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진칼럼]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
- 정의와 박애를 잘 조화시켜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공정한 사회란 정의로움이 公的으로 보장된 사회를 말한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자. 正義란 유의미한 행위에 대해서 응분의 댓가를 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유의미한 행위`는 훌륭한 행위와 지탄받을 행위로 나뉜다. 그것에 대하여 前者에는 賞을, 後者에는 罰이 응분의 댓가로 주어진다.
정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이 바로 위의 `정의의 여신상`이다. 저울의 한 쪽에는 `유의미한 행위`를, 다른 한 쪽에는 `응분의 댓가`를 올려 놓아 똑같게 만드는 것이 바로 正義이다.
이순신장군, 권율장군, 곽재우장군은 모두 임진왜란 때 功이 컸다. 그래서 저울 한 쪽에는 그들이 세운 武功을, 다른 한쪽에는 응분의 댓가로 `1등 공신`이라는 賞을 올려놓고 저울이 똑같아 지면 正義를 실현한 것이 된다.
세월호 사건에서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법적으로 부여된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수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잃도록 만들었다. 저울 한 쪽에 그런 罪業을 올려놓고, 다른 한 쪽에는 刑罰을 올려놓아 똑같아 지면 역시 정의를 실현한 것이 된다.
이것이 公的으로 보장되는 사회를 우리는 공정사회라고 부른다. 누가 보더라도 마땅히 그리 되어야 그 사회는 유지되고 올바른 사회적 풍토가 자리잡게 된다. 功이 있어도 賞이 없는 사회, 罪가 있어도 罰이 없는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이다. 또한 功이 큰 데 賞이 작은 사회, 罪가 큰 데 罰이 작은 사회도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정의의 여신상을 잘 살펴보면, 판단을 내리는 여신의 눈이 가려져 있다. 그것은 대상이 되는 사람의 권력, 출신, 금력,용모, 옷차림등을 보고 가질 수 있는 예단이나 同情心등을 미리 차단하고자 함이다. 즉 오로지 理性으로만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상이 된 사람이 `힘이 있다고 해서` 또는 `불쌍하다고 해서`, 사리에 맞지 않은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정의는 이처럼 분명하고 냉철한 것이어서 융통성(이해심)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분명하고 냉철하게 행위하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인간적 요소를 고려해서 융통성(이해심,용서)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실정법상 제도적 장치가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 검찰의 기소편의주의, 법원의 작량감경권과 상대적 법정형주의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융통성(이해심,용서)이라는 것은 博愛 또는 휴머니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가 차가운 머리라고 한다면, 융통성은 따뜻한 가슴에 해당한다. 차가운 정의를 따뜻한 융통성으로 수정보완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이 근대법 사상이다. 따뜻한 융통성이 남발되므로 그것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근래에 들어 자주 등장하는 데, 그것이 바로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제한논의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발된다는 것은 운용상의 문제일 뿐이어서, 그것을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은 법사상의 근본 취지로 볼때 맞지 않다. 이처럼 정치 영역은 `정의 + 융통성(이해심,용서)`이라는 두 기둥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경제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매매와 거래에서 정의는 `제공하는 것`과 `받는 것`의 가치가 똑 같아야 한다. 경제요소량의 변동으로 인해 반드시 똑같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이 허용될 수 있는 폭을 넘어선 안 된다. 만약 그것이 허용될 수 없는 정도에 넘어서는 경우라면 법적 강제(민법 104조등)에 의해 규율될 수 있다.
경제 영역에서도 정의는 理性(합리성)에 의해 구현되므로 분명하고 냉철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분명하고 냉철하게 행위만 존재할 수 없다. 경제 영역도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博愛 또는 휴머니즘적 가치가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인류는 경제 영역에서도 차가운 정의 외에 따뜻한 福祉라는 가치를 더한 것이다. 즉, 정치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 영역에서도 복지라는 박애의 가치를 포함시킨 것이다.
정치 영역이 `차가운 정의 + 따뜻한 융통성(이해심,용서)`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경제 영역도 `차가운 정의 + 따뜻한 복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博愛의 가치는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또 다른 한 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경제 영역에서도 博愛의 가치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 영역에서 융통성(이해심,용서)이 남발되면 정의가 훼손되듯이, 역시나 경제 영역도 복지가 남발되면 정의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正義에만 치중하면 人情없는 사회가 되고, 맹목적으로 博愛에만 치중하면 不公正한 사회가 된다. 정의와 박애를 잘 조화시켜야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