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북한의 6.25 남침과 Truman 미 대통령의 결단 - 대한민국은 Truman 미 대통령의 은공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 -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맥아더’장군에게 한국을 방어하라 훈령
  • 기사등록 2019-06-23 21:17:36
기사수정

▲ 이팔웅 월드뉴스 보도본부장 겸 논설실장

6 25전쟁과 트루먼



* 한반도의 공산화는 Truman 미 대통령이 막았다.


그 개자식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19506. 25일 북한군의 전면 남침을 당시 ‘에치슨’ 국무장관이 트루먼대통령에게 전화로 보고하자 내 뱉은 트루먼대통령의 제 1성이다. Truman 미 대통령이 내 뱉은 말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존재할 수 있게 했으며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한 것이다.


만약 트루먼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쯤 김정은의 압제와 속박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사실상 북한의 전면남친 소식이 전해지자 지체 없이 결정되었다고 본다.


북한의 전면 남침 소식은 대체로 5-6시간만에 트루먼 대통령에 보고되었고 전쟁 개시 2일만에 미 해공군에 38도선 이남의 북한군 부대, 탱크, 포병에 대한 공격을 포함해 한국군에 가능한 최대의 지원을 제공하도록 미국은 결정한 것이다.


이런 결정은 즉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맥아더’장군에게 훈령으로 각 하달된 것이다. 그리고 미 지상군 투입도 1950630일 결정되었다.


따라서 일본에 주둔 중인 미 제 24단 병력 중 일부인 스미스 대대가 한국전선으로 출동한 것이며 71일 부산에 도착해 곧장 북상해 오산 죽미령에 포진한 것이다.


그리고 72일 탱크를 앞세우고 남진하는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2개 소총 중대, 4.2인치 박격포 2개 소대, 75mm 무반동총 1개 소대로 편성된 미군부대는 화력이 약한 가운데 격전을 벌였으나 400여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내고 퇴각했다.


첫 전투를 벌인 스미스 대대의 임무는 북한군의 남진 지연작전이 었다. 그런데 미군과 첫 전투를 벌였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매우 당황하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알지도 본적도 없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보낸 ‘트루먼’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을 것인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특히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쟁에 개입해 지상군을 파병하자 영국의 애틀리 당시 수상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을 포기할 것을 종용하면서 한국에 파병되는 미군을 유럽으로 빼돌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에 대해 미국은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버리는 나라가 아니라고 대답해 영국 애틀리 수상의 요청을 정면에서 거절한 뒷얘기도 있다.


특히 당시 한국과 미국은 아무런 협정도 조약도 없는 상태였고 19501월에 기자회견을 통해 ‘에치슨’ 미국무장관이 ‘에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한국과 대만은 에치슨 라인의 밖이라고 못 박았다. 에치슨 라인은 아시아에서 외부세력의 침공이 있을 경우 미국이 방어해주는 범위를 설정해 놓은 것이다.


이 발표로 김일성의 남침야욕을 더 촉진시켰고 어떤 경우라도 미국 개입은 없을 것으로 김일성과 공산진영은 판단했었다.


그런데 남침 개전 초기에 북한군이 미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소식을 접한 김일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엔도 북한의 무력 남침을 규탄했으며 유엔군을 파견한다는 것도 총회에서 결의했다. 당시 유엔군은 5개군단 15개사단, 2개여단으로 구성된 23만명, 미군만 3개군단 6개 사단 12만명이었고 그밖의 국가의 병력은 12,000명이었다.


이밖에도 전투병이 아닌 병원선등 각종 전투에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는 등 세계의 65여개국이 한국전쟁을 지원해 준 국제적인 전쟁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트루먼 대통령을 한국인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은인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은인에 대해 우리는 대접이 너무 소흘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서울 어디에도 ‘트루먼’을 기념하는 상징물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임진각 구석에 작은 ‘트루먼’ 동상이 하나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볼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하나 ‘한미동맹’이다. 이 동맹이 훼손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 이팔웅 논설위원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2223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이팔웅 논설위원 이팔웅 논설위원의 다른 기사 보기
  •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 공채 합격
    -KBS 부산방송국 아나운서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
    -KBS 대구방송국 보도과장
    -KBS 남원방송국장
    -KBS 사회교육방송 전문위원,
    논설집필 직접출연방송
    -TBS방송 프리랜서 시사해설 담당
    -시니어저널 신문 논설위원
    -관동대학교 출강(컴뮤니케이션강의)
    -월드뉴스 논설실장/보도총괄본부장
    -바른말실천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현재 월드뉴스 논설위원(논설실장)
    -월드뉴스 보도기획총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