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회관 박근혜정부의 대중. 대일 외교정책
- 평가와 전망에 관한 학술회의

2014년 10월 17일(금) 오전 10시 국회의원 회관 제 1 세미나실에서 국회의원 김 정 우. 심 윤 조 의원과 한국국제정치 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박근혜정부의 대중. 대일 외교정책 평가와 정망 학술회의가 열렸다.
1992년 8월 한중수교 20여년에 양국교역은 처음 63.7억 달러에서 2013년 무려 2.289억 달러로 무역수지 628억 불 흑자로 급증하였고 한국내 중국유학생이 50.343명. 중국내 한국유학생이 63.488명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양국 수뇌 방문에 이어서 한국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단기 적으로는 한일 군사안보 협력을 저지하는 박 근 혜 대통령의 한중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므로 미중 경쟁구도의 결정적인 시기에 한국이 최소한 미중 양자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요구 하고 있다.
박 근 혜 정부의 한일 관계는 국교 정상화가 단행된 1965년이후 양국은 경제적 안보적 협력을 지속하면서 우호협력의 우방관계를 유지해 왔다.
박 정 희 대통령은 조국건대화가 진정한 우리의 미래라면서 1968년 공업국가의 기초를 마련하고 제 2 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1971년에는제 2 단계가 완료되고 제 3 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시점에서 조국근대화가 달성될것이라 전망.
박 정 희 대통령의 대일 정책방향이 한국의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진정성있는 사과가 결려된 채 이루어져 많은 저항을 받기도 했다.
박 정 희 대통령은 일본이 해방이후 단 한마디도 과거죄악에 대하여 사과가 없었다는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하면서 청구권 문제에 대해 일본이 전혀 성의가 없었다고 비판하고 지난 1972년 10월 박 정 희 대통령은 예정되었던 일본방문도 취소하며 강경 대응 했다.
1998년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가전략과 한일 관계는 1960 ~ 80년대에 걸쳐 진행된 경제 개발 정책의 성과로 김 영 삼 정부 시대에 OECD에 가입하는 등 국제적 위상이 증진된 상태였다.
취임 초기에 IMF와의 협의에 따라 주요 경제정책이 조정 되기도 했지 만 1980년대의 북방정책을 통해 중국 및 러시아를 위시하여 동구권 국가들과도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다.
김 대 중 대통령은 대북정책 관련에서 남북 기본 합의서에 입각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불가침 등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였다.
김 대 중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할 생각이 없으며.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 중 대통령은 역사문제나 영유권 문제에 대해 일본에 대한 강경 대응을 취할 경우 상대방의 강경책을 초래해 더욱관계가 악화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근 혜 대통령은 경제 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통해 통일 기반을 다짐했다.
박 근 혜 대통령은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국가안보전략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세부 안보전략 기조로서 튼튼한 안보태세 구축. 남북한 간의 신뢰프로세스 추진. 동북아 차원에서 기후변화. 테려. 마약. 원자력 안전. 환경. 재난구조 등의 협력이 용이한 분야에서의 신뢰 외교 전개를 밝혔다.
박 근 혜 대통령은 중국정상과의 회담 과정에서 일본을 직 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측에 대해 안중근 기년관의 건립을 요청 하기도 했다.
대일 정책전개는 한일양국의 인적. 물적 교류축소 및 일본내에서의 호감도 저하가 되고있다.
월드뉴스 기자 정 기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