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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4-16 14: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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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재 하면 KBS 이름있던 아나운서다. 1970년대 초 그 아나운서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한적이 있다. 그리고 오랜세월 친분을 같이 해 왔다. 그가 60대의 나이에 접어 들면서 시인이 되었다고 전해 왔다. 스토리문학 잡지를 보내왔다. 등단한 최초의 시가 실린 잡지였다.

▲ 스포리문학 표지 시인 이후재
반가운 마음으로 그 시를 춘하추동 방송얘기 불로그에 올리고 KBS사우회 모든 회원에게 알렸다. 그로부터 이후재 아나운서는 이후재 시인으로 통했다. 아나운서와 프로듀서, 방송국장을 지낸 이후재 논설위원이 전주이씨 문중에서, KBS사우회에서, 지역신문 발행인으로 이밖에 여러 일들을 하더니 또 이곳 월드뉴스의 논설위원으로 취업?을 했단다. 삶의 현장에서 이토록 다양한 삶을 누리는 경우도 많지는 않으리라.

▲ 나이아 가라 폭포에서 가족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 현장의 감동 /펄렁이는 걸작/시,그림 , 이후재 아나운서가 일생을 통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단다. 그래서 그 감동을 시로 써서 보내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와 사진을 보며 현장감동을 느끼는 듯 했단다. 그 글은 지금도 http://www.cyworld.com/jc21th/255272 에서 볼 수 있다. 필자는 이후재 아나운서를 보고 싶으면 그가 쓴 시와 그림을 본다.

▲ 나이아 가라 폭포에서 가족과 함께
이후재 논설위원이 쓴 여러편의 시에 접했다. 최근에는 여의도 의사당안을 보며 너무 안타까워 한편의 시를 썼단다. "화살침 뱉다" 한국의 폭력국회, 세계의 웃음거리를 고발하기위해 썼단다. 이 시에 이기재님이 댓글을 달았다. "영혼을 보듬는 시"라고 했다. 또 다른 시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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