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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14 15:24:10
  • 수정 2021-11-24 2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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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수담 1편, “예, 평소에도 (흰 고무신을) 즐겨 신고 다녔습니다.”


  -  거짓은 거짓을 낳는 마력을 지녀



면접관 : (내가 신은 고무신을 보며) 평소에도 흰 고무신을 즐겨 신는가.

나       : (엉겁결에) 예, 평소에도 즐겨 신고 다녔습니다.

면접관 : (내가 당시는 고등학생이었으므로) 흰 고무신을 신고 등교하는 것은 

            교칙에 위배되지 않나.

나       : (할 말을 잃은 채 머뭇대다가) 담임선생님께서 역사 선생님이시라  

            흰 고무신 신고 등교하는 것을 용인을 하셨습니다.

면접관 : (고개를 갸웃 하더니) ‘다음 학생 들어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는 예비고사에 이어 대학별 입학시험 곧 본고사까지 치렀다. 이 예비고사는 지역별, 대학별 본 고사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었다.


 즉, 각 지역별로 본 고사를 치를 수 있는 커트라인이 달랐다. 나는 다행히 서울소재 대학에 입학시험을 칠 수 있는 점수를 받았다. 평소 반에서 20등 정도를 하던 나는 이 예비고사 성적에서는 반에서 6등이었다. 예비고사 성적표를 나눠주시던 담임선생님조차 예상치 못한 나의 높은 점수를 보고 놀라워 했다.


 사실 당시 반에서 반 이상의 학생이 서울지역 소재 대학에 입학원서조차 내지 못하는 수준의 예비고사 성적표을 받아들어야 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나의 예비고사 성적은 분명 높은 편이었다. 당시 성적표에는 예비고사 성적의 전국 등수까지 매겨져 나왔다. 나는 당시 예비고사를 치른 전국의 전체 학생 약 60만명 중에서 약 30,000등 쯤이었지 싶다.


 이 등위면 선택하는 학과에 따라 다르긴 해도 서울소재 모든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 본 고사를 치를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대학입학시험의 경우 본 고사를 치른 후 날을 정해 면접을 먼저 실시했다.


 모두의 내용은 바로 이 면접 때의 일화다. 나는 중 삼 때 서울로 전학을 와서 서울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서 당시 변변한 운동화 한 켤레조차 사 신지 못했다. 


그런데 대입 면접이 있던 그 날 하필 눈비가 섞여 내리면서 거리가 질척했다. 낡은 운동화 밑창에서 물이 세어들 것 같아 나는, 하는 수 없이 흰 고무신을 신고 대입 면접시험을 보러 갔다. 내가 면접장에 들어서서 면접관을 향해 나아가는데, 면접관의 예상치 못한 질문이 훅 날아들었다.


 “군은 평소에도 흰 고무신을 즐겨 신는가?”


 나는 훅 날아들어 온 면접관의 질문에 놀란 나머지 그만 “예”하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면접관은 나에게 (면접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는 말도 없이 “ 흰 모무신을 신고 등교하는 것이 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하고 또 다시 질문이 훅 날아들어오는 게 아닌가.


 당시 내가 이성적이고 현명했다면, 나는 이 대목에서 보다 더 솔직히 대응하는 방안을 찾아 응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충분히 이성적이지 못했다. 자연히  나는 앞의 답에 대해 변멍을 하고야 말았다.


일단 변명을 시작하면, 변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다.


 그 점을 극복하려면, 앞서 제가 “예”라고 대답한 것은 엉겹결에 한 대답으로 잘 못되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흰 고무신을 신고 면접을 보러 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면접관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세세히 설명을 하는 등 나의 입장을 이어갔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척 하며 당시 앞서의 답을 합리화할 요량으로 담임선생님을 팔고 말았다. 즉, '담임 성생님께서 역사 선생님이어 흰 고무신을 신고 등교하는 것을 용인하셨다.'고 답을 했다. 


변명을 이어 간 것이다. 이는 누가 봐도 잘 못된 것임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즉, 누가 봐도 나의 대답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수백명을 상대한 면접관의 통찰력은 나의 그 대답에 내 속을 꿰뚫어 보았지 않았겠는가. 


보나마나 면접관은 속으로 "아하, 이 놈 봐라. 준법정신이 미약하겠는데, 너는 불한격이야."라고 하지 않았겟는가. 자연히 그 날 면접의 결말이 어떻게 났고, 그리고 그 대학에 내가 입학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 또한 누구나가 다 미루어 알 수 있지 않나 한다.


 변명은 변명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는 마력을 지녔다. 따라서 부득이 행했지만, 부득이 행한 변명 혹은 거짓을 그 자리에서 주어담고, 보다 솔직하게 수정해서 진실을 말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점을 경계해 극복해야만 삶에 후회가 없다. 어쩌면 그 날 면접만 잘 치렀더라도 내 삶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하고 나를 위로해 본다.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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