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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4-02 04: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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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숙소에서 「볼프강 쇼이블레」(Wolfgang Schauble) 재무장관, 「로타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ere) 전 동독 총리, 「라이너 에펠만」(Rainer Eppelmann) 전 동독 국방장관, 「이리스 글라이케」(Iris Gleicke) 경제에너지부 정무차관, 「요하네스 루데비히」(Johannes Ludewig) 전 경제부 차관 등 독일 통일 및 통합과정의 주역 5명을 초청, 독일의 경험과 우리 통일 준비에 대한 조언을 청취했습니다.

먼저, 박 대통령은 올해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25년이 되는 해이며 내년은 한반도가 분단된지 70주년을 맞게된다고 하면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열망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분들을 모시고, 한반도의 새로운 통일시대를 열기 위한 통찰력과 지혜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마지막 동독 총리)는 동독의 평화혁명은 동독 주민들의 정치체제 및 분단상황에 대한 불만족과 함께 서독의 동독에 대한 작은 걸음의 정책과 접근을 통한 꾸준한 변화정책 독일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기존 정책을 수정한 구소련 고르바쵸프 서기장의 결정 및 헬싱키 프로세스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했습니다.

드 메지에르 전 총리는 당시 ‘동독주민들이 8시부터 서독을 향해 내다 보고 있다’는 농담이 생길만큼 서독 TV를 많이 시청하여 서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동독 주민의 1/3이 서독을 방문할 수 있는 단계에 까지 전개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서독에서 동독으로의 이동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는 점, 80년대 후반부터는 동독 주민들의 상당수가 서독으로 왕래가 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쇼이블레 재무장관(통일당시 서독 내무장관)은 80년대 동독은 서독의 경제지원이 굉장히 중요했었는데, 서독은 동독이 필요로 하는 경제 지원을 제공하는 경우 항상 교류 확대와 활성화를 조건으로 내세웠으며, 이러한 조건하에 교류를 지속했기 때문에 인적 교류와 왕래가 지속되었는데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었으며, 결과적으로 평화 혁명과 평화 통일이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쇼이블레 장관은 한반도 상황은 당시 동서독과 비교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면서, 통독 당시 그 누구도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베를린 장벽이 스스로 붕괴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일어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고 했습니다.

글라이케 경제에너지부 정무차관(신연방주 특임관 겸임)은 구동독 평화혁명 배경에는 군비증강에 대한 양독 주민의 두려움과 함께 당시 동독내 개신교 청년들이 체제변혁에 적극 동참한 점을 주요 배경으로 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에펠만 전 동독 국방장관은 당시 동서독 지도층들이 2차대전과 전후 복구를 직접 경험해 본 세대들로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매우 컸으며, 이미 1950년대에 동독내에 서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200여만명에 이르는 등 독일통일이 40여년전부터 시작된 프로세스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을 일으켜야 하며, 이를 위해 남북한간 인적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귀한 시간을 내어 소중한 조언을 해준데 감사한다고 하고, 우리는 북한 주민의 이해와 삶을 증진시키기 위해 주민 접근을 통한 노력을 꾸준히 넓혀나갈 것이라고 하고, 남북한만이 아닌 국제사회에 축복이 되는 한반도의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청와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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