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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1-15 19: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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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오산(사성암)-해발 531미터


길을 걷는다.
깨우침이다.
돌길을 걷는다.
겸허함이다.

꽁무니를 감추며 굽이돈다.
사성암으로 오른다.
그 형체는 오솔길이다.
그 내용은 가파름이다.
굽이마다 만나는 거목이다.
거목이 지키는 길목이다.

자태를 들어낸 돌길이다.
검은 채색의 돌길이 유난하다.
돌길 걸으며 깨우친다.
세상에 겸허하여야 함을,
세상에 묵묵하여야 함을,

사성암에 걸친 구름이 낭자하다.
내리는 구름이다.
그래서 비가 길을 재촉한다.
오르는 구름이다.
그래서 비가 그친다.
구름의 절묘한 이치이다.

구름은 내려서 비가 되고,
올려서 날을 개이게 하는 것이다.
부채살처럼 펼쳐진 들판이다.
시각적으로 광활하다.
들판은 이미 결실에 상관없이 풍요이다.
산을 정점으로 한 들판이다.
산을 덮은 구름이다.
산을 통째로 호령하는 구름이다.

거친 들판이다.
흩어져 위력을 잃은 구름이다.
구름과 산과 들판의 삼각관계를 본다.
서로가 우열이 없다.
구름이 산을 누르고,
산이 들판을 누르고,
들판은 구름을 제압한다.
그래서 서로가 호각세이다.
그래서 서로가 공존이다.
사성암에서는 구름과 산과 들판이 그렇게 사이좋다.

내림이 있다.
낙엽비가 내린다.
낙엽위로 비가 내린다.
땀방울이 뽀송하다.
오름이 있다.
낙엽을 밟는 발걸음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본다.

땀방울이 범벅이다.
사성암 오름이 그렇다.
산의 도열을 즐기는 오름이다.
앞선 자의 속삼임이 희미하다.
숨겨야 할 사연이라도 있는 듯이,
뒤에 따르는 자의 걸음이 둔탁하다.
엿들어야 할 전설이라도 있는 듯이,
돌길의 운치가 넉넉하다.

빠른 행보를 막고 있다.
태고의 흔적을 간직한 돌길이다.
다만 짐작으로 가늠한다.
다만 손을 들어 가르킨다.
그 즈음의 시간에 사성암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돌길을 걸으면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한다.

더 내세울 것이 없는 인간이다.
오르는 것에서 얻는 지혜이다.
오르면서 체득하는 겸허이다.
돌길이 세상을 그렇게 살라 한다.

가파름을 올려다본다.
사성암의 각진 처마가 하늘에 닿아있다.
사성암의 단청이 하늘의 수채화같다.
풍경이 정갈하다.
허공속의 사성암이다.
마음이 숙연하다.
바위벽면의 마애불의 예술혼을 본다.

위로 올려다보면 가파름이다.
아래로 보면 낭떠러지이다.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저 자연이었을 것이다.
금빛 광채이다.
마애불이 뿜어내고 있는 공채이다.
차마 눈을 바로 들지 못한다.

정좌하여 묵언한다.
인간의 심중을 빨아들이는 마애불이다.
정신이 혼미하다.
머리가 텅 빈다.
어쩌면 그것은 교감일 것이다.
마애불이 전할 것이 있는가 보다.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비움일 것이다.

진공을 만난다.
공기가 없는 진공이다.
순식간에 사라진 공기이다.
도선굴에서 체험하는 진공이다.
산식각에서 도선굴을 살핀다.
수도하기에 아담하다.
거처하기에 소담하다.

도선굴에 접어든다.
도선굴의 한 가운에서 진공상태를 직면한다.
파장이 멈추어 있다.
세상이 속절없다.
진공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편안한 곳에서 세상이 태동하는 것이다.
진공에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깨우침이 있는 것이다.
도선굴에서 세상을 본다.
태초의 평온한 세상은 없고,
평지풍파의 세상만 있다.
진공의 멈춘 파장은 없고,
평지풍파의 파장이 넘실된다.
세상에 진공이 필요한 이유이다.

가진 것도,
얻은 것도,
가지려 하는 것도,
얻으려 하는 것도,
다 소용없는 것이다.
사성암에서 그런 세상을 욕심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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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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