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가 바로 서야 경제가 산다
- 법다운 법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흔히들 '법대로 하자’라고 한다. 이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또 흔히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라고 한다. 이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치’는 무엇일까?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할 때 '법’은 입법부, 즉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말한다. 다시 말해 '법대로 하자’라고 할 때, 그것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통과시킨 법에 따라 해결하자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런 법에 따를 때 그것을 '법치’라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국회에서 통과된 법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법이 있다고 하자: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들의 자녀들이 범행을 저질렀을 때는 해당 형벌의 절반만을 집행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이들의 자녀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서는 통상 형벌의 절반만이 집행될 경우에도 우리는 이를 '법치’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특권과 특혜를 안겨주는 것일지라도 국회에서 통과된 것을 '법’이라고 하고, 그 '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을 '법치’라고 한다면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하이에크는 의회에서 통과되었다고 해서 이것을 법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그 법에 따른 것을 법치라고 부르는 것만큼 웃기는 코미디도 없다고 했다. 나아가 이런 식의 법치는 법치가 아니고 아예 법이 없는 무법천지나 다름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어느 특정인 혹은 어느 특정 집단에게 특혜를 주거나 손해를 입히고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권력자나 정치인들이 쥐게 된다면, 모든 국민들의 생존과 인권과 자유는 이미 그들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과 가치관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변덕스런 독재자의 치하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비록 그들이 '법’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앞서 예를 든 '법’처럼 특정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거나 아니면 거꾸로 손해를 주거나 차별을 하기 위해 만드는 법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법의 이름을 빌린 사이비 법에 불과하다. 법이 법다워야만 비로소 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법다운 법에 따른 통치라야 비로소 법치라고 부를 수 있다.
법이 법다운 법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첫째가 법의 일반성 원칙이다. 법은 특정인, 특정집단, 특정 지역, 특정 산업을 편들거나 차별하는 내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법은 법을 만드는 자들의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에 따른 특혜와 차별의 수단이 되어 버린다. 두 번째로 법은 어떤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법은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법은 법을 만드는 자들의 개인적인 가치관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법은 법의 탈을 쓴 사이비 법이며, 이런 사이비 법에 따른 통치는 법치라는 이름을 도용하는 사이비 법치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의 상황을 보자. 거의 모든 법이 차별과 특혜로 얼룩져 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이른바 동반성장을 위한다는 명분의 골목상권 살리기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이다. 기업들이 수도권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도 수도권을 차별하고 지방에 특혜를 주는 대표적인 사이비 법이다.
대기업은 출자규제로 출자를 못하도록 막고, 중소기업에는 각종의 보조금을 주는 것도 차별과 특혜를 법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사이비 법치이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태는 사이비 법치국가이다. 물론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이비 법의 특징은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거나 특정인을 차별하기 위해 반드시 규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투자를 막고, 시장 진입을 막으며, 영업시간과 영업품목과 휴일까지도 규제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다시 말해 규제가 양산되는 이유는 국회에서 사이비 법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관피아가 문제라 하지만, 사실 관피아의 근원은 관료들이 규제의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며, 이 규제 권한은 대부분 국회에서 통과시킨 사이비 법에 의해 형성된다. 관피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도 법다운 법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규제철폐와 관피아 척결의 첩경은 법다운 법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이비 법의 또 다른 특징은 규제를 피하고 특혜를 얻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이권추구(Rent-seeking)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곧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규제가 있는 곳에는 항상 부정부패가 발생하며, 규제가 심할수록 부정부패의 정도도 심해진다.
부정부패가 발견되면 해당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재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제는 곧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부와 정치권은 불신의 대상이 된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고자 하는 큰 정부가 바로 국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최대 원인이다. 모든 사람, 모든 기업들에게 균등하게 적용되는 원칙 하에서는 부정부패의 원인도 대부분 사라진다. 규제를 피하고 특혜를 얻고자 하는 이권추구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투자가 살아나고 경제가 활성화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규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경제의 활력이 나날이 떨어지고, 성장 잠재력도 추락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업들의 설비 투자 증가율이 지난 10년 간 연 5% 대에서 3%대로 낮아졌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국내투자 기피는 해외투자로 이어지고, 이는 곧 국내 일자리의 감소라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2010년 이후 삼성전자의 국내 인력은 2만1,000명 늘어난 반면에 해외에서는 그 5배인 11만명이 늘어났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도 국내 인력은 6,400명 증가한 반면에 해외 인력은 1만8,000명이나 늘었다. 각종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이자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매겨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엉뚱한 소리마저 나온다.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에 대한 규제가 사라져야 한다. 특정 업종, 특정 규모의 기업, 특정 집단,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과 특혜를 의미하는 규제들이 철폐되어야 한다. 법다운 법이 아닌 사이비 법을 양산하는 국회가 만(萬)규제의 산실이며 근원이다. 국회는 사이비 법이 아닌 법다운 법을 만드는 기관으로 재탄생해야만 한다.
국회의 입법권한을 강력히 제한하여 법다운 법을 만드는 기관으로의 환골탈태는 헌법 개정의 문제 등 어려운 작업을 동반한다. 하지만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국회 자신이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사이비 법들을 없애는 일이 그것이다. 그럴 경우 국회는 규제철폐 및 이를 통한 경제활성화의 최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 법다운 법과 진정한 법치의 확립이야말로 규제철폐와 이를 통한 경제활성화의 근본적 해법이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독립신문/뉴스파인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