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자와 개성공단 근로자
- 개성공단 돕는것 만큼 서울역 노숙자 돕는 일도 중요하다

▲ 프런티어타임스 이태준 논설실장
내가 사는 분당에서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까지 가는 길은 수도권에서 출퇴근하기가 제일 고약한 코스다.
출근때는 좌석뻐스를 타고 1시간 40분 정도 걸려 출근하지만 퇴근때는 서울역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분당으로 가는 좌석뻐스를 타고 가야되는데 이러면 꼬박 두시간이 걸린다.
누군가 나의 출퇴근 코스를 듣고는 '의지의 한국인'이라며 놀리기도 하던데 하여튼 고약하기 짝이 없는 코스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내려 뻐스를 갈아타기 위해 남대문방향으로 걸어가다보면 노숙자들을 많이 보게되는데 겨울 내내 안 보이던 참새가 봄이 오면 여기저기서 나타나듯이 날이 따뜻해지자 어디에 있다 나오는지 노숙자들이 떼지어 모여있는 걸 보게 되는데 길게 자란 머리카락엔 기름떼가 묻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얼굴엔 핏기라곤 없이 콜타르를 바른 것처럼 새까맣다.
밥은 굶어도 술은 굶을 수 없는지 대낮부터 술에 취해 길바닥에 모로 누워 자고 있는 걸 보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아예 다 팽개치고 이제는 더 감추고 가릴 치부도 없는 듯 모든 걸 포기한 사람들 같다.
까맣게 흑색으로 변한 얼굴의 상태로 봐서 肝(간)이 다 망가져 저대로는 얼마나 더 살까싶다.
그래도 술깨고 나면 또 소주 사 마실려고 동전 몇개만 달라고 구걸하는 걸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들도 한때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고 또 한때는 꿈도 있었던 청춘시절도 있었을텐데 어쩌다 저렇게 더 이상 망가질 곳이 없는 산 송장이 되었을꼬....
97년 외환위기 이후 도심 지하철역이나 지하도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노숙자라는 이름의 걸인들이 이제는 대한민국 도심풍속도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요소가 되었고 날이 갈수록 그 숫자도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이들도 우리 국민이고 납세자였을텐데 입만 열면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인이나 인권운동가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받고 궁전같은 교회와 대궐같은 절간에서 하느님소리를 전해주는 신부님, 목사님, 스님들로부터도 버려진 존재들이다.
시주할 능력도 없고 헌금낼 처지도 못 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어저께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개성공단의 4만명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철수하기를 주저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主敵의 인민들 일자리걱정하는 우리 대통령이 어째 전국에 걸쳐 산송장처럼 살아가는 노숙자문제에는 아무 언급이 없을까...
입만 열면 국민걱정하는 우리 국회의원, 지자체장과 지자체의원들은 고급 승용차만 타고 다녀서 노숙자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일까 의아스럽기만 하다.
개성공단을 폐쇄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국가안보차원에서 다룰 문제지 북한근로자의 복지차원에서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 않소?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월급이 북한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대통령과 청와대나으리들이 개성공단의 북한근로자 일자리걱정 때문에 철수하기 어렵다니 참 듣기가 역겹고 분통이 터진다.
10년안에 선진국으로 만들겠다. 10년안에 무얼하겠다 거창한 공약만 남발할 게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선거때마다 북한과의 경협을 확대하겠다 소리는 많이 하던데 노숙자문제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대북퍼주기를 '경협'이라 하더만)
사회기강도 무너지고 法治도 실종되고 교육도 황폐화된 사회에서 한 가지는 잘하고 있더라.
거액을 들여 한강주변을 공원처럼 만들고 한강다리에 화려한 조명을 비추어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것처럼 치장을 하고 대형 분수를 만들어 보기에도 시원한 물잔치를 벌이고 있다.
어리버리 국민들은 이런 걸 보고 참 잘한다고 박수를 치겠지.
수십조의 예산을 투입해서 강바닥을 파고 그래서 강 주변에 놀고 먹는 위락단지를 만드는가 하면 전국에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녹색혁명을 한다나 어쩐다나...
저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해서 예산을 퍼붓고 있다.
전국에 걸쳐 노숙자가 얼마나 되는지 결식아동이 얼마나 되는지 움직이기 힘들어 방안에 갇혀 사는 독거노인이 몇명이나 되는지 정부는 그 실태를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백개의 각종 위원회를 만들고 무슨 무슨 복지기관과 단체를 만들고 여기에 빌붙어 예산을 축내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지만 그럴수록 거리의 노숙자와 붕괴되는 가정은 늘어나고 있으니 이 무슨 조화인지....
대통령과 청와대 나으리들!
개성공단 북한근로자 걱정만 하지 말고 오늘이라도 서울역 주변 길바닥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숙자들 실태를 한번이라도 보고 오소! 최소한 겨울에 얼어죽는 일은 없게 하고 하루 한끼라도 먹을 거 주는데는 그리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닐텐데...
폭탄을 하나도 적재하지 않고 출격하는 전투기 조종사처럼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통치에 대한 개념이라고는 아예 없이 텅 빈 머리로 청와대에 앉아 있다.
<프런티어타임스 이태준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