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 오는 5월 야당엔 빅이벤트가 열린다. 전당 대회다. 단일성 집단 지도 체제를 위한 최고위원과 대표를 선출하기위한 선거다
. 오늘부터 이제
한국 야당에서 경쟁을 앞세운 당 대표 경선을 시작함으로서 국민들 앞에서 정당간 정책 경쟁을 시작한다. 이 와중에 이들 젊은 정치가등 중에서 아직은 중량감이 .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 많았다.
통합된 김한길 대 신계륜 강기정 이용섭의 분산된 경쟁 구도가 대표 선거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구도에서 친노 세력의 의중이 상당히 영향을 줄 것이라는 선거판 구도는 게임에 재미를 더하여 주는 중이다
이런 다양한 시각을 지닌 당원이 존재하는 당의 대표 자리다. 강기정 의원, 신계륜 의원, 이용섭등 세 의원이 김한길 의원에 경쟁을 신청하는 구도로 당 대표 출사표를 던진 것을‘ 40대 기수론’ 추억을 되살리는 증표는 아닐까 . 젊은 정치인들은 항상 도전을 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미국의 클린턴, 버락 오마바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의 야당 역사를 보자. 1968년에서 1969년경 당시의 야당 신민당에서 고군 분투하면서 미래 커리어 를 구상하며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던 타이밍의 영재(英材) 김영삼 전대통령의 40대 기수론이 그립다
부산서구가 지역구던 김영삼은 어느날 돌연 40대가 대선 후보가 돼서 집권 가능성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야 신민당이 사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1971 년 4월의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당시 야당 당수를 지내던 한국 민주당( 한민당) 이래의 야당 신민당 대표 유진산은 이런 움직임에 구상유취(口尙乳臭) 라고 반응 한다. 어린이 젖비린 나 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40대의
김대중, 이철승 출마가 김영삼의 원조 40대 기수론에 정치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이들은 , 야당의 1971년 대선에 후보로 출마 하면서 어림과 경험의 부족을 중심에 두는 당내의 핵심 정치 프레임을 바꾼다. 김영삼의 40대 기수론은 국민과 당원의 심정을 압도(壓倒) 한것이다.
40대 기수의 선두주자인 김영삼의 민주주의에 의한 강한 정치적인 신념과 김대중의 미소 중일에 의한 4대국 보장 론을 들고 나오는 새 정치를 담은 흐름이 강해 진다.
4년전 버락 오마바는 상원의원 한번 하고 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
정치 커리어를 정교 하게 다듬고 나서서 2선에 성공 한 대통령이 된다.
버락 오마바 같이 약간은 내성적인 성격에도 굽히지 않고 노력해서 미국 대통령이란 직업에 도전, 40대에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커리어 개발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이다.
당권 경쟁에서 정책으로 서로 승부 할 줄 아는 정치 철학을 실천하는 모습을 우리 국민들은 지속해서 보기를 기대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갈등과 길항의 과정을 거치면서 의견 대립하는 구도를 즐기는 프랑스의 대항정부 (Contre Gouvernement) 같은 대립적 시스템을 먹고 자라는 생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