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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8-19 0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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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기자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 "고(故) 김대중씨는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 정권에 맨주먹으로 맞섰던 사람이다.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납치·투옥되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연금도 당했다."며 "그러나 고(故) 김대중씨는 그런 불굴의 용기를 稀代(희대)의 학살자 김정일 앞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고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밝혔다.

조갑제 기자는 또 "오늘 他界(타계)한 김대중(金大中) 전(前)대통령(만 86)은 파란만장한 生涯(생애)를 살았다."며 "그의 생애는 4기(期)로 나눌 수 있다. 1. 좌익활동가 시절(해방 직후) 2. 야당정치인 3. 대통령 4. 전직 대통령."이라고 적었다.

조 기자는 이어 "그의 생애는 2000년 6·15선언 전후(前後)로 크게 나뉘어진다."며 "6·15선언 이전의 故 김대중씨는 민주투사로 불렸다.

6·15선언 이후의 김대중씨는 지지자에 의하여서는 평화의 使徒(사도), 반대자에 의하여서는 반(反)헌법·반(反)국가적 행위자로 불리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조 기자는 이 글에서 "그의 생애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6·15선언이 될 것이다."며 다음의 7가지 질문을 던졌다.

1. 6·15선언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는가, 아니면 핵폭탄을 가져왔는가.
2. 6·15선언이 한민족의 통합을 가져왔는가, 분열을 가져왔는가.
3. 6·15선언이 자유민주 체제를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4. 6·15선언이 韓美(한미)동맹을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5. 6·15선언이 북한 동포·국군포로의 인권을 향상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6. 6·15선언이 헌법의 敵(적)을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7. 6·15선언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증진시켰는가, 후퇴시켰는가.

조 기자는 그러면서 "이상 일곱 개의 평가기준을 적용하면 故 김대중씨의 역사적 位相(위상)이 대충 설정될 것이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더불어 "故 김대중씨는 李承晩(이승만)과 함께 大衆(대중)을 권력의 기초로 보았던 대중정치인이다."며 "이승만은 대중을 계몽·교육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김대중씨는 계몽보다는 선동적 설득을 더 앞세웠다는 비판이 강하다."고 썼다.

그는 "오늘 내가 만난 한 전직 미국고관은 국제사회에서 김대중 씨의 영향력을 능가할 사람은 이승만·박정희뿐일 것이라 평했다."고도 전했다.

한편, 조 기자는 "그는 박정희에 의한 유신선포 직후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북한 정권의 조종을 받는 在日(재일)인사들과 손잡고 反(반)국가단체인 韓民統(한민통)을 만들었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프런티어타임스 윤종희 기자>


[덧붙이는 글]
조갑제 전 조선일보 '월간조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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