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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환 칼럼]속히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안정적인 국가 정책방향이 수립되기를 바란다.. - 선진국이 추진하는 국제 정치 경제 트랜드를 벗어나서는 국민적 저항에 부…
  • 기사등록 2018-12-25 22:14:22
  • 수정 2019-01-02 20: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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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득환 대기자/논설위원

이 땅의 현대사에서 정치가 혼탁하지 않은 시기가 있긴 한가. 그 시기가 있다면, 그것을 기점으로 헌 정치와 새 정치를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생각해도, 내 눈에는 그 새 정치의 시기가 안 보인다.


우선 이 땅에서의 정치의 시기를 크게 구분하면, 3.15부정선거 이전과 이후, 그리고 5.16군사정변때 부터 10.26 사태에 이르기까지의 시기, 그리고 5.18 이후 정치의 시기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소위 3.15부정선거가 4.19현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4.19 혁명은 이 땅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전기가 된다. 그러나 4.19혁명 정신은 제2공화국이 탄생을 불렀으나, 2공화국은 오래 존속하지 못했다.


바로 61516일 박정희 장군이 주도한 5.16 군사정변으로 소위 장면 내각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제3공화국이다. 3공화국의 핵심은 유신정권으로 이어진 박정희 군사정권이다.


7210월의 10월 유신은 곧 한국적민주주의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며, 18년 장기집권의 토대를 구축했다.


그러나 물이 한 곳에 고여 있을 수만은 없듯이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흐르는 것이 물의 속성이듯 정치 또한 흐르기 마련이다. 그 점을 보여주듯 79년 일어난 10.26사태와 함께 철옹성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역시 막을 내렸다.


10.26사태,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충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그 명을 다했지만, 수많은 국민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봄은 기어이 열리지 않았다.


그것을 기화로 등장한 것이 전두환 정권 곧 제5공화국이다.큰 국민적 희생이 있었다, 이어 8710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열며, 이 땅에 새 정치를 여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 때부터 이 땅에 국민이 정치의 주인인 정치적 민주주의가 뿌리를 굳건히 내리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비록 노태우 정부가 군사정권을 이어가긴 했지만, 그 뒤를 이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15년 동안 행해진 이 땅의 정치는 바야흐로 국민이 원하는 민주정치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 사라진 것만 같았던 정치적 권위주의는 국민들 속에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 때문에 이 땅의 정치 역시 국민의 안정적인 정치개혁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국민들이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북한과의 군사합의 내용에서 우리가 국가안보 분야에서 분리하다는 생각으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우리 국민들은 헌법개정문제와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도 국회에서 여야가 심각한 갈등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정치개혁이 국민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 역시 불안한 마음은 마찬가지다.


어느 정권도 정치개혁이나 경제개혁이나 새정책에는 언제나 국민의 마음이 불안해서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제일의 기본 수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선진국 수준으로 안정적 정책방향이 수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선진국이 추진하는 국제 정치 경제 트랜드를 벗어나서 어떠한 정책도 국민적 저항에 부딧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루속히 오로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 땅에 정착되기를 고대해 본다.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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