민소환법이 우리 현실에 부합하는 완전한 법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와 같은 파행적 주민소환법 제정 과정으로 인해 동법은 학계․언론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고 현재도 받고 있다. 또한 동법 제정 직후부터 의원발의 개정안이 줄을 이은 바 있다.

이유는 곧 주요 핵심 소환제 내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었고 입법절차도 정상적 방법이 아닌 긴급 직권상정 절차를 밟아 충분한 심의 기회도 갖지 못하는 등 법률 그 자체로서 절차적 하자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통과된 법률 그 자체의 내용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가 많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곧 주민소환법이 그 탄생 단계에서부터 심각한 하자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직권상정을 통한 입법은 그 제정 단계에서부터 심각한 의견수렴의 부실 및 입법절차상 하자를 안게 되고, 비록 형식상으로는 위법이 아닐지라도 우리 현실 사회에의 적합 여부에 대한 충분한 심의절차를 생략하고 이루어진 것으로서 내용적으로 상당히 많은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회의장에게 주어진 예외적인 특별입법절차인 직권상정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권한은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갖는 행위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 의장은 극히 신중히 직권상정권을 행사해 주기 바란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국회 원구성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치적 입장에서 직권상정의 유혹을 받겠지만, 제18대국회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등원 국회로 역사적에 기록될 것이다. 직권상정에 의한 법률은 충분한 심의가 부족하여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직권상정은 극도로 자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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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일 뮌스터(Muenster)대학교 법과대학(법학박사), (현)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현)한국지방자치법학회/한국토지공법학회/한국비교공법학회 부회장, (전)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보,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한국공법학회 연구이사, 사법시험(2005, 2007) 및 행정고시(2003, 2001) 2차시험위원,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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