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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2-06 09: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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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회 중앙회장 박준홍
1944년 10월 말 늦은 밤, 朴相熙는 구미역에 근무하는 처조카 사위인 李瑞龍을 자택으로 불렀다. 이서용은 무슨 일인가 하는 눈빛으로 박상희를 처다 보았다“자네 역에 근무하니까 몰스 부호 알지 ?”하고 다그쳐 물었다.

이서용은 이 밤 중에 웬 몰스 부호를 물어보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으로 다시 한 번 박상희를 처다 보았다. 당시의 철도국은 통신수단으로 무선통신 수단을 이용했으며 전보통신 수단은 몰스 부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역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이서용은 당연히 몰스 부호를 알고 있었다. “예”하고 이서용은 의구심이 가득 찬 목소리로 답을 하자 박상희는 “자네는 내가 말하는 그대로 몰스 부호로 이 실에 매듭을 만들어 줘” 하고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강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몰스 부호로 매듭이 만들어진 실은 양복을 깁는데 사용되었으며 이 양복은 만주의 독립군에게 전달되었는데 박상희를 독립군 지원총책으로 의심하며 항상 치밀하게 내사를 해오던 일본 경찰은 박상희의 지인들이 만주로 가는 것을 엄밀하게 조사를 하였다. 그러나 감쪽같은 박상희의 재치에 일본경찰은 독립운동의 밀서를 찿아 내는데 번 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1945년 초 만주군 제8단에 부관으로 근무하는 박정희에게 특별 수색이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 전 만주 군에서 탈영한 2명의 사건과 최근 군내에서 조선 광복군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첩보에 박정희 부관이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부관을 체포해서 조사를 해야겠다는 방침이 정해진 어느 날 만주 군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만주군 제8단에서는 박정희 부관을 빨리 체포하여 수사를 해야 하겠다는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박정희는 바로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를 맞게 되었다. 박정희는 이제 내 운명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게 되어 처절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제2차 박정희 대통령 바로알기 세미나 5월 14-15일 분당의 새마을운동 중앙 연수원에서 이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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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evergra2009-02-08 13:54:11

    그런데 이러한 진정한 박정희대통령의 목숨을 걸고 벌인 독립운동 지원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일본 육사를 졸업했다고 오늘날 우리민족의 횃불을 밝혀준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명부에 올려 놓은 인간들을 심판하지 않고 뭣들 하고 있는지 분통이 터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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