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눈감고 "아웅"하고 있다
- 전직 예우에 앞서 진실 밝히고 용서 구해야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여사
2009년 4월을 마지막 보내는 날 30일, 국민은 착잡한 심정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하는 날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선 3번째다. 그는 청와대가 마련한 16인승 방탄버스를 이용했다.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에 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심야에 귀가하기까지 17시간여 동안 인터넷과 방송은 실황으로 그의 동선을 중계했다. 그는 지금 구속과 불구속수사에 대한 검찰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퇴임 후를 대비해 지은 호화사저를 나설 때 계단 양편에는 참여정부 인사 30여명이 도열해 배웅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사저를 지키며 취재에 열을 올렸던 기자단에게 "국민 여러분께 면목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도덕과 청렴의 상징인양 행동해 왔다. 그러면서 뒷켠에서 뇌물을 받았다. 한국판 지킬과 하이드의 부끄러운 모습을 국민에게 실토한 것이다.
카메라에 비친 그는 지쳐 보였다. 그리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밤잠을 설친듯 보였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검찰출두 전날밤이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긴 밤이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상에서 그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로 인터넷을 즐기는 그는 검찰에 출두하는 자신에 대한 누리꾼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을 게다. "정치공세다"고 지지하는 소리가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석고대죄 하라"고 일갈하는 비난이 압도했다.
그에게 퍼부어지는 비난의 화살은 당연한 것이다. 그는 집권 임기내내 국민을 기만했다. 국민이 분노하는 건 그의 일가가 동원돼 받은 돈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인 그는 철저하게 국민의 뜻을 외면했다.
그의 부름을 받고 입각했던 인사마저 등을 돌린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닌걸 보면 그는 대통령으로서 형편없는 낙제생이다. 국민들은 임기 내내 "대통령을 해선 안될 사람"으로 그를 뽑았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또 달리 국가에 많은 해악을 끼친 대통령이었다.
일단 그는 일류 탤런트 뺨치는 연기를 해냈다. 우리나라 국민은 "잘못 했다"고 사죄하는 사람에겐 관대한 국민성을 갖고 있다. 죽일 듯 달려들다가도 잘못했다고 빌면 주춤하는 게 우리국민이다.
노 전 대통령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명분은 나라 체면이다. 전직 대통령을 세 번씩이나 구속하는 건 국가적 망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라 해서 사면할 수는 없다. 그는 분명 실정법을 어긴 죄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있다는 걸 국민은 다 안다. 한달 가까이 그는 검찰과 맞서 진실공방을 벌였다.
대검 중수부는 600만 달러 플러스 알파에 대한 그의 죄상을 밝히기 위한 질문만도 200가지에 이른다. 박연차 회장은 "돈을 건넸다"고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은 "받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이다.
출국하기 전 직접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는데 그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가족이 동원돼 받은 600만 달러를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눈감고 "아웅"하는 것이다.
이대목이 이 사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한 것은 돈을 받았다는 뜻인데 검찰에선 "전혀 모르는 일이다"고 진술 하고있는 것이다. "받았다" 하면 형사적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는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란 직업은 때론 진실을 감추고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렇다고 국민 앞에선 "면목이 없다"하고 법 앞에선 "면목이 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법 앞에서도 용서를 빌어야 한다.
국민은 이것이 바로 노무현식이다고 비난한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기록물 유출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라고 했다"면서 "자존심이 상했으나 기대도 했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그 당시의 이 대통령의 이 말을 지금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실은 밝히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의 예우에 앞서 국민이 용서한다. 전직 대통령이라 해서 진실은 감춘 채 "다 아시면서 눈감아 달라"는 개그맨식으로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시 자신의 죄과를 반성해야 한다. 세 치 혀로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친북정책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얼마나 많은 현금을 북한에 퍼 주었는가.
그 많은 지원금이 오늘날 북한의 핵 무장을 크게 도왔다는 사실을 국민은 알고 있다. 역사적 죄를 지은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죄상 위에 뇌물까지 얽혀있는 진실을 감추는 건 전직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특히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등이 앞장서 "정치보복이다"고 선동하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여정부 인사들이 하는 행태다. 노 전 대통령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이 할 일은 자명하다. 국민에게 "면목 없다"는 말의 뜻을 실제로 이행하는 것이다. 박연차 회장에게 돈을 요구해 아들, 딸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사실과 명품시계를 받게된 경위 등을 소상히 국민 앞에 밝히는 일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잘못을 감추고 선처를 바라는데 있지 않다.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데 있다. 그러하지 않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후에도 역사에 비겁한 사람이란 주홍글씨를 지울 수 없게 된다.
<이원창 프런티어타임스 주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