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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3-26 12: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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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향로산(해발 976미터)

둥실 뜬다.
초저녁의 달이 그렇다.
떠오르지 못하는 인간이다.
가볍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이 되지 못한다.
덩실 흐른다.
한 낮의 구름이 그렇다.
흐르지 못하는 인간이다.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름이 되지 못한다.

너덜에 접어든다.
돌 위에 발을 내딛는다.
둥근 달을 밟는듯하다.
너덜의 돌이 길을 내준다.
돌에 남겨진 발자국이다.
누군가 남긴 흔적이 길이 되었다.
앞선 자의 배려인 것이다.

너덜에 손을 집는다.
하얀 구름을 잡는듯하다.
너덜의 돌이 세월이 된다.
구름처럼 뭉개를 만들었다.
너덜이 솜털처럼 부드럽다.
세월에 순응한 돌의 촉감이다.
세월의 고마움인 것이다.

산의 예고이다.
산에 너덜이 있음은,
정상의 길이 가파른 것이다.
너덜이 있어 산은 더는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너덜이 산의 정상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참나무의 군락이다.
너덜이 끝난 경계이다.
참나무의 영접을 받는다.
군무처럼 팔을 벌려 마중을 나온 것일까.

가파름이다.
헉헉 숨을 내뱉는다.
힘에 게울수록 뿜어내어야 하는 것임을,
사는 것의 지혜이다.
가질수록 더 많이 비워야 하는 것임을,
병풍을 펼친 거대한 바위이다.
바위가 단애를 만들었다.
그 터에 있는 전망대이다.

마치 초인종을 누르듯,
돌 하나를 툭 친다.
흐르다가 곧 멈추는 돌이다.
있던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향로산이 행복한 것이다.
돌 하나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돌은 하나의 켠이 될 것이다.
조각 하나가 골동품을 명품으로 만들듯이,
그 켠이 산의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다.

숨겨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
능선 길을 가로막는 큰 바위이다.
바위를 핑계로 길을 돈다.
타원형의 굽이길이 된다.
길의 모서리에서 뒤를 돌아본다.
직선이었다면 곧장 갔을 것이다.
모서리가 있으니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눈높이의 소나무가 그저 푸르다.
사는 것은 곧 돌아보는 것임을,
붉게 치장한 참꽃이 화사하다.
자연조차도 꽃을 피워 돌아보는 것에 찬사를 보내는가 보다.

돌로 된 의자를 본다.
그 형상이 너무나 기묘하다.
산의 중턱에 놓여 있다.
앉으면 권좌가 될 것이다.
왕의 의자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
앉으면 향로봉을 마주할 것이다.
정상을 올려다보라는 명령 같다.
앉아야 지난 시간이 떠오를 것이다.
삶을 되돌아보라는 명령 같다.
권좌가 아니라 일상의 의자가 된다.
묵묵한 산이 일세도 못가는 권좌에 친할 리가 없다.

가파름을 넘어 오른 능선이다.
눈에 보일 듯 바람결이 서두른다.
능선에서 전령처럼 앞서온 바람을 맞는다.
뜻 넓은 능선이 편을 가를 리 없다.
뜻 깊은 소나무가 능선의 편을 가르고 있다.
능선의 좌측은 응달이다.
능선의 우측은 양달이다.
능선의 좌측에는 바람이 없다.
능선의 우측에는 세찬 바람이다.
소나무가 오로지 우측에서 우람하다.
소나무가 바람이 갈 곳을 가리키고 있다.
소나무의 가지 끝을 타고 바람이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문경 사불산의 소나무가 응달에서도 우람하다.
향로산의 소나무가 양달에서 바람을 호령하고 있다.
의연한 소나무가 문경의 사불산을 연역하게 한다.
향로산의 소나무가 그 의미를 전하고 싶었던가 보다.

사방에 적이다.
포위되어 경각의 생명이다.
병사는 포위를 뚫어 환희에 울 것이다.
돌아가면 그 용맹에 포상이 내릴 것이다.
사방에 산이다.
포위되어 풍경의 황홀함이다.
살필 수 있다면 벅차서 감격할 것이다.
하산하여도 그 풍경에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정상에 올라 아늑한 점 하나가 된다.
사방을 포위한 명산들의 위풍이다.

천황산이 아직 억새에 잠겼다.
재약산이 검은 바위로 솟았다.
간월산이 범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신불산이 거함처럼 정박하고 있다.
영취산이 뿔처럼 하늘을 받치고 있다.
사자평의 사자후가 되어 달리고 있다.
토곡산이 돌 등대처럼 투박하다.
천태산이 용의 승천처럼 꿈틀거린다.

성난 노도는 뭍으로 향하는 것이다.
기대고 싶은 것이다.
솟은 산들은 향로산으로 향한다.
보태고 싶은 것이다.
일순 사라지고 마는 점이 된다 하여도,
정상의 황홀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도무지 산의 포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산행일: 2009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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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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