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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19 22:09:33
  • 수정 2019-06-19 22: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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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득환 대기자

망국의 길, 역사가 중단되는 비극적 사태를 또 맞을 수도 있다.


800년을 면연이 잇던 조선왕조가 마침내 붕괴된 데는, 세월 탓도 있지만, 그 보다는 왕()권을 등에 업고 치세하려는 자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 때문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각 정파 간에 정쟁이 끝없이 펼쳐진 때문에 어느 한 정치세력의 주도 하에 국정을 쇄신할 여력이 없었던 결과이다.


그 때문에 혁신정권 창출에 실패한 조선은 끝내 일제의 식민지배 체제 하에 들어가고 말았다. 하기야 800년 조선왕조의 정치사에서 그것만 있었으랴.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깊은 속내도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막을 내린 그 표면적 이유로는 앞의 견해가 타당하지 싶다.


그런 가운데서도 강력한 왕이 나타나 정치를 혁신하고 치세에 나섰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다. 그랬다면, 일제치하 36년 치욕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왕조의 역사가 더 이어졌다면, 과연 우리의 현대사는 어땠을까.


정치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가 더 빨리 도입되고, 그에 기반 하여 산업화 또한 더 빨리 진행되었을까. 우리는 그랬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주변국의 역사이행을 살필 때,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현대사가 더디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역사의 전개란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조선왕조에서 진행되었던 정쟁에 대해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 번 구르기 시작하면 멈추는 법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시간이 더할수록 그 관성력을 점차 키우는 것이다. 이유에 이유가 덧대어 지고, 점차 덧대어 진만큼 역사의 수레바퀴는 점차 더 무개를 더하게 되고, 무게를 더함에 따라 관성력은 더 커지고야 만다.


이어 그 수레바퀴의 무게 수준이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이미 때는 늦어 멈추려 제 아무리 힘을 쓰도 멈출 수 없다. 더구나 그 역사의 수레바퀴가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참혹한 역사의 구렁텅이 속에 더 깊이 빠져버릴 경우다.


그 구렁텅이 속에서도 멈출 줄 모르는 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다. 피투성이인 채 여전히 구르게 되는 것이다. 이리저리 구르다가 여기저기 부딪혀 난 상처 때문이다. 그것은 곧 수많은 이의 희생을 상징한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어야 비로소 그 수레바퀴의 무게는 점차 줄어든다. 그렇게 해서 가벼워진 수레바퀴는 종래 그 구렁텅이에서 탈출의 기회를 갖는다. 이 때, 새로운 지도자가 역사에 등장한다는 의미다. 그 지도자가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 역사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물론 그것이 곧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까지는 새로운 희생 곧 투쟁을 요구한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해방 이후 전개된 이 땅의 굴곡진 현대사는 압축적 경제성장과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확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그러나 그 역사가 다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 이 땅에는 아직도 국민이 열망하는 진정한 새로운 역사의 시대가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36년의 구렁텅이에서는 겨우 벗어는 났지만, 여전히 남북분단이라는 구렁텅이 속에 이 땅의 역사가 빠져 있는 것이다.


이 땅의 진정한 새 역사의 시대는 남북통일과 함께 열린다. 이 같이 중대한 역사적 과제를 두고도 이 땅의 정치는 여전히 조선왕조시대의 사색당파놀음을 갈음하는 구렁텅이 속에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파당주의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이 파당주의가 망국의 길임을 앞선 선험의 역사가 일깨워 주고 있음에도 다를 모른 채 눈을 감아버리고 있다.


가까이서 보자. 박근혜 정부가 패망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당과 청와대가 불협화음을 내며, 파당의 쟁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점을 부정할 이가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앞의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혹 내 말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음을 보면, 어느 정도는 수긍하게 될 것이다.

누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는가.

촛불을 든 시민이 했다고 보는가.


시민의 손에 들린 촛불이 그 동기가 되긴 했지만, 촛불을 든 시민의 행동이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탄핵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탄핵 것은 박근혜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바로 그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었다.


김무성 의원을 바롯한 탈당파 60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의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렇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스스로 한나라당이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발등에 도끼질을 한 셈이다.


그것은 곧 한나라당 망당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국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한반도는 분단의 역사 속에 있다. 하지만 우리국민 모두는 태평성대인양 행세하고 있다. 특히 정치가들의 행태가 그렇다.


자신들의 행동이 망국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잇을 것이다.


북한 핵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국제적 이해관계가 그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의 핵 전술 전개의 역량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이 땅의 정치인들 모두 망국의 길로 나아가는 파당적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다들 망국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경제는 역성장 속에 있고, 주변 4강은 역사의 새판을 짜기에 곧 나서기라도 할 듯하다. 특히 미중 간의 패권 다툼은 아직은 경제전쟁에 머무르고 있지만, 자칫 열전으로 나아 갈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역사의 흐름을 두려워해야 한다. , 세계사 재편 움직임에 대비를 해야 한다.그런데 이 땅의 정치는 이런 사실을 망각한 채 파당적 행동만을 지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역사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잃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그 바른 역사의 길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800년은커녕 고작 100년을 갓 넘긴 시점에 역사가 중단되는 비극적 사태를 분명 또 맞을 수 있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자면, 이 땅의 정치가 혁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치혁신의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다.


국민이 이 사실을 자각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파당정치가 종식되고, 대한민국이 망국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이는 국민이 곧 이 땅의 역사이며, 역사 이행에 대한 책임 또한 국민이 진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여름에 부는 북풍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2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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