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09-04-28 16:57:11
기사수정
경주 남산(새벽산행)

경사가 완만한 산이 있고
경사가 가파른 산이 있다.
완만한 산에는 초동의 편안한 뒹굴던 추억이 묻어난다.,
가파른 산에는 나뭇꾼의 전설이 시간을 이어오고 있다.

경주 남산이다.
가파른 산이다.
산 초입을 지난다.
정상부근에 이르면 오르기조차도 힘든 가파른 바위들이다.
분기탱천한 바위가 하늘에 자신의 기개를 펼치고 있다.
하늘에 맞댄 바위의 얼굴이다.
이름하여 악산(험한산)이라 한다.

드디어 남산에 17번 째 올랐다.
밝음으로는 아침이지만 시간상으로는 아직 5시인 신 새벽이다.
시간을 지새운 듯 이슬 영롱함을 머금은 삼릉이다.
그 푸른 잔디위에 사진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젊음의 인기척을 먼저 만난다.
몰두하는 자만이 새벽을 먼저 여는가 보다.
몰두하는 자만이 그 성취를 즐길 수가 있는가 보다.

태풍의 위협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소나무이다.
삼릉가득 에워싼 소나무의 위세 옆으로 계곡 꽉 메운 채 좔좔 흐르는 물이다.
시원한 물 흐름이 전하는 청아한 기운의 공기들을 호흡한다.
아마도 수천 년을 어어 온 청아한 공기인가 보다.
아직 아침을 열지 못한 새벽이다.
깨어있지 못하니 담아가지 못한 맑은 공기들이 남산을 다 덮고 있는 듯 하다.

후루룩 축지법을 쓰듯,
한 줄금에 달려 나간 걸음이다.
불상의 인자한 옷매무세 앞에 선다.
남산의 초입에서 만나는 조형으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다.
불상의 얼굴을 잃어버린 그 세월을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한 채,
남산의 순례 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있는 온화한 불상이다.

누군가가 또 전설 속으로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원형을 복원하여 그 애초의 꿈을 펼칠 것이다.
불국토의 염원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아득한 전설 속으로 가듯 불상순례의 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상선암에 당도한다.
남산의 표지모델인 마애여래좌상이다.
세월에 내맞긴 인자한 위엄이다.
마음에 담은 염원이 있다면,
이루어야 할 소망이 남아 있다면 그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면 이루어진 단다.
불상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그 이룸을 선사하는 것이다.

가파른 정상으로 향하는 걸음이다.
새벽의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청아한 공기가 산화할까 조바심인 것이다.
햇살이 내리면 청아한 공기는 흔적을 거두어 승천할 것이다.
마애여래좌상 능선 뒷편의 상사바위 앞에 선다.
해발468미터의 정상에 오른다.

남산정상의 이름인 금오산이다.
세상을 다 포효하는 크고 긴 호흡을 들이킨다.
세상을 통째로 가슴에 담는다.
한문의 오자가 거북이 발거음 내민 채 움추린 오자란다.
아래로 움켜쥐고 있는 남산의 전경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다.

절경의 능선이 있다.
내려오는 길 내내 상선암의 마애여래좌상을 마주하는 능선길이 있다.
미로처럼 숨어있던 능선길이다.
마음으로 겨우 찾아낸 그 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겨우 몸하나 비집고 나올 샛길을 헤친다.
남산에서 크게 쓰임을 하고 있는 것을 자랑이나 하듯 넓은 평면바위에 앉는다.
아직 태양이 제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바위에 기대어 온몸에 젖은 땀의 열기를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내려올 수 없는 하산길이다.
그 출발지점의 대로길에 닿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굽이 하나 내려서면 상선암의 마애여래좌상을 더 이상 볼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월은 다시 고요에 뭍힐 것이다.

남산은 신라서민의 염원으로 다듬어진 서민의 산이다.
나름데로 험한 자태를 하고 있는 바위때문에 악산이다.
악산은 오르기가 험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을 스스로 지켜내고 있다는 함의가 있다.
남산은 아름답기 때문에 그렇게 악산이라 부르는가 보다.

새침하게 얼굴 내미는 햇살이다.
이미 무념무상의 경지가 되었다.
남산의 아름다움이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무아지경은 곧 무념무상인가 보다.
그리하여도 남산을 남산답게 하는 바위에 대한 찬사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그 마음이 남산을 영산으로 만들고 있는 곳곳의 부처에 대한 찬미가 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 무어라 하더라도 천년의 세월을 거스르기에는 도무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또 오르게 될 마음의 다짐을 하나 겨우 추수려 본다.
남산의 경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것 밖에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경주 남산 그림 출처: -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260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